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이 8강의 고지를 넘어 4강을 향해 선전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붉은 악마’로 불리는 한국응원단의 눈부신 활동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축구 붐과 함께 온 국민 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한인들 사이에서도 붉은 옷과 붉은 모자가 붐을 이루어 거리에는 붉은 물결, 상가에는 붉은 옷에 대한 특수로 즐거운 비명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붉은 악마’인가 하는 찬반론이 심심찮게 일고 있다. 붉은 악마란 명칭에 대해 대개 종교적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비판적이다. 불교와 기독교 등 종교에서는 악마를 최악의 부정적 상징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상에 아름답고 좋은 명칭이 많은데 왜 악마, 그것도 가장 강조된 붉은 악마란 말을 써서 스포츠정신과 국가 이미지를 그르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팬들 중에는 그 명칭이 뭐가 어떠냐고 변호한다. 오히려 ‘붉은’ ‘악마’ 등 강렬한 단어로 명칭을 씀으로써 열광적인 응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극력 찬성한다.
’붉은 악마’는 PC통신상의 축구 동호회원 500여명이 모태가 되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한국팀의 16강 응원을 위해 조직된 응원단 명칭이다. 이 응원단은 불과 5년 사이에 12만 명의 회원을 가진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 대한축구협회의 지원을 받고 있고 대기업들로부터 재정후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번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 붐이 전 국민 사이에 열풍처럼 휩쓸자 ‘붉은 악마’는 전 국민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했다. 마치 중국의 법륜공처럼 무섭게 번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붉은 옷을 입혀 거리를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여 놓았다.
악마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영으로 때로는 사람들의 귀염을 받는 존재일 때도 있다. 우리 민화 속의 도깨비나 서양 동화의 요정들이 이런 귀여운 악마들이다. 그러나 종교에서 악은 선의 반대 개념이며 악마는 선에 적대하여 인간을 멸망과 죽음으로 몰아넣는 나쁜 귀신이다. 기독교에서는 사탄이 악마인데 악마는 곧 하나님의 적인 것이다. 사람의 사고는 어떤 형태이든 종교적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악마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존재로 보편 타당화 되었다.
이 악마란 말 앞에 붙은 붉은 색은 또한 대단히 강한 표현이다. 붉은 색은 빨강 색 계통으로 식물의 꽃빛깔로 대표되는 자연의 기본 색깔이다. 이 색깔은 여러 가지 의미와 느낌을 주지만 강렬한 자극을 주는 것이 큰 특징이다. 정열, 흥분, 적극성 등을 내포하기 때문에 진홍빛 사랑, 붉은 마음 등 상징적으로 쓰이고 때로는 광기로 통하는 색깔이다. 그러므로 과격한 혁명은 붉은 색을 사용했다. 공산주의는 적기와 적군 등 붉은 색을 좋아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 극렬한 노조파업을 할 때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는 것도 투쟁에 대한 열정을 표시하고 군중을 흥분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런데 ‘붉은 악마’는 악마를 붉은 색으로 수식함으로써 더 극렬한 악마를 만들었다. 축구를 응원하는데 있어 뜨뜨 미지근하게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미친 듯이 극렬하게 응원하자는 의미에서 응원단의 이름으로서는 잘 붙여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 국민이 붉은 색 일색이 되어 ‘붉은 악마’를 외쳐댄다면 축구 이전에 그 저변에 어떤 정서적 문제가 없는지에 관심을 가져볼 필요도 있다. 즉 한국인의 정서에서 이제는 도덕적 선악 관념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개인적 성공, 집단적 성취만 중요하게 된 것은 아닌지, 또 남을 누르고 승리하는 자만이 생존할 수 있는 극단적 생존경쟁의 철학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으면 막연한 현실적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 어떤 분출구를 갈망하는 것은 아닌지. 말하자면 붉은 악마들이 판을 치는 사회이기 때문에 ‘붉은 악마’가 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든다.
아무튼 ‘붉은 악마’의 응원은 대단했다. 세계적인 구경거리이고 화제 거리가 됐다. 월드컵대회가 끝나면 우리는 붉은 옷을 벗어버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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