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의 새 역사가 열린 데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과 선수들의 각고의 노력, 그리고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붉은 악마’를 주축으로 한 온 국민은 친선경기가 열릴 때면 어김없이 경기장을 찾아와 선수들을 격려했고 특히 이번 월드컵이 개막한 이후 조별리그 3경기에서는 전국토를 붉은 물결을 이루며 응원전을 펼쳐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
히딩크 감독의 국제축구를 읽는 눈과 치밀한 준비, 뛰어난 용병술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대한축구협회가 1년6개월동안 20여억원을 들여 영입한 히딩크 감독은 선진축구라는 이상과 한국축구의 현실 사이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월드컵 16강을 일구기 위해 동양의 낯선 땅을 찾았으나 비전이 보이지 않아 좌절감도 많이 느꼈고 국내 축구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준비에 착수했다. 코치들로부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선수가 있다는 보고를 받으면 직접 불러 장기간 테스트하며 자신의 축구를 소화할 수 있을지를 점검했다.
시험무대에 오른 선수만 무려 60여명. 이중 압박축구가 세계를 지배할 것으로 보는 자신의 축구관에 부응하는 선수들은 살아 남았고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소속팀으로 돌려보냈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꿰뚫어 본 히딩크 감독은 국내 전문가들로부터 거센 비난까지 이는 가운데에서도 선수들에게 강도높은 체력훈련을 실시했다.
90분내내 지칠 줄 모르고 달릴 수 있는 무쇠인간이라야만 월드컵 무대에서 통할 것으로 내다보고 강도를 높였다. 이는 국내 전문가들로부터 `기술은 언제 가르칠 것이냐’는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결국 히딩크 감독의 작전이 맞아 떨어졌다.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위치시키는 능력에서도 히딩크 감독은 탁월했다. 측면에는 빠른 선수들을 배치, 몸집이 큰 대신 둔한 상대팀 수비수들을 공략하게 했고 미드필더로 뛰던 안정환을 스트라이커로 전환해 톡톡히 효과를 봤다.
▲태극전사들의 기량 성장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지도도 중요하지만 어째튼 일등공신은 선수들이다. 소속팀이 속한 리그에서 뛰랴, 대표팀 전지훈련에 불려 다니랴 힘든 나날이었지만 선수들은 오로지 월드컵 16강을 이루기 위해 매진했다. 소속팀의 반대로 인해 전지훈련이나 평가전에 풀타임 참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지만 가능한 범위내에서 고된 훈련캠프에 합류했다. 최근 6개월동안은 거의 집을 떠나 있다시피 했다.
북중미골드컵대회 및 남미전지훈련에 참가하느라 1월초 집을 비운 뒤 2월 중순이 돼서야 귀국한 것을 시작으로 3월에는 스페인에서 전력을 다졌고 4월부터는 서귀포, 경주 등 국내에서 최종 담금질을 했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기량은 나날이 발전해 갔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파워프로그램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체력을 만들었다. `공포의 삑삑이’로 불리는 20m왕복달리기(셔틀런)에서도 유럽 빅리그 선수들의 기준인 120회를 대부분 돌파했고 몇몇 선수들은 140회도 가뿐히 넘어섰다.
기술적으로도 큰 폭의 발전을 일궈냈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을 막을 수 있는 대인마크능력에서부터 조직적인 패스로 상대진영을 조여가는 공격력도 부쩍부쩍 성장해 갔다. 심지어 유니폼을 잡는 상대선수들을 뿌리치는 기술과 경고를 받지 않으면서 지능적으로 파울하는 법도 익혔다.
▲협회의 아낌없는 지원
협회는 히딩크 감독외에도 얀 룰프스 코디네이터, 핌 베어벡 코치 등도 영입해 한국의 박항서, 정해성, 김현태코치와 함께 지도체제를 완비했다. 나아가 히딩크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여 체력전담 트레이너인 베르헤옌 레이몬드, 재활전문트레이너인 아노 필립 등도 훈련캠프에 합류시켜 완벽한 지원체제를 구축했다.
선수들도 특급대우를 받아 소위 `축구할 맛이 났다’. 비행기를 탈 때는 항상 비즈니스클래스에서 아늑함을 느끼며 장거리여행을 할 수 있었고 숙소도 `특급호텔 1인 1실’시대가 열렸다. 훈련수당도 올해부터 하루에 15만원으로 상향조정돼 금전적으로도 많은 보탬이 됐고 간간이 나온 특별보너스도 선수들의 사기를 올렸다. 협회는 또 정부지원을 받아 파주트레이닝센터를 건립, 선수들이 최상의 조건에서 기량 연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고 지난해 1월이후 모두 32번의 A매치를 주선, 실전감각도 키우도록 했다.
▲전국가 차원에서의 지원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진 `대∼한민국’의 함성도 큰 몫을 했다. 붉은 악마에서부터 시작된 국가대표팀 서포터스는 날이 갈수록 비슷한 조직이 늘어가면서 끝내는 온 국민이 모두 응원단이 됐다.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 스탠드는 온통 붉은 물결로 가득찼고 서울 등 대도시의 주요 거리는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같은 응원에 세계 언론은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며 선진국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창의적인 응원 문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깊은 산속을 헤매고 다니는 심마니들의 조직인 한국산삼협회는 국가대표선수들의 기초체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산삼을 보내왔고 각종 건강식품 개발 업체들도 앞다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도 많은 종류의 건강식품이 전달돼 도핑테스트에 걸리지 않는지를 테스트해 본 뒤에야 선수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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