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새벽(31일 오전1시30분) 졸음이 밀려오려던 눈을 다시 뜨고 역사적인 한-일 월드컵이 개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프랑스와 세네갈이 개막전을 가졌던 그날로 아마 많은 하와이 한인동포들도 TV 수상기 앞에 앉아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ESPN2를 통해 생중계되던 2002 한일월드컵 개막 당일은 마치 이번 월드컵이 ‘한국 월드컵’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새벽 1시쯤부터 방영을 시작한 미국의 스포츠 전문케이블채널 ESPN측은 여성특파원의 서울리포트를 통해 한국의 덕수궁인지 경복궁 입구를 배경으로 하고 한국의 월드컵 열기와 개막식 고전무용 모습등을 전하고 있었는데 ‘South Korea’만 계속 나왔을뿐 일본의 모습은 화면 한 컷도 나오지 않고 1시30분에 곧바로 개막전 중계로 들어가 이 장면만을 본 세계의 시청자들은 ‘한일월드컵인가 한국월드컵인가’ 헷갈릴 정도였을 것이다.
이 글에서 며칠 지난 이 인상을 떠올리는 것은 ‘세계속에서 한국은 그만큼 성장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적어도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세계의 TV중계망에 나타난 한국은 과거 가난하고 모진 현대사를 지닌 그러한 국가의 모습이 아니었다.
월드컵 열기에 가득차고 역동적이며 무엇보다 전통(tradition)이 있는 에너저틱한 국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바깥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그러한 시각과 비교할 때 자신의 나라를 비하하고 우습게 여기는 일부 한국사회의 분위기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개혁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난주말 하와이 최대 일간지인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 26일자 일요판에는 하와이에 살고있는 한인동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내용이 1면과 뒷면에 걸쳐 크게 게재됐다.
그 기사는 ‘한국인들 원정출산 위해 미국에 모여들어(Koreans flock to U.S. for childbirth)’라는 제하의 LA타임스 기사를 전재(轉載)한 것으로 기사 내용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신생아가 미국시민권자가 될수있도록 매년 5천명씩 원정출산을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는 것. 2만달러(한화 2천5백만원상당)정도면 가능한 원정 출산 장소로는 LA가 가장 인기있는 지역이며 뉴욕과 보스턴, 하와이 심지어 괌까지 그 목적지중에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제목의 ‘flock to’는 ‘떼지어 오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에 따라서는 매우 경멸적인 표현이다.
이런 식의 일그러진 일부 한국사회의 모습이 보도된 것은 이번뿐만은 아니다.수개월전에는 부유층이 거주한다는 서울 강남 성형외과에서 어린이들의 혀 절제수술이 유행한다는 기사가 역시 미 언론에 의해 서울발로 보도된 적이 있었는데 이유가 ‘영어를 미국아이들처럼 할수 있도록 해주기위해서’라고 하니 어처구니 없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혀를 잘라가면서까지,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출산 원정을 해가면서까지 자녀들이 영어를 잘하게 하고 자기도 모르게 미국시민권자가 되도록 한들 그것이 정말 자녀의 나중 삶에 결정적 도움이 될수있을까 하는 것에 나는 회의적이다. 미국사회에서 영어가 필요하지만 꼭 ‘유창한 영어’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특히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게 영어만 할줄아는 인력들은 한국어등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젊은이들에 비해 자격에서 뒤쳐진다.
자신의 문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당당하게 견지하는 인력들이 더 대우를 받고 있으며 세계속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어가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서편제’나 ‘춘향뎐’등을 통해 줄기차게 한국인의 정서와 토속적 영상미를 추구해온 임권택 감독이 최근 그 유명한 칸느영화제에서 조선시대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영화 ‘취화선’으로 당당하게 감독상을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수 있다.
우리는 세계가 한국에 대해 생각하는 기대치에 경제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정신사적인 측면에서’ 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요즘 ‘노블리스 오블리제’(사회지도층의 책임있는 자세나 태도)니 하는 다소 어려운 용어까지 등장하면서 일부 천민적 부유층의 정신개혁 필요성을 말하고 있으나 아직은 부끄러운 모습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제 4일 새벽이면 한국과 폴란드의 첫 예선경기가 열린다.
그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경기를 시청할 계획이다.자랑스런 내 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응원도 하고 슛이 빗나가면 한숨도 쉴 계획이다.
월드컵이 끝나면 한단계 더 성숙한 모습으로 한국이 세계속에 서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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