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주 정치적 질문은 ‘러시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21세기 시작과 함께 질문은 달라졌다.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바뀐 것이다.” 한 유럽 지식인의 말이다.
‘미국은 무엇인가’-. 새삼스런 질문이다. ‘미국은 이기적인, 위험한 자이언트다’-.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내비치고 있는 시각이다. 한국서도 미국 성토가 한층 거세지고 있다. 유럽에서 일고 있는 미국 패권주의 비판에 열심히 가세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여러 나라를 불량(Rogue)국가로 규탄하지만 미국이야 말로 불량 수퍼 파워다.” 이런 비판과 함께 미국의 가치독점의 독성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올지 걱정스럽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임마누엘 월러스타인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시점에 미국의 전성기는 이미 끝났다고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팩스 아메리카나는 끝났다. 베트남, 발칸반도, 중동 그리고 9.11 테러사태로 이어지는 일련의 도전들은 미국의 지배권의 한계를 노정시켰다. 이제 남은 일은 두가지 중 하나다. 미국은 조용히 사라지는 방법을 배울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보수파들이 역사의 흐름에 저항하다가 완만한 쇠퇴 대신 급격하고 위험한 전락 상황을 맞을 것인지 하는 것이다.”
그 주장의 대요다. 이와 함께 그는 ‘독수리는 이미 추락하고 있다’는 진단을 하고 있다. 그가 특히 우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력은 현 부시 행정부내 매파(Hawks)다. 이 매파야 말로 미국의 쇠퇴를 가장 정확히 감지하고 있는 세력인데 ‘군사적 방안’을 통해 그 흐름을 반전시키려는 무모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침공 추락 가속화?’
월러스타인에 따르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독수리의 추락을 가속화시키는 계기에 불과하다. 국제여론을 무시한 힘의 과시는 실패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데에 근거한 전망이다.
파워에도 썰물과 밀물의 때가 있다. 숱한 제국의 흥망성쇄를 기록한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어느 제국도 영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독수리는 과연 추락하고 있는 것일까.
‘독수리는 아직 추락하지 않고 있다’-. 정반대의 논리가 지배적이다. 미국의 쇠퇴를 말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게 대세다.
“미국의 군사력은 전례가 없는 독점적 우세에 있다. 군사력을 뒷받침 하는 경제에도 문제가 없다. 닷컴 비즈니스의 몰락, 경기후퇴, 테러공격, 기업계 부정 스캔들 등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안정세다.”
“기술분야에서도 미국은 단연 선두다. 미국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등대다. 억눌린 체제에서 신음하고 있는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미국은 유일한 희망이다. 거기다가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미국적 가치가 전 세계적인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동안 미국의 지배적 위치는 흔들릴 것 같지 않다. 중국. 일본. 유럽. 러시아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미국을 추월할 도전자는 당분간 없다고 보아야 한다. 지배적 파워는 시샘의 대상이 되기 쉽다. 때로는 우방으로부터도 적개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이 미국이 현재 맞이한 상황이다.” 이상이 미국내 절대 다수 논객의 견해다.
거기다가 이런 주장도 제기된다. “파워의 일방적인 사용이 바람직한 때가 있을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직면한 도전은 그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일방주의 선언이다.
‘독수리 추락론’은 이로 볼때 소수의 좌파적 시각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왜 적지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을까. 테러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공화당 매파의 멘탈리티에 대한 예리한 분석 때문이 아닐까.
너무 강한 미국 오히려 위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이루어져도 심각한 반발은 없다고 보는 게 행정부내 매파의 생각이다. 반발이 전혀 없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구두 항의에 불과하고 가령 중국이나, 사우디 아라비아 등이 미국과 관계단절에 들어가는 사태는 없다는 계산이다.” “…그리고 이후 이란, 북한 등지에서 미국이 실력 행사에 들어갔을 때에도 결과는 비슷하다고 보는 게 매파의 견해다.”
이런 판단과 함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는 전망이다. 말하자면 강자의 오만은 자기 파멸만 가져온다는 논리다.
어디까지나 전망일 뿐이다. 더구나 다수가 받아들이지 않는 전망은 틀리기 쉽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을 둘러싼 대논전은 한가지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강한 미국, 너무나 강한 미국은 어쩌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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