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에서 본 풍경이 더 아름다운 세 가지의 이유. 비행기 삯, 투자한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상을 진면목 그대로 보려는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돼 있으니 무엇인들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촉촉한 마음 밭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LA 주변에도 구경거리가 지천에 깔려 있다.
촬영 로케이션 헌팅 관계로 에코팍(Echo Park) 주변을 운전하던 윤창식(34·광고 대행사 근무)씨는 제 철을 맞아 일제히 만개한 연꽃을 보고 탄성을 지른다. 7월을 맞은 공원의 잔잔한 호수(Echo Lake)에는 사월 초파일, 사찰에 매달려 있는 연등처럼 수많은 연꽃이 일제히 합창을 하듯 피어 있었다.
평소 연꽃 사랑이 큰 어머니가 보시면 얼마나 좋아 하실까.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드려도 좋겠지. 주말 오전 일찌감치 어머니를 모시고 간 공원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영상으로 남겨두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어머나, 세상에. 어쩜 저렇게 많은 연꽃이 한꺼번에 피었다지." 고영옥(64·주부)씨는 감동으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전주 덕진 공원에서 본 이후 이렇게 많은 연꽃이 한꺼번에 피어있는 모습은 처음이다. 저녁 무렵, 바람에 실려 오는 은은한 연꽃 내음은 무척이나 향기로웠었는데.
"엄마, 이쪽으로 좀 서보세요." 평소 사진 찍기를 즐기는 윤창식씨는 분홍색 고운 옷을 입은 어머니를 연꽃을 배경 삼아 멋진 사진을 찍어드리기 위해 여러 각도를 시도한다. "아니, 나는 말고. 꽃만 찍어." 손을 내저으시긴 하지만 어머니도 여자인지라 카메라를 들이대자 금새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신다.
간절한 마음으로 부푼 봉오리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고 조금은 수줍은 듯,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 연꽃은 고타마 붓다와 마하 가섭이 이를 통해 무언으로 대화를 나누었다는 염화시중의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진흙탕 물 속에서 피어났지만 거기에 물들지 않고, 물의 더러움을 꽃과 잎에 묻히지 않는 연꽃은 맑은 물결에 씻겨도 결코 요염해지는 법이 없다.
진흙 못에서 저토록 청정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건 불가사의이다. 그 자태가 사바세계에 존재하면서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수행의 꽃을 피워낸 붓다의 현존 같기만 하다. 물끄러미 연꽃을 바라보며 향기와 깨끗함, 부드러움과 사랑스러움이라는 연꽃의 네 가지 덕목을 조용히 명상해 본다.
고영옥씨는 전라북도 도전에서 3년 연속 특선을 하기도 했던 전문화가. 바다 속 용왕님이 심청을 담아 보냈던 것처럼 활짝 핀 연꽃들을 보고 있자니 다시 붓을 잡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쳐든다. 동양화 그릴 때 묘사했던 것 그대로 연꽃은 분홍빛과 노란빛을 머금고 피어있으며 이파리는 개구리 왕자는 물론, 개구리 왕눈이 몇 커플이라도 앉을 수 있을 만큼 널찍하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어진 이파리, 꽃꽂이에 많이 이용되는 연밥도 어쩜 그렇게 그림 그대로인지. 연꽃과 함께 물위를 둥둥 떠다니는 부평초, 부평초 같은 우리네 인생이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항상 우리 주변에 있어 고마움을 잊고 살았던 것에 대한 감사를 지척에 피어있는 연꽃들의 합장, 에코팍을 보며 다시 한번 되새긴다.
이번 주말인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에코팍에서는 다 인종 축제, 로터스 페스티벌 (Lotus Festival)이 열린다. 축제에 참가한 수많은 인파는 제철을 맞아 만개 한 분홍빛 고운 연꽃이 평화롭게 물위를 유영하고 있는 모습을 시리도록 눈에 들여놓으며 향유하게 되겠지. 낮에만 개화하기 때문에 만다라 화라고 불리는 연꽃은 7월부터 9월까지가 피크 시즌이니 꽃을 감상하려면 이 시기를 놓치지 말도록.
에코 호수는 자연수가 부족한 LA에서 쉼터를 찾는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있어 규모는 작을 지라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거위와 오리, 가마우지, 그 밖의 여러 야생 조류가 호수의 표면을 헤엄치거나 땅위를 뒤뚱뒤뚱 걷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아주 가끔씩은 십장생 가운데 하나인 거북이가 물 속에서부터 머리를 쳐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송어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한 호수라 레인보우 트라우트를 잡기 위해 낚시 대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들의 모습도 자주 발견된다.
물위를 연결하는 빨간색의 구름다리가 가까이 코리아타운, 리틀 도꾜, 차이나타운이 있는 이 지역 주변의 동양적 색채를 대변해주고 있는 에코팍은 LA 물의 역사를 다룬 클래식 필름 느와르 ‘차이나타운(Chinatown)’의 로케이션 장소. 28년 전 바로 이곳에서 촬영됐건만 내일 영화를 찍는다해도 그다지 다른 영상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호수 주변에는 약 3.2마일 길이의 아주 좋은 조깅 코스가 나 있다.
가는 길 : 101번 프리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가다가 Echo Park Ave.에서 내려 좌회전해 쭉 올라가다 보면 공원의 북서쪽, 연꽃이 피어있는 지점이 나타난다. 2번 프리웨이를 타고 갈 때는 Glendale Bl.에서 내려 Montrose St.과 만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주소는 1632 Bellevue Ave. 문의 전화 (213) 250-3578
글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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