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날’을 10여일 앞둔 지난 주말 남가주 한인사회에서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일 새벽 글렌데일에서 50세 전후의 아버지가 20대 초반의 아들을 칼로 찔러 숨지게 했다. 아버지는 곧이어 자살을 기도했지만 미수에 그쳐 1급살인 혐의로 입건되었다.
이제까지 남가주 한인사회에서 비극적인 사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들이 부모를 살해한 케이스,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동반 자살한 케이스, 장모와 아내를 살해한 케이스등 잊을 만하면 한번씩 가족이 가족을 해치는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충격의 도가 이전과 다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것이 부모의 본능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수 있을까”“그 아버지가 제 정신이었을까”- 월드컵에 온통 관심이 쏠리고, 한국의 폴란드 격파로 한껏 치솟은 흥분 속에서도,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의식의 언저리에는 사건이 주는 충격이 모난 돌처럼 아프게 박혀 있다.
무엇이 아버지를 그처럼 난폭하게 만들었을까. 사건현장에는 그들 부자 외에 다른 목격자가 없었으므로 정확한 정황을 알 길은 없다. 아들은 말을 할 수 없고 아버지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눈앞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로 격렬한 분노에 휩싸여 칼을 휘두르다 자신도 믿기 어려운 처참한 결과를 맞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될 뿐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때 그는 터지기 일보직전의 압력밥솥 같은, 극도로 불안정한 감정상태로 살아왔을 것이란 짐작이 든다. 수년간 직업 없이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니 좌절감과 고립감이 깊었을 것이고, 하루 10여시간씩 식당 주방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자격지심이 짐작이 된다. 현실에 대한 울분은 엉뚱하게도 가족에 대한 폭력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고, 고생하는 엄마와 노는 아버지를 사춘기때부터 지켜본 아들이 아버지에게 항상 고분고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정신적 고통이 심했을 조건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륜을 저버릴 만큼 이성의 눈이 멀어버리는, 정신착란적 감정상태까지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 남성들이 주어진 조건 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종종 사태를 최악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요인을 나는 ‘가장 콤플렉스’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비해 어처구니없이 극단적인 가정내 상해사건들을 보면 중년의 ‘가장’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너 죽고 나 죽자’식 폭력행사로 벌어진 케이스들이 많다. 그 분노의 끈을 따라가 보면 반드시 만나는 것이 “나를 무시했다”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괴상한 침대 이야기가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침대가 괴상한 것이 아니라 침대 주인이 괴상하다.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강도는 나그네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재우기를 즐겨했다. 괴상한 일은 나그네가 잠자리에 들고나면 벌어진다. 사람이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잡아당겨서 늘리고, 더 크면 침대 밖으로 나온 다리부분을 잘라 버린다.
이민1세 남성들이 선뜻 버리지 못하는 ‘가장’에 대한 고정관념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흡사하다. 잠을 잘 사람 즉 현실에 맞춰 침대를 바꾸면 좋을 것을 ‘침대’를 고집하다 보니 여러 사람이 다친다.
그들이 아는 가장, 자신들의 아버지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가장은 많든 적든 자신이 번 돈으로 가족들의 의식주를 책임지고, 가정이라는 수직구조의 맨 위에 군림하는 존재라는데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밖에서 아무리 하찮은 남성이라도 집에만 가면 왕이 되었다.
그런데 이민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똑같이 나가서 일하는 아내, 독립적 사고를 갖도록 교육받는 자녀들에게 남편·아버지는 가족을 이끄는 리더일뿐 더 이상 왕은 아니다.
전신마비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세아이의 아버지이다. 자기 몸도 못 가누는 장애인들은 어떻게 아버지 역할을 할수 있느냐고 어느 기자가 물었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자기 삶에 끌어들이십시오”
가장들이 꼭대기에서 내려와 아내와 자녀들과 같은 위치에 선다면, 그래서 힘들 때 부담없이 도움을 청할 수 있다면, 끔찍한 가정폭력 사건들은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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