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는 미국의 힘과 부의 상징이다. 미국이라면 이를 북북 가는 북한과 이란, 이라크에서도 달러는 환영받는다. 그러나 달러가 태어난 곳은 미국이 아니다. 지금은 체코의 일부인 보헤미아 지방의 성요하킴 골짜기를 지배하던 쉴릭 공작이 1518년 찍어낸 요아킴스탈러(Joachimsthaler, ‘thal’은 독일어로 골짜기란 뜻)라는 은화가 달러의 조상이다. 이 은화의 순도가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러나라가 사용하기 시작했고 미국도 그 뒤를 따른 것이다.
1776년 독립 전쟁을 일으켰을 당시만 해도 미국은 자기 화폐가 없었다. 스페인 은화인 페소를 주로 썼으며 이것을 달러라고 불렀다. 1792년에서야 첫 달러화를 주조했으며 남북전쟁 기간 중인 1862년에야 뒷면이 초록색 잉크로 찍힌 지폐 ‘그린백’(greenback)이 등장했다. 미국이 제2차 대전에서 승리한 후 세계의 기축 통화로 등장한 달러화는 70년대 월남전 패배와 장기 불황으로 동반하락 현상을 보이다 90년대 장기 호황과 함께 ‘마이티 달러’로서의 옛 영화를 되찾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올 들어 사정이 바뀌고 있다. 일본 옌과 유로 등 전 세계 주요 통화에 대해 일제히 약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한국 원화에 대해서는 급속한 하락세를 보여 97년 말 IMF 사태 직후에는 달러 당 2,000원대에 육박하던 것이 이제는 1,200선도 위협하고 있다.
어찌된 일일까. 화폐의 위력은 그 나라의 국력과 정비례한다. 일본과 독일 경제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을 때는 엔화와 마르크화가 기염을 토했다. 달러화의 하락은 세계 투자가들의 미국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90년대 말 미국이 첨단 산업의 선두주자로 떠오르면서 전 세계 돈은 미국으로 몰렸다. 이 덕에 증시는 폭등에 폭등을 거듭했고 불황을 모르는 신경제의 신화가 정통의 진리로 군림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려 드는 외국인들의 투자자금 때문에 기업인들은 자금 조달 걱정 할 필요 없이 기업을 세울 수 있었고 사상 최저의 저축률, 사상 최고의 무역 적자 등 미국 경제의 단점들이 가려졌다.
그러던 것이 하이텍 버블이 터지면서 ‘불침항모 미국 경제’의 신화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불과 2년 사이 나스닥은 70%, S&P 500 지수는 30%가 떨어졌다. 9·11 테러도 외국 투자가들의 믿음에 금을 가게 했다. 미국 한복판에서 이런 대량 살상 행위가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테러 무풍 지대’ 라는 종전의 통념을 뒤흔든 것이다.
과연 달러는 앞으로 계속 떨어질 것인가. 달러화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작년까지 50% 이상 올랐다. 지금보다 33% 떨어져도 그 때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달러가 폭락할 경우 미국 경제는 경기 회복은커녕 고실업과 고 인플레 주가 폭락 등 이중 불황을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
모든 경제 관련 전망이 어렵지만 그 중에서도 환율 변동은 특히 그렇다. 환율 변동 이론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구매력 일치론’이다. 환율은 결국 화폐의 실질 구매력이 같아지는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이 이론을 적용, 빅맥 지수라는 것을 만들었다. 180개국에 지점을 낸 맥도널드의 햄버거 값을 비교해 그 나라 화폐가 과대 또는 과소 평가되었는가를 비교하는 이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경제 실상을 정확히 알려주는 지수로 널리 이용된다. 이 잡지 최근호에 따르면 달러화는 사상 유례 없이 과대 평가돼 있다. 스위스 프랑에 대해서만 53% 저평가 돼 있을 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대해서는 각각 35%와 68%, 중국 49%, 일본 19%, 러시아 50% 높이 평가 돼 있다. 빅맥 지수에 의거한 한국 원화의 적정 수준은 달러 당 1,245원 정도로 지금 이에 근접해 있는 상태다.
세계 언론들은 요즘 일제히 달러의 앞날을 걱정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달러화의 지속적인 폭락을 점치기는 이르다. 모든 사람이 그러리라고 예상하는 일은 경제에 관한 한 잘 일어나지 않는다. 주요 언론에 그런 기사가 났다는 것은 달러에 비관적인 사람들은 이미 달러를 팔았음을 시사한다. 달러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달러의 향방과 미국 경기가 공동 운명체임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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