“얼마 전에 우리 경준이 담임 선생님이 저를 보자고 하셨어요. 경준이가 반에서 너무 옆 아이들과 말을 많이 한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전에도 교사 면담 때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타이르기도 하고 야단도 쳤지요. 물론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번번이 다시 그럽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여러 차례 그런 지적을 하신 것으로 보아 우리 아이에게는 무슨 문제가 확실히 있나봅니다. 그렇다고 경준이가 평소 말이 많은 아이는 아니랍니다. 왜 하필 수업시간에 그리도 말이 많은지? 어떻게 하면 고쳐질까요?” - 7학년 경준 어머니
필자 자신도 강의할 때마다 느끼는 일인데 강의 도중에 옆 사람과 말을 한다든지, 혹은 쪽지를 돌린다든지 등 딴 짓을 하는 학생들만큼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 드물다. 학생들은 크게 떠들지 않고 속삭이니 선생님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른다. 쪽지도 가만히 옆 친구에게 넘겨주니 선생님이 어떻게 아느냐고 할지 몰라도 사실은 다 알고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점수가 우수한 학생일수록 공부 시간에 딴 짓을 안 한다. 이런 학생들의 강의중 행동의 특징은:
1. 열심히 듣는다(pay attention). 옆 친구와 딴 짓을 하거나 쪽지를 돌리는 일은 전혀 없다.
2. 예습을 해온다. 구체적으로 이 예습에 대해 써보면:
한번은 필자가 ‘언어발달 과정’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하는 도중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의 언어 능력은 어느 정도 타고난 능력이다. 별로 가르치지 않아도 일상생활의 말은 저절로 할 줄 아는 능력을 타고난다.” 이 말이 끝이 나자마자 한 학생이 손을 들더니 “한 프랑스 아이의 경우입니다. 산에서 동물들과 자란 아이인데, 확실히 인간이지만 말을 못 했습니다. 나중에 언어학자가 이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노력한 사례를 읽었습니다. 인간이 원래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면 그 아이는 왜 말을 못했을까요?”
학생의 질문은 교과서도 아닌 한 참고 문헌에 아주 간단하게 실린 내용이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답을 한 기억이 난다. “그 아이의 이름은 Victor라고 한다. 나중에 이 아이에게 언어를 가르쳐 주려고 애쓰던 언어학자가 지어준 이름이다. 또 다른 애칭으로는 ‘A wild child’라고 불리기도 했다. 언어의 발달상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3~4세 정도까지이면 주위에서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말을 배운다. Victor의 경우는 주위의 동물들과 10세까지 살았기 때문에 언어발달이 안된 사례이다.”
그 학생은 열심히 참고문헌까지 미리 읽고 온 것이다. 이처럼 미리 읽어 온 학생, 즉 예습을 해 온 학생은 질문도 많고 자기 질문을 이미 예습할 때 준비해 왔기에 자연히 강의를 열심히 듣게 된다. 반대로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들은 지금 교과서에서 어디를 강의하느냐, 숙제가 무엇이었나 등을 옆 학생에게 묻는 것이 일쑤이다.
이렇게 미리 준비해 온 학생은 보통 강의에 들어오면 앞자리에 앉는다. 유명한 연구(Davis, 1996년)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고교생(9~12학년)을 상대로 한 연구이다. 미국의 고교에선 과목마다 선생님과 반이 바뀌고, 지정된 자리가 없이, 자기 마음대로 앉게 내버려둔다. 이 연구는 수업중 자리의 선택과 학교 성적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A학점을 받는 학생의 대다수(82.7%)가 반에서 앞자리, 특히 가운데에 앉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1)열심히 듣는다. (2)예습을 해 온다. (3)필기를 한다. (4)앞에 앉는다는 특징을 보이는데 간단히 결론을 내린다면, 위의 4가지 중에서 ‘예습’이 가장 중요하다. 예습을 해 온 학생들은 강의시간에 열심히 듣고, 그러다 보니 필기도 하며, 또 열심히 듣는 학생들은 자연히 앞자리에 앉는다는 것이다.
