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8년후. 소련은 붕괴됐다. 2002년 1월29일.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이란, 북한을 ‘악의 축’ 국가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왜 ‘악의 축’이었을까. ‘악’(evil)은 결국 제거되어야 한다는 의미였을까. 그 발언이 나온지 6개월이다.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인다. ‘악의 축’은 그러면 구호에 불과한가.
"뒷산에 사나운 곰이 살고 있다. 나이프 밖에 없다. 나이프로 곰을 잡는다는 건 무리다. 곰과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낫다." "라이플이 있다면 계산이 달라진다. 곰의 습격을 받을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곰을 없애는 게 낫다."
’이라크를 공격할 것인가’-. 미국과 유럽은 오랜 공방을 벌여왔다. 그 공방은 끝난 것 같다. ‘총이 있으니 곰의 습격 사태를 방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운 것이다. 미국의 입장이다.
그 공방에 종지부를 찍은 논객이 로버트 케이건이다. ‘파워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인식 차이’를 바탕으로 한 이라크 공격 당위론이 유럽서도 공감대를 넓히게 된 것이다.
케이건은 최근 또 이렇게 썼다. "유럽은 이라크 공격을 피할수 없는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 와서 유럽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미국이 단독으로 이라크를 공격해 중동지도를 바꾸는 사태다." D-데이가 아니라 이제는 V-데이 이후에 대한 관심만 남았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이라크 침공의 구체적 시나리오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내년 침공설, 10월 침공설 등. 구체적으로 파나마 침공 모델이, 한국전시 인천상륙작전 모델이 거론된다.
이는 분명한 한 가지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은 ‘체제변화’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사담 후세인은 타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2년 7월12일. 부시는 극히 이례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에서의 대규모 민주화 요구 가두시위를 높이 평가하는 강한 논조의 성명을 낸 것이다. ‘악의 축’으로 규정한 또 다른 국가, 이란에 대한 부시 행정부 정책이 확고해졌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역시 체제변화가 정책의 골자다. 이란 회교정권은 붕괴될 체제라는 판단하에 내려 진 결정이다.
’악의 축’을 이루고 있는 세 나라 중 두 나라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정책은 그 윤곽이 뚜렷해졌다. ‘타도대상’이라는 결론이다. 또 모종의 정책이 이미 카운트다운 단계에 들어간 것 같다.
북한은 그러면. 아직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감’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북한은 중무장 돼 있다. 거기다가 ‘악의 축’ 국가 중 ‘주니어’란 인상이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린 느낌이다. 그러나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보수파 논객 클라우디아 로젯의 주장이다. 그 주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전쟁을 통해 북한문제를 해결하라는 게 아니다. 탈북자 문제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현재의 북한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동독과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다."
이 부문과 관련해 ‘창조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동독은 주민의 대탈출과 함께 붕괴됐다.북한주민의 대대적 엑소더스를 이끌어 내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유도하라는 게 이 창조적 사고의 ‘숨겨진 아젠다’다. 이 ‘창조적 사고’는 한 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김정일의 북한 정권은 붕괴되어 마땅한 부도덕하고 사악한 체제’라는 전제다.
이와 함께 ‘아시아판 헝거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헝거리는 동독을 탈출한 사람들을 무제한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동독은 붕괴했다.
이는 한 논객의 한낱 백일몽이 아니다. 이 ‘창조적 사고’에 많은 정책 결정자들이 동조하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몽고에 탈북자 센터를 세우고 김정일 체제 대체세력을 훈련시킨다는 공화당 일각의 구상이 그 예다.
’악의 축’ 발언이 나온지 6개월이다. 북한은 마침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섰다. 한국측의 서해교전 재발방지 촉구에도 상당히 고분고분해진 자세다. 왜.
"워싱턴은 ‘악의 축’ 국가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구체화되고 있다. 북한은 불안한 시선으로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 한 서방 외교관의 분석이다.
"’2003년 2월. 악의 축’ 발언이 나온지 1년여. 이라크공격은 이루어졌다…. 사담 후세인이 제거되고 중동지역 정치지도에는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북한은…." 이런 일이 가능할까.
북한의 태도변화는 아무래도 ‘햇볕’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악의 축’ 발언도 단순 구호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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