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방문 앞둔 정몽준 축구협회장 단독인터뷰
한국의 월드컵 4강신화 주역 정몽준(51) 대한축구협회 회장. 그는 1993년 대한축구협회장에 오르자마자 ‘2002년 월드컵대회’ 유치를 선언했다. 당시 일본은 ‘자력진출이 힘들다면 아예 대회를 유치해 월드컵의 한을 풀자’며 이미 2년전부터 활발한 유치활동을 펼쳐오고 있었고 국제축구연맹(FIFA)의 고위관계자들도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지하는 등 악조건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꿈과 확신을 접지 않았다. 그의 노력은 결국 96년 5월31일 공동개최라는 극적인 결과를 얻어냈고 6년 뒤 성적과 운영면에서 공동개최국 일본을 압도하며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체육인에 앞서 기업인이자 정치인인 정 회장은 이번 월드컵을 ‘국민화합의 장’으로 만들면서 한국민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고 정치권에서도 강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주목을 받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아끼던 6남이란 세인들의 인식에서 벗어나 한국을 이끌어 나갈 지도자감으로 부상한 정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월드컵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대회가 남긴 결실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우리 대표팀은 3-4위전을 포함해 총7번의 경기를 치러 3승2무2패(승부차기로 이긴 스페인전은 무승부로 기록)를 기록했다. 그러나 경기장 밖에서는 5전 전승을 거뒀다.
첫째 그동안 냉랭한 이웃이었던 일본과의 관계가 크게 향상됐다. 둘째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 셋째, 대회기간중 서해교전이 발생해 아쉬웠지만 남북관계 발전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휴전선에서는 한국팀 경기를 대형스피커를 통해 라디오 생중계를 그대로 북한군에게 들려줘 큰 환호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넷째, 남녀노소 구별없이 한반도를 붉게 물들게 한 응원전을 통해 세대간 인식과 문화의 격차를 상당부분 메울 수 있었던 것도 큰 보람이다. 다섯 번째가 가장 큰 결실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바로 국민화합을 이뤄낸 것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열매다.
-어렵게 얻은 이같은 결실을 계속 발전시켜야 할텐데
▲물론이다. 14년전으로 돌아가 보자.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했을 때 우리는 그 열기를 국가발전에 활용했어야 했지만 정치문제 등으로 실기하고 말았다. 이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월드컵이 몰고 온 국민화합과 자신감들을 하나로 모아 한국이 21세기의 주역이 되도록 해야 한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향한 계획은
▲매년 큰 대회가 있어 하나씩 차분히 준비해 나갈 생각이다. 당장 가을에는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 있고 내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2개의 청소년 축구대회가 열린다. 또 2004년에는 올림픽게임이 있는 등 중요한 대회가 잇달아 열린다. 매 경기가 중요한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
-월드컵 이후 정 회장의 위상이 크게 달라진 것 같다. 본인 생각은 무엇인가.
▲(웃으며) 사실 1993년 1월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취임하고서야 월드컵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대회를 유치하고 열기까지 10년동안 온 힘을 여기에 쏟아 부었고 모든 일이 무사히 성공리에 마친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몰라도 월드컵 때문에 개인적으로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히딩크 감독의 장래에 대해 한인사회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축구협회에서는 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팀을 맡게 된 거스 히딩크 감독을 계약기간이 끝나는 2년 뒤 다시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히딩크 감독 역시 이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좋은 결과가 있도록 하겠다.
-축구인에 앞서 기업인이기도 하다.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보는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엇그제 그동안 도움을 아끼지 않은 서울경제신문에 인사차 방문했다가 고 장기영 한국일보 사주의 말씀들은 담은 ‘백상어록’을 선물로 받았다. 어록 가운데 ‘내 뼈는 은행인이요, 피는 언론인이요, 팔 다리는 체육인이다’란 구절을 읽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 이 구절을 인용키로 마음을 먹었다. 즉 ‘내 뼈는 체육인이요, 피는 경제인이요, 머리는 정치인이다’라고 내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 여기에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표선수들에게 강조했던 ‘멀티플레이어’를 나 자신에게도 적용하고 싶다. 나 역시 어떤 환경과 조건속에서도 내 역할을 수행하고 뜻을 이룰 수 있는 멀티플레어가 되도록 항상 노력하고 있다.
-‘정치’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정치인으로서 한국의 현 정치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불연속’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국회 현역의원 가운데 재선되는 인사가 50%도 되지 않는다. 즉 60% 가까운 인물들이 새로운 사람들이란 얘기다. 새로운 피가 수혈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겠지만 정치의 불연속, 단절 현상 반복으로 격동기 또는 과도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안정을 잃고 있다. 여기에 주요 정치인들의 자세 또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의 경우 모든 것을 초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정당을 탈당해야 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만약 대통령이 특정정당의 대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라는 물론 본인을 위해서도 불행한 것이 될 것이다. 대통령은 누가 되든지 국민화합을 첫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사실 월드컵 이후 박근혜, 이인제씨 등과의 연합론 등이 제기되는 등 정 회장의 대권도전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주변에서 갖가지 얘기와 소문들이 떠돌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되든 초당적으로 일을 수행해야 하며 대선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지지한 사람이 공정하게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선출마 여부는 앞으로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과연 내가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같은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지 등을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언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인가
▲결정시기는 나도 알고 싶은 문제다. 다른 후보와 비교할 때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아닌가 싶다.
-21세기 지도자상에 대한 본인의 견해는.
▲세계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또 대통령은 TV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월드컵 이후 더욱 바빠진 것 같다. 평소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우스운 얘기로 들리겠지만 여유를 갖고 생활해 보고 싶은 것이다. 일을 찾아 다녀야 하는데 오히려 일에 쫓겨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야 하는 것이 개인적으론 달갑지만은 않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부친이신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한국 현대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아버님은 어떤 분이었나.
▲자상하시고 소탈하신 분이었다. 어떨 땐 너무 감성적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든적도 있었다. 그러나 넓은 식견과 날카로운 비판력, 추진력을 갖고 계셨던 것도 사실이다. 아버님은 항상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 노력해 오셨고 원대한 꿈을 실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제 며칠후면 LA를 방문한다. 방문에 앞서 한인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직접 가서 한인들에게 말씀드려야 할 내용들이 지면을 통해 미리 알려지면 정작 LA에서는 할 말이 없어질텐데(웃음). 이번 미국방문은 LA와 뉴욕 두 곳 뿐이다. 미국전역에서 한인사회가 보내준 성원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 이번 방문의 목적인데 사정상 지역이 한정된 것에 한인사회의 넓은 양해를 바라고 싶다. 한국팀 경기가 열릴 때마다 수만명이 밤을 지새우며 거리에서, 스테이플스센터에서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신 것을 잘 알고 있고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정몽준 회장 약력
▲생년월일: 1951년 10월17일생
▲약 력:
중앙고,
서울대 경제학과,
MIT 경영대학원졸,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박사,
울산대 이사장,
대한축구협회회장,
국제축구연맹(FIFA)부회장,
존스홉킨스대이사
현 국회의원
▲정치경력
교섭단체: 무소속
선 거 구: 울산광역시 동구
당선횟수: 4선의원
소속위원회: 교육위원회
<황성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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