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월드컵 4강’에 열광하는 이들은 한인들말고 또 있다. 바로 히스패닉 이웃이나 직장동료들이다. 오가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점심 사라”며 마치 자기 일 인양 축하해주고, 기쁨도 나눠 갖는 이들은 이미 타인종이 아니다. 한인업체에는 말과 문화가 같아서 편한 한인직원 이상의 역할을 하는 히스패닉 직원이 한 둘이 아니다. 한인업체의 히스패닉 직원중에는 이제 간부급인 디렉터에 승진한 이들도 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라는 만국 공통어를 매개로 한인들과 부쩍 가까워진 한인업체의‘베스트 아미고’들을 소개한다.
LA 한인타운 중국식당 ‘용궁’의 발렛 요원 헤수스 에르난데스(45)는 타운의 대표적인‘베스트 아미고’중 한 사람이다. 이마에‘성실’이라는 두 글자를 써 놓은 것 같은 인상의 그는 불볕 더위나 을씨년스런 겨울비를 가리지 않고 지난 15년간 용궁식의 주차장이라는 한 곳을 지켜왔다.
‘킹 발렛 파킹’이라는 주차전문회사 소속 직원이지만 이제는 용궁을 찾는 손님들은 물론 용궁의 직원들은 물론 그 자신도‘용궁 소속’으로 생각한다.
87년인지, 88년인지 정확히 언제부터 이곳에서 일하게 됐는지 기억조차 하기 어렵다는 헤수스는 발렛 파킹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다. 까맣게 탄 얼굴로 용궁을 찾는 단골들에게 “하우 아 유, 아미고”라고 인사하면서 그들이 건네는 차 열쇠를 받아 맵시있게 후진, 나중에 빼기 좋게 차를 주차시켜 놓는데서 그의 일은 시작한다.
용궁에는 크고 작은 단체손님도 끊이지 않지만 그의 성실하고, 능숙한 발렛 덕에 주차를 불평하는 고객은 거의 찾을 수 없다는 전언이다.
그를 오랫동안 보아온 단골들은 차 안에 중요한 것이 들어 있어도 헤수스를 믿기 때문에 주저 없이 키를 맡기고 그럴 때면 헤수스는 보람을 느낀다.
용궁 왕덕정 사장은 "오래 같이 일하다 보니 이젠 한 지붕 아래의 직원으로 여기게 됐고 연말엔 다른 직원과 같이 연말 보너스도 주고 있다."고 귀뜸한다.
헤수스는 "손님이나 용궁직원들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얼굴만 보면 무슨 차에 어떤 키인지 훤히 알 정도가 됐다"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구스 매뉴팩처링’ 디렉터: 핵터 비바
핵터 비바(43)는 사우스 게이트에 있는 한인 최대의 봉제업체 ‘구스 매뉴팩처링’에서 몇 안 되는 디렉터 중 한 사람이다. 구우율 사장과 송기환 부사장 등을 제외하면 수퍼바이저나 매니저 보다 높은 최고 직책이다.
회사 초창기인 79년 견습으로 출발한 그는 직원만 600∼900여명을 감독하는 봉제 디렉터로 활약하며 23년 세월을 보상받고 있다. 전체 직원 1,700여명 가운데 다수인 라티노 직원들에게 일종의 롤 모델인 셈.
송 부사장은 그에 대해 "재직기간으로 보면 나보다 1년 선배인 봉제분야의 베테런"이라며 신뢰를 보인다. 비바 또한 "빛나는 미래를 보여주는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축복"이라고 화답한다.
"지난 크리스마스엔 회사로부터 7만달러 상당의 캐딜락SUV ‘에스컬레이트’를 선물 받았다"며 "뉴욕과 멕시코에서 스카웃 제의도 받았지만, 이 회사는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하는 그는 한인 업체에서 확실히 뿌리내린 간부사원이었다.
한남체인 그로서리 부매니저: 헤나로 라모스
LA한남체인 그로서리 담당 부매니저 헤나로 라모스(33)는 마켓에 없어서는 안 될 베스트 아미고.
8년째 이곳에서 일하는 그는 아메리칸 그로서리 인벤토리를 관리하고 직접 도매상에 주문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세일품목과 주문량도 매니저와 상의해 그가 결정한다.