예습을 한 후에 열심히 듣는 학생은 반드시 강의를 들으면서 필기를 한다.
그냥 듣는 것과, 들은 것을 필기하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학생이라도 그냥 듣기만 해서는 들은 것을 다 효과적으로 기억을 못한다. 필기 도중에 배우기도 하며, 또 연결된 다른 생각도 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크로포드(Crawford’s Classic Study)에 따르면 필기를 한 학생들이 훨씬 성적이 좋았다.
1,000명을 상대로 한 연구인데, 첫 그룹, 즉 500명은 강의를 열심히 듣더라도 필기는 못하게 했다. 필기를 못하였으니 자연히 어떤 학생들은 더 정신차려 듣기도 했다. 이 500명중 대부분은 들으면서 들은 것을 그때그때 외우려고 노력도 했다.
두 번째 그룹의 또 다른 500명은 강의를 들으면서 필기을 하게 했다. 아는 것도 가능한 많은 필기를 권장하였다. 그 이후 강의가 끝나자마자 시험을 치렀다. 또 며칠, 몇 주일 후에 시험을 다시 치렀다. 그 결과를 보면, 필기를 한 그룹이 현저히 성적이 좋았다.
그렇다면 예습이 왜 그리 중요한가? 새 지식을 배운다란 것을 마치 새둥지에 알을 하나씩 넣어주면 그 알이 저절로 내 것이 되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주입식 교육에선 덮어놓고 외우기만 하면 된다. 즉 주어진 알을 내 것으로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서 덮어놓고 영어의 새 단어도 10번씩 되풀이해 가며 써봐서 내 것으로 만들려한다. 물론 그 당시엔 외울 수 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 외운 단어는 거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배우나? 마른 우물에서 물을 나오게 하려면 우선 마른 우물에 물을 조금 넣어 주어야 하는 것 같이 학생이 강의시간에 무엇을 배우려하면 자기가 퍼부어 넣을 수 있는 ‘물’이 있어야 한다. 예습을 안 해 가는 학생은 메마른 우물에 덮어놓고 펌프만 해 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정신집중을 하고 들으려 해도 강의 자체가 무슨 소리인지 모를 때는 자기 정신을 딴 데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옆 친구아이와 이야기를 하거나 쪽지를 돌리는 등등 딴 짓을 하게 마련이다.
반면에 자기가 준비해온 예습이 있으면(미리 물을 좀 넣은 것이 있으면) 배우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을 독서학에서는 스키마(schema)라고 한다. 스키마란 자기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지식을 말한다. 학생 자신이 아무리 풍부하게 스키마가 많다 하더라도 옛날 지식을 다시 재생하는 뜻에서라도 반드시 스키마는 학생 자신이 준비해 갖고 강의에 들어가야 한다. 이 스키마가 있을 때 배우기 시작한다. 배우기 시작한다는 말은 강의가 흥미로워지고 자신이 흥미가 생기면 옆 친구가 말을 시켜와도 그 답을 해줄 여유가 없어진다.
그러나 ‘배운다’는 것은 간단히 우물에 물을 좀 넣었다고 물이 펑펑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일단 들어온 새 지식은 자기가 예습으로 갖고 온 지식(‘물’)은 물론, 과거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병합하기 시작한다. 마치 흰 페인트가 빨간 페인트와 합치면 분홍색 페인트로 변하는 것같이 이 새 지식을 학생이 받아들였을 때 학생의 생각에 변화가 온다. 이렇게 스키마와 병합이 서로 손을 잡기 시작할 때 ‘정말 배우는 일이 일어난다’라고 볼 수 있다. 이 ‘배운다’라는 것은 두뇌의 아주 바쁜 작용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옆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게 된다.
서론에 소개한 경준이는 부모 말씀에 따르면 오랫동안 ‘behavior problem’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학생이었다. 그러나 우리 클리닉에 다니면서 반드시 예습을 시켜 학교를 보내게 했다. 즉 매일 스키마를 저축하여 학교에 보냈다. 3개월 내로 ‘talk too much’란 고질적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 된 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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