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생각
▶ 조광동 본보 시카고지사 편집국장
어쩌다 보니 차 두 대를 모두 한국차로 구입하게 되었다.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에서라기보다는 값이 좋고 품질도 좋다는 생각에서 대우차를 3년반 전에, 현대차를 3년 전에 샀다. 대우차를 처음 산 후 어느 미국식당엘 갔을 때 틴에이저 백인 소년이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며 “아주 멋진 카”라고 했을 때 마냥 가슴이 뿌듯하면서 기분이 좋았었다.
대우차가 좋다는 생각에서 다시 현대차를 샀을 때도 아이들은 ‘메이드 인 코리아’에 으쓱해 했고, 우리 가족은 코리안 카 가족이라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조국 사랑 마음을 심어준 것처럼 흐뭇함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만족과 자부심이 퇴색하기 시작했다. 대우차에 잔 고장이 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 불평도 늘어갔다. 그래도 워런티가 있을 때는 불편하다는 정도의 불평이었으나 보장기간이 지나면서부터 아이들과 아내는 대우차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현대차는 워런티가 10만마일이라 가끔씩 문제가 있어도 별걱정이 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처음에는 좋다고 대우차를 찾던 아내가 내가 타던 현대차로 바꾸면서 대우차는 내 차례가 되고 가끔씩 딸아이가 대우를 찾았다. 딸아이가 대우를 운전하는 이유는 CD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족들에게 구박을 받는 대우차가 다소 안쓰럽기도 하고, 묘하게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 같아 나는 대우차에 대한 불만을 가급적 억제했다. 타인종 사람들이 대우차가 어떠냐고 물어도 좋다고 대답을 했다. 이런 내 태도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정비소를 드나드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를 가장 속상하게 하는 것은 자동차 부속품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일본 자동차 부품을 주문하면 오버나잇 메일로 다음날 배달돼요. 미국차는 2~3일 걸렸었는데 요즘은 다음날로 가져다 줄만큼 서비스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차는 1주일이 걸렸었는데 2~3일로 단축되고 있어요. 그러나 대우가 어려워지면서 부품 배달이 갈수록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대우차의 애프터서비스에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대우와 GM의 합병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최근 대우 아메리카가 파산하면서 부속품 조달이 더욱 힘들어지고 대우 딜러가 남은 자동차를 헐값게 판다는 보도를 들으면서 실망과 분노로 바꾸어졌다.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이문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익이 안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미국에 굴러다니는 17만대 운전자들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아 더욱 분통이 치밀었다.
돈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앞으로의 대우 GM차의 이미지를 위해서 판매망을 인수하고, 불만이 커지고 불안해하는 대우차 소유주들을 안심시키고 부품 조달에 최우선을 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다.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당하는 17만대의 대우 운전자들이 느끼는 2류감과 배신감은 생각보다 깊다. 대우 아메리카가 파산했어도 대우 부품에 차질이 없다고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대우 운전자들은 많지가 않다. 앞으로 이들 대우 운전자들이 또 대우차를 구입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할 것이다. 나는 물론 대우차를 다시 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불신이 대우에만 그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중학교 때 한국에 가서 독립기념관을 관람하고 돌아온 아들아이가 앞으로 자기는 일본 물건을 안 사겠다고 기염을 토한 후 커가면서, “그런데 아빠, 자동차는 일본차 사고 싶어”하고 변하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일본차를 산 사람들은 불평이 거의 없어요”하는 말을 통해 일본차는 믿을 수 있는 차로 신뢰의 이미지를 깊게 만들고 있다. 대우가 주는 상처로 “한국차는 믿을 수가 없어요”하는 국가 불신으로 확대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7만대를 운전하는 가족이 4명일 경우 68만명이 대우를 불평하고, 68만명이 10명에게 대우를 악담하면 680만명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불평은 대우로 그치지 않고 ‘코리안 카’의 이미지와도 연결될 수가 있을 것이다. 물건을 팔 때 보다 판 뒤에 고객 관리를 잘하는 장사가 진짜 장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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