한인 마켓은 주로 한국 식품을 다루는 업종의 특성상 라티노 직원이 이런 위치에 오르는 예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남체인측은 라티노 직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데 인색하지 않다고 한다. 피터 양 제너럴 매니저는 "담당 분야에 훤해 자기 일은 알아서 책임있게 처리하며 자기와는 상관없는 섹션이라도 헝클어진 물건을 보면 꼭 정리하고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월급, 베니핏, 근무시간 면에서 모든 직원들이 똑같이 대우받고 친밀한 분위기라 지금 일에 만족한다"는 헤나로는 ‘새우깡’ 같은 단어는 물론 신문 제목도 읽을 만큼 한글 발음에 익숙하다. "라티노들과 같이 가자는 생각으로 믿고 맡겼더니 발전이 빠르고 신의도 돈독해졌다"는 것이 마켓측의 말이다.
가주마켓 우동코너 : 네니
멕시코 출신인 네니디아 드루즈 올리바레즈는 가주마켓 내 음식점 가주 우동코너에서 5년째 잔치국수를 말고 있다. 잡채밥과 우동도 능숙히 해내는 그녀의 손맛에는 이제 단골도 많다. 이 집 손님들은 네니를 한국말 잘하고 인상 순박한 라티노 여인으로 기억한다.
자신을 ‘김 아줌마’라고만 밝힌 우동코너의 한인 아주머니는 "10년을 여기서 일했는데 네니 처럼 오래 있는 이는 처음"이라며 "한국말을 1년 만에 다 익혀 손발이 척척 맞고 일 솜씨도 야무지다"고 칭찬이다. "어른에게는 그 어렵다는 존댓말도 꼬박꼬박 맞게 써 더 정이 간다"고 그는 덧붙였다.
한국말과 한국음식, 한인 손님들이 일상처럼 친근해진 그녀는 이 집에 없어서는 안될 최고 아미고다.
자바시장 경비 : 호세
다운타운 자바시장의 한인점포 700여 개를 거의 매일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사설 경비회사인 ‘베스트 시큐리티’의 경비원 호세(28). 본명은 힐베르토 루나 말도나도지만 한인들과 함께 일하면서 편한 이름인 호세를 그냥 쓰게 됐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자바시장 곳곳의 한인점포를 지켜온 지 벌써 5년. ‘사모님’ ‘아가씨’란 말이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고 친한 한인 친구와 쌀음료를 즐겨 마시는 정도가 됐다.
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다가 경비일을 시작한 호세에게 이 일은 여러모로 행운을 가져다 줬다. 배우자도 자바시장 경비를 하던 중 만났고, ‘베스트 시큐리티’조갑제 사장으로부터는 굳건한 신뢰를 받게 됐다.
조사장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해 내가 없더라도 이 친구가 비상 상황을 처리할 능력이 있다"면서 "이젠 동생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달 평균 한 두건의 도난 사건이 발생하는 자바 시장을 지키는 호세는 밤에는 인근 어덜트 스쿨에서 ESL수업을 듣는 주경야독 강행군을 하고 있다.
태권도 빨간 띠의 호세는 공부도 계속 열심히 해서 몇 년 후에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6가 상가 발렛 요원:토니
웨스턴과 6가 ‘미스터 커피’ 입주상가의 발렛 요원 토니(29)씨는 ‘미스터 스마일’이다. 쉴 새 없이 차가 밀려드는 이 상가에서 오후 2시∼밤 10시까지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시종 웃는 얼굴로 종종걸음치는 그에게 붙은 별명이다. ‘토니’는 이곳 상인들이 붙여준 애칭. 원래 이름은 마르코 안토니오 암브로시오로 타운에서 발렛 경력만 9년째다. ‘스탠다드 파킹회사’ 소속으로 7년 전 이 상가에 정착한 후 지금은 상가의 한인업주 모임인 상조회 직속으로 월급을 받을 정도로 신임이 돈독하다.
상조회장인‘벨컴’의 윌리엄 한씨는 "7년째 보지만 언제나 밝고 성실하다"며 "저렇게 동동 뛰어다니는데 팁도 안주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다 화가 난다"고 한다. 그러나 토니는 팁 안주는 것 보다 "손님들 협조가 없을 때가 더 어렵다”며 "더블 파킹하면서 열쇠 안 맡기는 얌체 손님은 절대 사양"이라고 한다.
멕시코 시티 출신으로 89년 미국에 왔다는 그는 "그동안 열심히 일해 장만한 애마 니산 300ZX가 곧 페이오프"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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