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뜰에 아담한 레몬 나무가 하나 있는데 거기엔 이름을 정확히는 모르는 파랑새가 작년부터 둥지를 틀었다. 처음에는 어미 새가 잔가지를 하나씩 날러 집을 짓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여 하루라도 둥지를 보지 않으면 궁금할 정도로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올해에도 봄이 되자 새가 다시 찾아와서 그 동안 비바람에 부서진 옛 둥지 위에 다시 새로운 집을 지었다. 다 되었나 싶어 어미 새가 없을 때 몰래 둥지 안을 들여다보니 잔 풀까지 곱게 깔아 놓고 파란 알까지 예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알을 낳은 뒤로 어미 새는 거의 자리를 뜨지 않으며 계속 알을 품고 아빠 새는 조금 떨어져 나뭇가지나 때로는 전깃줄에 앉아서 만일의 침략자를 대비하듯 눈을 부릅뜨며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기 시작하는 더위가 시작되었지만 어미 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햇살을 등에 지고 알을 품는데 여념이 없었다.
신록이 익어가자 둥지의 아기 새들은 모두 알에서 깨어나 떠들어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어미 새는 더욱 부지런히 아이들에게 먹이를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서로 자기에게 먹이를 달라고 목을 들이빼고 어미 새에게 밀어보지만 어미 새는 공평하게도 돌아가면서 아기 새들에게 먹이를 골고루 나눠주었다.
열 손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어미 새에게도 그 어느 새끼가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아기 새들은 어미 새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무럭무럭 자라나 마침내 잔털이랑 긴 깃털도 많이 나오더니, 제법 어미 새의 모습을 갖추고 둥지에서나마 내일의 세상을 향해 날개 짓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 자연계에는 생태계 평형을 위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멀리 태평양에는 바다거북들이 해안선 따라 모래 속에 수많은 알을 낳고 이를 지키지만 이 거북의 알만 노리는 알 도둑(?)도 많이 있어 거북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모래 속을 헤치고 알을 깨어먹던가 훔쳐가 버린단다.
운이 좋은 놈은 잘 부화되어 알에서 깨어나 모래 속을 나오자마자 본능적으로 물이 있는 곳으로 향하지만 미처 바다에 이르기 전에 많은 수의 바다거북 새끼들은 새들의 먹이가 되고 만단다. 정작 최후까지 살아남은 새끼 거북은 몇 마리 되지 않는다 한다. 그 많은 알에서 고작 몇 마리라니 참으로 자연의 법칙은 위대하면서도 무섭지 않은가.
어느 날 아침 무심결에 잔디밭을 거닐던 내게는 뭔가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둥지 속의 아기 새 한 마리가 아닌가. 이미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숨이 끊어진 뒤였다. 지난 몇 달 동안 같이 지켜보면서 참으로 정이 많이 들었었기에 너무나 아픈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슬픔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틀 뒤 나는 다시 한번 찢어지는 가슴을 쓸어 내려야했다. 이번에는 남아있던 아기 새 두 마리 마저 모두 땅위에 뒹굴고 있는 것을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힘없이 떨어지는 아기 새의 날개가, 마지막까지 생명을 움켜쥐려던 발버둥 쳤을 아기 새의 발가락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한참을 손에 쥐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더욱 우리를 슬프게 만든 일은 다음 날 아침부터 어미 새와 아빠 새가 이미 아기 새가 떠난 둥지를 계속 들락거리고 나뭇가지며 전깃줄 앉아 참으로 처량히도 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새들이 왜 그러나 의아했는데 생각해 보니 아기 새들이 날아올라 자기들의 곁에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혹시 아직 둥지에 있나 계속 찾아다녀 보고 혹시 다른 곳에 잠시 놀러 간 것이면 갔다 돌아와서 행여 어미를 찾지 않을까 늘 있던 그 자리에 앉아 아기 새들을 찾는 울음이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어미 새는 아기 새가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인가. 사흘을 밤낮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자식을 잃어버림에 슬피도 울어대더니 다음날 아침 조용하여 전깃줄을 보니 어미 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아직까지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 어미 새의 마음이 얼마나 시리고 아팠으면 사흘을 밤낮으로 그리도 구슬피 울어대더란 말인가. 자식을 잃은 서러움이 어찌 사람만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하며 다른 동식물들을 내려보아 하찮은 미물이라 일컫지 만 비록 미물일지라도 자식 사랑하는 그 마음은 본능이며 그 모성 본능이 어찌 사람보다 못하다고만 하겠는가.
오히려 요즘의 우리 사회를 보면 예전과 달리 사랑과 정이 더욱 고갈되어 이웃을 남모르다 하고 친구를 나 몰라라 하고 심지어는 가정이라는 가장 큰 울까지 거부하니 돈 앞에서 부모 자식이 서로 원수가 되고, 심지어는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이 놀랍게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하찮다던 미물에게 인간이 동정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보여지고 있지 않은지 모를 일이다.
부디 내년에 어미 새가 다시 돌아와 이 둥지에 새 생명을 심어 다시 한번 변하지 않은 그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새 봄이 오면 만물은 다시 그 생명의 태동을 시작한다. 살아있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끼리, 죽어있는 것은 죽어있는 것들끼리, 식물이건 동물이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