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 야구, 농구 등에 밀려 미국에서는 인기가 없지만 세계인들에게서 가장 사랑 받는 스포츠는 축구다. 전 후반 45분씩 90분간을 22명의 선수가 끝임 없이 뛰어도 점수가 한 두 골밖에 나지 않아 어떻게 보면 지루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번 스페인과의 8강전을 보고 난 후에는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정규시간 90분에다가 연장전 30분 모두 120분간을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한 골을 애타게 기다리는 심정은 사람의 감정을 극한까지 몰고 간다. 이것이 다른 스포츠에서는 맛볼 수 없는 축구의 묘미다. 올림픽과는 달리 월드컵은 축구란 단일종목으로 국가의 명예를 걸고 선수들이 대결한다. 한국은 1954년의 첫 출전이후 1986년부터는 4년마다 매번 출전하였고 금년에는 일본과 공동 주최국이 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전적을 보면 4무 10패로 한번도 이겨본 경험이 없었다. 따라서 금년 대회의 목표를 의욕적으로1승과 16강 진출로 잡았는데 그만 그게 엄청난 이변으로 치달을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간 유럽과 남미국가들에 의해 독점되어 온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첫 승의 관문을 통과하더니,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이라는 막강한 우승후보들을 차례로 이겨서 4강에 진출하였다. 월드컵에서 3번 우승하였고 2006년 경기의 주최국인 독일 팀을 맞아 후반에 기습 골을 먹은 아쉬움만을 제외한다면 대등한 경기를 벌린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한국팀에 가혹할 정도로 휘슬을 불어대는 스위스 주심이 야속하기도 하였지만 이로써 심판의 편파판정 때문에 졌다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주장을 일축하게 되었다. 한국팀의 4강 진출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아시아국가들 더 나아가서는 제삼세계국가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 준 계기가 되었다.
이번 월드컵 공동개최와 4강 진출은 대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대내적으로는 한국민들의 단합과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월드컵 개막직전의 한국은 집권당의 레임덕 현상, 권력계층과 대통령 친인척의 권력형 비리,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지역, 이념, 세대간의 극심한 갈등으로 인해 사회가 총체적 혼란에 처해 있었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한국성인의 40%가 이민을 하고 싶다는 여론조사는 한국사회에 뿌리깊이 박힌 냉소주의 혹은 패배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팀이 16강, 8강 그리고 4강으로 한 걸음 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국민들은 경기장에서, 광장에서, 길거리에서, 집에서 환호하며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기존의 개념과 사고의 틀을 벗어나고 있었다. 한국축구팀은 오히려 후반전에 더욱 상대팀을 압박하는 공격적 모습을 보여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히딩크라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동양인이 체질적으로 체력과 스피드에서 서구인을 따라 갈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12번째 선수라고 불리는’붉은 악마’ 응원단은 질서정연하면서도 엄청난 응원을 통해 한국팀으로 하여금 홈그라운드 이점을 최대한 살리게 한 공로가 크다. 4,700만 인구 중 700만이 집을 나와 무리를 지어 경기를 관전하며 응원하는 모습에서 한민족의 잠재성을 발견한다. 자신들이 이룬 업적에 대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단결하여 이번처럼 환호한 적이 없었다. 해외에 흩어져 사는 500만 한국동포들도 뿌듯한 자긍심과 한민족의 정체감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미국과의 경기를 하기 전에 반미감정이 심화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이 미국의 16강 진출을 도와준 결과로 나타나 미국언론들이 한국에 대해 ‘감사합니다’등 우호적 반응을 보인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다. 북한동포들에게도 부분적으로 녹화 방영되었다니 그들도 한민족의 힘과 위대함을 느꼈을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11살 된 막내가 독일과의 경기 후 “나도 한국말을 더 많이 배워 한국에 가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이번 월드컵경기를 계기로 표출된 한국민의 잠재력을 어떻게 사회 각 부문으로 승화시킬 것인가가 앞으로의 숙제이다. ‘히딩크를 대통령으로’라는 구호가 말하듯이 경제력과 국민의식을 따르지 못하는 정치지도자들이 기존의 개념에서 벗어나 합리성과 국민화합에 기초를 둔 새로운 도약의 틀을 짜야 한다. 한국정부에서는 16강에 진출할 지라도 병역미필 10명의 선수들에게 병역혜택불가라는 기본방침을 정했었다.
하지만 선수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월드컵이 끝나기도 전에 바꾸었다.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가 막강 권력을 휘두르는 대표적 예이다. 그러니까 근자에 보듯이 대통령 아들의 친구만 되어도 큰 파워를 발휘한다. 행정부가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법 해석을 하기보다는 입법부의 국회의원들이 병역법 월드컵 특례조항을 만들어 행정부에서 집행토록 한다면 좋으련만 16대 하반기 원구성도 못하고 있는 그들을 볼 때 너무 지나친 바램일까?
중계방송 중에 가끔씩 비치는 웅장한 축구경기장들의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 어릴 때 골목길에서 혹은 잔디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던 학교 운동장에서 점심시간 혹은 방과후 조그만 고무공을 좇아 우르르 몰려다니며 공을 차던 모습이 연상되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평균 3게임의 월드컵경기를 치르기 위해 개당 약 2,000억 원을 들여 전국 10개 도시에 건립한 다양한 모습들의 축구전용구장들은 한국의 국력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홍보한 효과가 엄청나다.
하지만 인구 8만5,000명에 불과한 제주도의 서귀포에 4만명 수용의 축구전용구장을 세운 것은 경제논리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최신호 비즈니스위크지에 의하면 한국국민의 13%가 초고속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단다. 이는 미국의3%와 일본 및 유럽의 각각 1%에 비한다면 21세기 정보화시대에 대비한 인프라 면에서는 또 한번의 도약을 위한 준비가 잘 진행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 각 분야에서 히딩크식 경영방법이라 불리는 서구인들의 합리성과 신바람으로 대표되는 한민족의 감성적 역동성이 결합된다면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중심국으로 우뚝 솟아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소원인 통일도 자연스럽게 오리라.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짝~짝~짜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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