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 신문을 집어든다. 별책이 배달됐다. ‘꿈☆은 계속된다’-. 월드컵 특집호다. 커버부터 붉은색이다. 응원나온 꼬마의 뺨에 그려진 태극 마크가 선명하다. 화보에 눈이 간다. 붉은 함성이 들리는 듯 하다. 감동의 순간 순간이 되살아난다.
무엇이 화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가. 일종의 그리움 때문인 것 같다. 젊음에 대한 아련한 향수일지 모른다. 녹색의 그라운드를 누비는 젊음. 붉게 하나가 된 한국의 신세대. 그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룬 아름다움. 그걸 되새기고 싶은 충동 같다.
미군의 이라크 공격안이 마련됐다. D데이만 남았다. 팔레스타인 자치국 설립을 지지한다는 발표다. 아라파트는 제거되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미군의 오폭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십명의 인명이 희생됐다. 온통 중동발 뉴스다. 미국은 전쟁 중이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된다.
사담 후세인. 야세르 아라파트. 오사마 빈 라덴. 뉴스마다 이들의 얼굴이 어른 거린다. 이들은 어느 틈에 미국의 ‘넘버 1 공적’(Public Enemy)이 됐다. 증오의 표적이 된 것이다. LA국제 공항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순간 전 세계가 긴장했다. 테러인가…. 범인은…. 역시 아랍계다.
폭탄을 이고 뛰어드는 팔레스타인의 10대 소녀. 순교를 희원하며 미친듯이 반미구호를 외치는 어린이들. 그 바닥에는 아랍의 분노가 하얗게 깔려 있다. 분노는 쌓이고 쌓여 종교적 열정으로 화한 느낌마저 준다. 이들은 왜 이처럼 분노하는가.
아랍세계 ‘거대한 시한폭탄’
인구 2억8,000만 22개 아랍국 전체의 총생산은 스페인의 국내총생산을 밑돈다. 아랍권 전체에서 번역 출판되는 책은 연 300여권으로 그리스에서 번역되는 책의 5분의 1 정도다. 인터넷 연결률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수준에도 못미친다. 6,500여만의 아랍인(성인)은 문맹이다….
미제국주의자들의 프로퍼갠더가 아니다. 아랍의 지성들이 유엔의 지원을 받아 펴낸 아랍 세계의 현실 분석 보고서의 일부다. 이 보고서는 아랍 세계가 맞은 가장 심각한 문제로 크게 세가지를 지적한다. 정치적 자유와 현대식 교육이 그리고 여권(女權)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과의 분쟁도 분명히 한 문제다 그러나 오늘날 아랍 세계가 맞고 있는 문제는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80, 90년대 라틴 아메리카와 동 아시아지역에 몰아친 민주화 물결이 아랍 세계는 피해갔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는 진단이다.
그 결과는 혼돈이고 불안이고 좌절이다. 이 상황에서 광신적 과격주의의 목소리만 높다. 분노가 팽배한다. 분노는 증오로 변한다. 증오는 격렬한 반서방, 반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이 정작 주목하고 있는 건 인구동향이다. 아랍 세계를 통틀어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25세 이하다. 38%는 14세 이하다. 이런 구조의 아랍 인구는 20년후에는 4억여명에 이를 전망이다.
아랍의 젊은이들은 그렇지않아도 분노에 몸을 떨고 있다. 해외 이민이 꿈이다. 숨막히는 체제하에서 소망이 없어서다. 이 환경에서 신세대가 태어나 자란다. 빈곤과 무지의 악순환 속에 그들은 결국 좌절된 인생이 될 공산이 크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뭘까. 아랍 세계는 언제라도 터질 준비가 돼 있는 거대한 시한폭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속모를 깊은 분노 탓이다.
100조에 가까운 공적자금이 날라갔다. 국정원장이 대통령 아들에게 떡값을 바쳤다. 6.13 총선 때도 서해교전 위기가 있었다. 청와대가 홍업씨 선처압력을 가했다. 서울발 뉴스들이다.
권력과 돈과 ‘햇볕’이 뉴스의 주 테마다. 권력은 돈을 먹는 괴물인가 보다. 그러므로 재벌 총수가, 심지어 국가 정보를 다루는 국정원장이 정기적으로 대통령 아들에게까지 상납을 했겠지. 그 와중에 공적자금은 그냥 사라지고….
“사단은 분노통해 주로 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볕’에 대한 대통령의 신념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그 원칙고수에는 국방도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은 계속되고….
그 뉴스의 행간 행간에는 비아냥이 배어 있는 듯 하다. 아니 홍소(哄笑)다. 분노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붉은 색은 절대 아니고, 흰색도 아닌, 그러니까 무색에 가까운 ‘차가운 분노’다.
온통 붉은 색 투성이다. 그 월드컵 화보에서 왜 눈을 떼지 못하는 걸까. 하나됨, 그 환희의 순간이 벌써 멀리 가버린 느낌에서인가. 거리를 메운 붉은 함성이 문득 분노의 함성으로 들린다. 환청이겠지.
감동이 절망으로, 환희가 좌절로 바뀔 때 뒤따르는 건 분노다. 분노한 젊은 세대는 때로 예기치 않은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 반응은 파괴적일 때가 더 많다. ‘사단은 주로 분노를 통해 역사하기 때문’이다. 젊은 이들을 화나게 하는 정치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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