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리사데베 계기로 본 ‘월드컵 귀화’ 연역
"곤잘레스 라울(스페인)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만 있다면…"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아르헨티나)가 한국선수라면…"
라울과 바티스투타 등 수퍼스타들이 상대수비수들의 ‘너 죽고 나 죽자’식 반칙과 이중삼중 샌드위치 마크를 뚫고 멋진 골을 성공시키는 장면을 보면서 코리아 축구팬들은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첫판상대 폴란드가 나이지리아출신 골게터 이마누엘 올리사데베를 귀화시켜 되레 한국을 위협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희든 검든’ 한국에도 월드스타 한두명쯤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한국 대표팀이 죽을 쑨 북중미 골드컵때만 해도 한국 프로리그에서 뛰는 사샤(유고·골케터) 마시엘(브라질·수비형 미드필더) 등 외국인선수를 귀화시키자는 여론이 높았고 이를 성사시키기 위한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라울이나 바티스투타를 한국에 귀화시킨다 해도 그들에게 태극유니폼을 입혀 국제경기에 내보낼 수는 없다. "자기나라 국가대표로 A매치(국가대표팀간 경기)에 한번이라도 출전하게 되면 국적을 바꿔도 그 나라 국가대표로 뛸 수 없다"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 때문이다. 월드컵 역사를 보면 이 같은 규정이 생겨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월드컵에서 승리에 눈 먼 외국인선수 귀화의 선례는 이탈리아가 만들었다는 게 정설이다. 1934년 제2회 대회를 유치한 이탈리아는 "파시즘의 정당성과 이탈리아의 위대성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서슬 퍼런 명령에 따라 병역면제 혜택(당시 이탈리아는 청소년·여자까지 총동원된 전쟁준비중)까지 내걸고 대표팀 강화에 나섰으나 우승만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외국의 검증받은 선수를 데려오는 묘안을 생각해냈다. 주요 대상은 이탈리아계가 3분의 1을 차지하는 아르헨티나. 다른 나라의 비난을 피하면서 선수들에겐 조상의 나라에서 뛴다는 명분을 줘 귀화결심을 앞당기자는 술책이었고 이는 기막히게 적중했다. 제1회(1930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준우승을 이끌었던 멤버 중 공격쌍포 구와이타와 올시에다 ‘알 카포네’란 별명으로 상대공격수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수비라인의 핵 몬티가 이탈리아국적을 취득했다. 결과는 대 성공, 무솔리니의 명령대로 우승이었다.
재미를 붙인 이탈리아는 1회대회 득점왕 스타빌레(우루과이)까지 데려오는 등 이탈리아 조상을 둔 유명선수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영입, 38년 월드컵 챔피언트로피도 차지했다. 50년 브라질월드컵때 우루과이에 두 번째 우승을 안긴 주역 스키아 피노는 이탈리아의 프로리그에 진출했다 끈질긴 꾐에 넘어가 역시 ‘아주리군단의 충신’으로 변하는 등 남미선수들의 유럽화는 50년에서 65년 사이에만 해도 약 800명에 이르렀다.
62년에 나온 FIFA의 귀화선수 출전제한 규정은 이 같은 배경에서 생겨난 것. 그로부터 근 20년동안 축구판 국적파괴 현상은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승부지상주의자들이 팔짱을 끼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다른 나라의 유망주들을 지켜보다 국가대표로 발탁되기 전에 데려오는 수법이 등장했다.
포르투갈이 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모잠비크산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 덕분이었고 스웨덴의 94년 미국월드컵 3위 역시 아프리카 대륙 유망주였던 달린을 긴급 귀화시키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축구판의 작은거인 벨기에(86년 월드컵 4위)는 아프리카의 벨기에 식민지에서 음펜자 형제를 10대 소년때 귀화시켜 무서운 20대로 키워놨으나 부상으로 이번에 출전시키는 못해 헛물만 켠 상태. 코스타리카의 감독 알렉산더 기마라에스는 브라질 태생이나 85년 코스타리카 여인과 결혼하면서 아예 처가쪽 국적을 취득, 90년 이탈리아월드컵때 코스타리카의 16강진출 주역이 됐다.
이번 대회의 귀화선수로는 올리사데베 이외에도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의 미드필더 패트릭 비에라가 단연 화제. 그는 "발은 프랑스에 마음은 세네갈에 있다"는 자신의 말을 시험하듯 하필 세네갈과 개막전에서 맞붙게 되는 고약한 처지에 놓였었다. 아르헨티출신 가브리엘 카바예로는 멕시코축구사상 1호 귀화대표선수로 멕시코의 포워드 자리를 맡고 있다. 94년 월드컵 지역예선때 브라질 출신 플레이메이커 라모스를 내세워 쏠쏠한 재미를 본 일본은 98년 프랑스대회때는 로페스(이상 브라질 출신)에게, 이번에는 산토스에게 일장기 유니폼을 입혀 16강 플러스 알파에 도 전한다. 미국의 잔 오브라이언은 절반의 네덜란드인. 한편 한국은 7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호주에 3차전까지 가는 플레이오프에서 진 뒤 호주선수 22명중 16명이 사실상 유럽선수(그중 10명은 영국)라며 FIFA에 이의신청을 내기도 했으나 영연방에 속한 특수한 처지를 이용한 호주의 대응(2중국적 허용 등)이 인정돼 울분을 해소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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