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폴란드를 2대0으로 이겼다’-.
한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는, 간단하다면 아주 간단한 뉴스다. 이 뉴스의 파장이 그런데 엄청나다. 한국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다. 미주 한인사회도 마찬가지다.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1승을 올린 데 불과하다. 그런데 너나 할 것 없이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버린 것이다.
“월드컵 첫 승리의 감격이 아직도 짜릿한 여진을 남기고 있다. 폴란드에 2대0 첫 승리로 우리 국민은 뿌듯한 자존심과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개최국으로서의 체면은 물론, 월드컵을 다섯 번 출전하고도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던 콤플렉스를 말끔히 씻게됐다. 무엇보다도 우리 축구가 세계 강호와 겨루어도 손색없는 수준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국내 신문 사설이다.
“우리는 마침내 해냈다…”
월드컵에서의 첫 승리와 함께 한국 신문들이 일제히 내뱉은 외침이다. TV화면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 집단적 흥분에 도취한 한국인의 모습 등을 쉬지 않고 내보낸다. 마치 전쟁에서라도 승리한 분위 기다.
‘우리’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우리 축구의 비원을 풀었다’ ‘우리 모두의 승리다’ 등등. 또 ‘한국축구’가 유난히 강조된다. 사람마다 ‘한국축구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다. ‘한국축구’에 대한 각양의 예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급격히 조성된 집단적 연대감 속에 새삼 ‘한국축구’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축구가 지닌 마력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시아 지역에는 정치 축구만 군림해왔다.” 뉴스위크의 보도다. 축구 경기는 중요한 국가적 이벤트다. 그러므로 축구선수는 국가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전사(戰士)다. 이 ‘정치의 축구’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공통 요소로, 서열만 고집하는 유교적 의식이 고착화된 축구가 아시아 축구라는 지적이다.
항상 정치논리에 휘둘려 뭔가 뻣뻣한 내셔널리즘에 갇힌 축구가 한국축구이고, 중국축구이고, 일본축구였다는 이야기다. 뉴스위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러나 그게 아니다. 이런 아시아 축구가 유럽출신 지도자 영입과 함께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축구를 말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게 유럽과 남미축구다. 그러나 축구의 양대 산맥인 이 둘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게 요즘의 추세다. ‘유럽식 조직’에 ‘남미식 자기표현’이 가미되는 형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말하자면 축구의 세계화 시대를 맞고 있다는 것.
자국 선수만 고집하는 순혈주의도 무너지고 있다. 세계 최강이라는 프랑스축구도 따지고 보면 알제리 태생의 지단 등 외국출신 선수들을 입양해 그들의 파워와 스피드를 시스템에 접목시킨 합작품이다. 미국축구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일본축구도 순혈주의를 버린 지 이미 오래다.
60년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북한축구가 빛을 못 보는 것도 이런 추세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적 이유에서든, 정치적 이유에서든 세계적 흐름과 단절된 북한축구는 몰락의 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6강 진출의 신화를 자랑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독일과의 경기에서 초토화 된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정치논리 때문에 해외진출과 담을 싼 우물안 개구리 축구 탓이 크다는 것이다.
다시 한국축구로 되돌아가 보자. 폴란드를 잡은 한국축구는 그러면 진정한 의미의 한국축구일까. 엄밀히 따지면 한국축구 이전에 ‘히딩크축구’라는 정의가 정답 같다. 선수들의 기초체력 훈련에서 기본기 등을 다진 게 히딩크였고 또 그의 전략이 주효, 결국은 승리를 따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선수들이 역할이 무시되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선수는 같은 선수들인데 히딩크라는 유럽의 축구지도자가 지휘봉을 맡았을 때 너무나 다른 결과가 나와 해본 말이다. 폴란드를 이긴 축구가 진정한 의미의 한국축구인지 어쩐지는 그러므로 사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시대가 순혈주의도 무너지는 세계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월드컵에서의 첫 승리’는 한국축구의 세계화 실험의 성공사례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젊음과 투지가 넘치는 한국선수들을 세계적 명장이 가다듬을 때 국제무대에서 통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세계화 실험의 성공적 첫 단계인 것이다. 이는 엄청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논리에 갇힌 축구, 폐쇄적인 내셔널리즘에 꽁꽁 묶인 축구, 이런 틀에서 벗어나 ‘열린 축구’로 나아갈 때 한국축구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는 비전이다. 이 비전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낸 게 ‘히딩크축구’ 아니, 2002년 6월 시점의 ‘한국축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게 그런데 축구에만 해당되는 원칙일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