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20세기 이후다. 그전까지 왕이나 귀족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늙고 병들어 숨을 거둘 때까지 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평범한 시민이 원기 왕성할 때 일을 그만 두고 크루즈를 하며 여생을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63년까지도 60~64세 노인의 80%가 일을 했다. 그러나 2001년 현재 일하는 노인은 57%밖에 안 된다.
미국에서 ‘은퇴’라는 개념을 보편화시킨 것은 대공황이다. 1929년 주가 폭락과 함께 몰아닥친 사상 최악의 경제난은 모든 미국들에게 고통을 안겨 줬지만 그 중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은 노인들이었다. 모은 돈을 다 날리고 찬바람 부는 길거리를 전전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동정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평생 일한 미국인들에게는 최소한도의 생활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됐으며 그 결과 1935년 소셜 시큐리티 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 은퇴 제도의 근간이 되고 있다.
소셜 시큐리티국이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은퇴 자금은 가장 인기 있는 정부 프로그램의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도가 시행된 직후인 30년대는 물론이고 최근까지 수혜자들은 자기가 세금으로 낸 돈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시행 초기에는 노인 1명 당 20명의 근로자가 페이롤 택스를 부담했다. 이제는 노인 1명을 부양할 책임이 3명의 근로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머지 않아 이 숫자는 노인 1명 당 2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노인들의 평균 수명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현재 60세인 노인은 평균 22년을 더 산다. 노인들의 평균 수명이 60대 초였던 시절 제정된 제도가 노인 대다수가 80이 넘게 사는 지금 거의 큰 변화 없이 시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6년이면 소셜 시큐리티 펀드가 바닥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섣불리 혜택을 줄이자는 이야기를 하는 정치인은 투표 잘 하는 노인들에 의해 쫓겨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소셜 시큐리티 다음으로 은퇴를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은 401K 구좌다. 기업에서 은퇴한 직원들에게 일정액수를 지급하던 연금제는 점차 사라지고 이제는 각자가 일정액을 투자하고 기업에서 일부를 보조하는 401K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1975년만도 은퇴 근로자의 29%가 연금을 받았으며 401K 구좌를 갖고 있던 사람은 4%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98년에는 연금제는 17%로 줄어들고 401K는 21%로 늘어났다.
401K에 들어가 있는 돈의 대부분은 주식에 투자돼 있다. 투자에 밝은 사람에게는 401K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쌀 때 주식을 샀다 비쌀 때 파는 식으로 운용하면 연금보다 더 많은 혜택을 입을 수도 있다. 문제는 대다수가 투자에 문외한이란 점이다.
지난 2년여 주가 폭락의 최대 희생자는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다. 대학 주변에는 백발이 성성한 교수들이 401K에 담겨 있던 은퇴자금을 날리고 ‘강사 자리라도 좋다’며 일자리를 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학뿐만이 아니다. 지난 1년 사이 55세 이상 근로 인구가 160만 명이 늘어났다. 올 들어 페이오프 한 집을 은행에 맡기고 다달이 생활비를 받아쓰는 ‘역 모기지’(riverse mortgage)를 이용하는 노인 인구도 70%나 증가했다. 은퇴 노인들의 다급한 상황을 보여준다.
나이 들어 일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20~30년에 달하는 긴 노후를 골프로 소일하며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기술과 지식을 사장시킨다면 이는 개인으로 보나 사회로 보나 낭비다. 이를 개선하려면 정부와 기업부터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노인 근로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노인 자신도 늙었다고 자포자기할 것이 아니라 시장성 있는 기술을 익히려는 자기 훈련의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노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보다 쉽게 늙는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와 있다.
“끝이 좋아야 모두 좋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늙어서 하는 고생만큼 서글픈 일은 없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부터 저축을 늘리고 재테크라도 배우는 것이 ‘은퇴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비하는 자세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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