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라는 ‘지구촌 축제’로 전세계가 들떠있는 지금, LA의 한 한인 여성 사업가는 나름대로 조그만 잔치를 기획했다. 월드컵 T-셔츠를 만들어 예쁜 샤핑백에 담아서 고객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월드컵 출전국들의 국기, 그리고 출전은 못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중남미 국가들의 국기를 인쇄해 넣은 T-셔츠는 대부분 중남미계인 고객들에게 여간 인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의 열기를 LA로 조금 빌려와 한인 여행사 사장과 중남미계 고객들이 한 식구가 된 듯 친밀감을 나누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참 좋은 아이디어이다. 여성이어서,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있어서 가능했던 기획이 아니겠느냐"고 했더니 40대 초반의 그 여사장은 "고객이 뭘 필요로 하는지 그걸 만족시키려고 늘 신경을 쓴다. 비즈니스에서 제일 힘든 건 마케팅이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내로, 엄마로 식구들을 보살피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구석구석 집안 살림을 챙기는 전통적 여성의 역할은, 사실은 비즈니스에 꼭 필요한 요소들과 일치한다고 비즈니스 전문가들은 말한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기대하는 지를 섬세하게 알아서 채워주는 여성의 본능과도 같은 능력은 비즈니스 무대에서 사업성공의 중요한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는 남녀 격차가 유난히 심한 분야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90년대 이후 여성사업가들의 급속한 수적 증가에도 불구, 비즈니스 규모면에서는 남성과 현격한 차이가 난다. 특히 이민1세 한인여성 운영 비즈니스는 대부분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 커뮤니티 개발 테크놀러지 센터라는 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인 여성 비즈니스는 다른 소수계 여성들과 비교해서도 특히 영세하고 발전 가능성이 낮다. 이 기구가 LA와 오렌지카운티의 흑인, 히스패닉, 한인, 중국계, 베트남계등 5개 인종·민족별 여성 자영업자들을 면담·분석한 결과를 보면 "먹고 살 유일한 생계수단이란 생각에 개인소유 업소에서 5명 미만의 직원을 두고 일하는 50대 여"이 한인 여성 자영업자의 보통 모습이다.
"유리천장에서 벗어나 직접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살리고 싶어서"(흑인), "본래 꿈이 비즈니스 운영이었기 때문에"(중국계·베트남계), "저임금의 발전성 없는 일자리를 탈출해 보다 윤택한 삶을 위해"(히스패닉) 자영업을 시작했다는 다른 소수계 여성들에 비해 비즈니스 시작 동기가 우선 너무 소극적이다.
아울러 한인 여성들은 인터넷, 첨단 테크놀러지 활용률이 5개 비교 집단중 가장 낮고, 웍샵이나 컨퍼런스 등 비즈니스 네트웍 참여율도 매우 낮아서 현재의 영세한 수준이 개선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왜 비즈니스에 보다 적극적이지 못할까?"를 몇몇 여성 자영업자들과 이야기해 보았다.
"우리 세대는 힘들어요. 언어 장벽이 있는 데다 시대가 바뀌어서 컴퓨터로 모든 걸 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지금 이 나이에 그걸 어떻게 배우겠어요? 이민 와서 밥 먹고 자식들 교육시켰으면 된 것이지요"
"비즈니스를 키우려면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여성들은 그점이 약해요. 돌다리도 두들기는 ‘안전 제일주의’라서 큰돈을 못 버는 대신 망하지도 않지요"
아울러 자녀양육과 가사 부담이 지적되었는데 그 모두에 우선하는 것은 여성들의 낮은 기대치라고 본다.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하면 남성들은 자기가 그 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데 비해 여성들은 자기가 아는 여성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여성의 수준을 기대치로 삼는다고 한다. 비즈니스에서 여성들이 갖는 기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백만장자가 된 여성들의 원칙’이라는 책을 보면 여성이 백만장자가 되는 첫 걸음은 현실이 그어놓은 한계에서 안주하지 않는 것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꿈 혹은 비전을 씨앗으로 마음의 밭에 확실히 심고, 인내와 결단력, 그리고 열정이라는 비료를 주었더니 열매가 열리더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런 경험담들이 한인사회에서도 이제는 나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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