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면 부모 자녀간에 실랑이가 잦아지는 단골 화제가 있다. TV 시청시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TV를 보는 시간도 평소보다 두세시간씩 늘어나기 마련이고 스폰지와 같은 어린이들이 이로부터 받는 각종 신체·정신적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TV를 통해 얻는 것도 있지만 지나침이 모자람 보다 못한 것이 바로 어린이들의 TV와 비디오 시청이다.
지나치면 학습부진은 물론 이보다 훨씬 심각한 ‘TV중독증’이나 ‘유아비디오증후군’, ‘소아비만’ 등의 질환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맘껏 TV를 볼 수 있는 방학 때일수록 부모들은 무조건 막아 반발을 일으키거나 그냥 방치해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현명하게 통제해야 한다.
<김상경 기자> sangkk@koreatimes.com
또래 아이들과 달리 의사소통은 물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정식이(3세·남). 엄마가 조기교육을 목적으로 첫돌이 되기 전부터 영어와 한국어로 된 교육용 비디오 테이프를 하루종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돌이 지나면서 비디오 외의 다른 것엔 관심이 없고 아예 비디오를 틀어놓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정식이 엄마는 혹시 자폐증이 아닐까 하는 걱정 끝에 병원을 찾았으나 진단 결과는 ‘유아 비디오 증후군’. 두뇌 발달이 채 이뤄지기도 전에 비디오의 일방적인 시각적 자극과 기호화한 메시지만을 받아들인 어린이들이 대인기피 및 혼자 중얼거리는 증세 등 유사 자폐증, 언어발달 장애, 비디오와 현실세계 혼돈, 사회성 결핍을 겪게 되는 신종 유아정신질환이다.
소아과전문의들은 생후 8∼9개월부터 주변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TV나 비디오 시청 등 지나치게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받으면 정상적인 뇌 발달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소아과학회는 만 2세 이전의 유아는 TV와 비디오 시청을 피하고 2세 이상의 어린이는 하루 1∼2시간 정도로 제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아동병원의 브라이언 셀린즈 심리학 박사는 “TV를 보며 저녁식사를 하는 어린이들은 식사를 마친 후에도 오랫동안 TV앞에 앉아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 인해 심각한 소아비만과 당뇨 등 각종 질환이 초래된다”고 말했다.
신경정신과 조만철 박사에 따르면 TV를 통해 얻은 수동적 학습으로는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실험하는 과정이 결여돼 어린이들이 지식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힘들고 스스로 노력해 얻은 것이 아니므로 문제해결능력도 길러주지 못한다. 또 내용의 옳고 그름은 물론 현실과 공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TV가 절대적 가치를 제시한다는 것도 큰 문제다. 조 박사는 “만화를 현실로 받아들임으로써 사람을 해하거나 특히 자기통제력이 잘 갖춰지지 않은 아이들은 폭력을 모방해 범죄에 빠져들기 쉽다. 또 사회성이 결여되고 결국 소외와 이질감에 시달릴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 TV시청 관련 연구결과 및 통계
스탠포드대학 토머스 로빈슨 교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열흘간 TV시청을 통제하는 연구를 실시한 결과 참여자의 체중이 평균 900그램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 신시내티 아동병원과 UC샌디에고 합동연구팀이 6∼12세 아동이 있는 169개 가정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동의 나이가 많을수록 TV를 오래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VCR이 있는 가정과 TV 대수가 많은 가정의 아동들의 시청시간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길었다. 또 어머니의 교육수준이 높은 가정일수록 자녀의 TV시청시간이 짧았고 TV를 보면서 식사를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하루 TV시청 시간이 평균 38∼73분 정도 추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학자들은 발달행동소아학회지 최근호에 전국 가정의 50% 이상이 식사도중 TV를 시청하며 이같은 성향은 사회경제적으로 수준이 낮은 가정일수록, 양부모보다는 편부모 가정일수록, 부모의 학력수준이 낮을수록 비례한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를 게재했다. 비영리단체 ‘TV끄기 네트웍’(www.tvturnoff.org)이 제공한 국내 TV시청 관련통계는 다음과 같다.
▲ 하루 평균 TV시청시간: 4시간 이상
▲ 하루중 TV가 켜져 있는 시간: 7시간 40분
▲ 저녁식사 중 TV를 보는 가정: 전체의 40%
▲ 1세 어린이의 주당 TV시청시간: 6시간
▲ 미국소아과 협회가 권장하는 2세 이하 어린이 주당 TV시청시간: 0시간
▲ 2∼17세의 주당 TV시청시간: 19시간 40분
▲ 어린이가 하루에 각종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시간: 4시간 41분
▲ 부모가 청소년 자녀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 주당 38.5분
▲ 학생이 학업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 프로그램 시청시간: 주당 10시간 이상
▲ 2∼7세 어린이가 보호자 없이 TV를 보게되는 시간비율: 81%
▲ 7세 이상 어린이가 보호자 없이 TV를 보게되는 시간비율: 95%
▲ 학생이 연간 학교서 보내는 시간: 900시간
▲ 학생 연간 TV시청 시간: 1,023시간
▲ 교육TV가 교육과 관련 없다고 스스로 평가한 TV프로그램 비율: 21%
▲ 18세가 될 때까지 시청하게 되는 폭력장면: 20만 장면(살인 1만6,000 장면포함)
▲ TV와 영화가 청소년 범죄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73%
■ 전국 TV끄기 캠페인
“TV를 끄면 생각하고 독서하고 창조하는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이제 TV를 끄고 가족과 대화하며 운동, 독서, 요리, 사색을 하자”
워싱턴DC 소재 비영리단체인 ‘TV끄기 네트웍’(www.TVturnoff.org)에서는 매년 일주일씩 TV끄기 주간을 정해 캠페인을 벌인다. 어린이들의 TV시청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모와의 대화시간이 부족해지고 책을 덜 읽게 되며 폭력물에 지나치게 노출돼 사회문화로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1995년부터 시작된 운동으로 전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프랭크 베스피 사무총장은 “TV를 아예 보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프로그램을 언제 시청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나머지 시간을 잘 활용하자는 것이 운동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8회째를 맞아 지난 4월말 실시된 TV끄기 운동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1만 6,000여 단체가 참가했고 640만명이 TV를 끈 채 지냈다고 주최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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