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어째 사흘에 한번씩 오는 거야?”
주말에 원고 마감이 있는 한 선배가 어느날 이런 푸념을 했다. 이번 주 원고를 마감하고 숨 돌릴 만하면 어느새 또 원고 마감일이 코앞에 닥치니, 일주일이 7일이 아니라 사흘 단위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새해가 시작된지 두어달 된 것 같은데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매 순간 ‘현재’로 찾아온 180여일의 시간에 나는 무엇을 실어 ‘과거’로 보냈는가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허둥대며 하루를 시작해 바쁘게 움직이다가 파김치가 돼서 잠자리에 들곤 했지만, 그래서 무엇을 얻었는가를 따져보면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늘 시간에 쫓겼다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현대인의 삶의 특징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인간의 수고를 덜고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 고안되고 발달된 기계문명이 우리의 삶을 오히려 더 숨가쁘게 만든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손가락 하나로 척척 일을 처리할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런 첨단 기계들을 사들이자니 돈이 더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니 일을 더 해야 하고, 일을 더 하려니 더 바빠지고… 그래서 시간이 더 빨리 가나, 내가 더 빨리 일을 하나 경주를 하듯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 되었다.
이렇게 ‘빨리 빨리’를 주문 삼아 서둘러 살면서 우리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것일까? 남미 어느 고산지대에는 도무지 서두르는 법이 없어 탐험대들의 애를 태우는 원주민이 있다고 한다. 탐험대의 짐을 날라주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그 원주민은 어느 정도 산을 오르고 나면 아무리 일정이 촉박해도 일단 쉬고 나야 움직인다.
“시간이 없다”는 탐험대의 독촉을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쉬지 않고 너무 빨리 가면 영혼이 미처 몸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다렸다가 영혼을 챙겨서 같이 가야지 너무 서두르면 몸과 영혼이 영영 분리되고 그렇게 되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다.
스페인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다. “서두르는 자가 무덤에 제일 먼저 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비과학적 이해들이 뒤늦게 과학적 사실로 증명이 되는 것이 현대 과학문명의 묘미이다.
독일의 건강연구학자인 페터 악스트박사는 “게으른 사람이 오래 산다”는 이색 주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매사에 너무 악착같이 매달리지 말며, 운동도 일도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잠꾸러기 소리를 들을 만큼 잠을 충분히 자며, 가능한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쉬는 생활습관이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이론은 이렇다. 사람은 모두 정해진 양의 생명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나서 그 에너지가 다 소모되면 삶도 끝난다는 것이다. 평소 생활습관이 활동적이어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 스타일이면 에너지가 빨리 바닥이 나고, 굼떠서 별로 에너지를 안 쓰는 스타일이면 오래 산다는 것이다. 건장한 운동선수들이 대개 일찍 사망하고, 평생 골골 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오래 사는 것을 그는 이런 이치로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생명에너지를 가장 많이 빼앗아 가는 요소가 스트레스라는 점. 스트레스를 받으면 각종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혈압이 상승하면서 칼로리 소모가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평소 아무리 에너지를 아껴도 스트레스 한번 크게 받으면 모두 헛수고가 된다는 말이다. 5분, 10분을 다투며 스트레스 속에 사는 현대 일중독자들은 생명 에너지를 물 쓰듯 낭비하는 셈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 비슷비슷하게 부여받았을 생명 에너지를 어떻게 쓸 것인가는 순전히 개인적 선택이다. 단순히 오래 살 목적으로 게으름만 피울 수도 없는 일이다. 밤새워 일한 후 맛보는 성취감도 인생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단 영혼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더 빨리’ 일변도라면 곤란하다. 이따금 가만히 서서 흔들리는 풀잎도 보고, 저녁하늘의 노을도 바라보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그런 시간들이 추억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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