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집] 소리 없는 소리를 찾아서
▶ 백춘기 <골동품 전문가>
아침 9시, 나는 스튜디오의 빗장문을 연다. 렉싱턴 애비뉴 59가 블루밍데일 백화점 앞 50야드 전방에 동양 골동복원사(Oriental Antique Restore)라는 둥지를 틀고 작업을 시작한 지 10여년. 커피 한 잔을 놓고 나는 지금 작업대 앞에 앉았다.
그동안 오고 가며 수집한 백여개의 곰방대 가운데 눈 감고 한 개를 집어 든다. ‘타바고’를 아궁이에 채우고 부싯돌을 아쉬워 하며, 어렵게 구한 닭표 성냥갑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당긴다. 이렇게 나의 하루 일은 시작된다.
▲ 신비의 적사암불상(赤砂岩佛像)
진한 담배 연기가 감싸고 돌아가는 작업대 위의 불상을 나는 주시하고 있다. 나로 하여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한 장본인이다. 바로 어제 늦은 시간에 나무상자를 들고 일본사람이 스튜디오를 찾아 왔다.
손도끼로 찍어 만든 고향의 시골 절구통 같이 통나무를 파서 만든 투박한 나무통 상자 속에서 꺼내놓은 것은 바로 이 불상이었다.
“16세기로 추정되는 적사암불상입니다. ... 코가 이렇게!”
일본인 소장자는 비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상자 귀퉁이에서 솜으로 싼 뭉치를 꺼내 작업대 위에 펼쳐놓는다. 떨어진 코는 세 조각이 나 있다. 부처의 몸통 여기 저기에도 몇개의 상처가 나 있었으나 오직 ‘코’만을 복원한다는 단서를 붙이고 보관증을 써 주었다.
그런데 소장자는 10만달러 보험을 요구한다. 물론 당사자가 요구할 때는 당연히 감정에 따른 적정가격의 보험 처리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복원한 적사암 조각이 적지 않았고, 그 때마다 나와 동양골동사라는 신용이 보험을 대신하였다. 그리고 사실상 적사암 조각이 10만달러의 보험을 요구할 정도로 고가의 골동품이 아니다. 나는 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곰방대를 집어들었다.
적사암(赤砂岩)이란 인도 마쓰라 지방에서 나오는 암석으로 적황색이 그 특징이다. 강질이 아닌 연질의 암석으로 조각하기가 다른 암석에 비해 용이하다. 때문에 이 지방의 적사암 조각 역사는 기원 전에서부터 그 명성을 떨칠 정도다.
적사암 조각으로서 만든 불상은 드물고, 인도 힌두교 여신상이나 마쓰라 여신상이 그 주종을 이룬다. 10만달러! 그럴 수 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타바고 쌈지에 뻗치려던 나의 왼손은 일본인의 말에 멈칫 했다.
“백 선생, 이 적사암 불상이 10만달러 보험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지요.”
일본인 소장자는 불상 오른쪽 귀 뒷부분에 두 손을 얹고 앞 뒤로 잡아당긴다. 백년만에 서울 남대문을 열 때 발생하는 것과 같은 육중한 소리가 불상 왼쪽 축에서 나면서 불상은 앞 뒤로 갈라진다.
180도로 펼쳐지는 적사암 불상! 나는 무아 상태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 내 눈 안에 들어오는 적사암 불상 몸통 내부! 거기에는 일반 상식, 아니 상상을 초월하는 어떤 실체가 자리하고 있지 않는가!
적사암불상 몸통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상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더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나의 상체는 확대경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상으로 접근해 가고 있었다.
적사암은 앞부분에서부터 서서히 강질 암석으로 변질되어 가면서 예수 십자가상이 조각된 부분은 거의 적갈색 대리석으로 성숙되어 있다. 이런 유형의 적사암 대리석은 남산만한 적사암 언덕에서 한 줄기 금맥을 찾아내는 확률이다.
▲ 장인정신은 어디로
나는 지금 예수 십자가상을 한 몸에 안고 있는 적사암 불상 앞에 앉아 있다. 곰방대 아궁이에 벌써 세 번째 불을 지피고 있다. 10만달러 보험을 요구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오늘 오후 일본인 소장자가 오기로 했다.
그때 보험증서를 건네줄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 그렇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보험기간 한달의 절반이면 충분히 복원은 끝맺음을 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작업을 망설이고 있지 않는가.
복원가에게 복원 대상물에 대한 잡념은 금물이다. 최고의 장인정신을 요구하는 골동 복원! 300년 전 어느 석공에 의해 조각된 이 적사암 불상을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하는 일에만 집착하여야 한다.
어제 밤 12시까지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검토하면서 떨어진 코가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이 코를 작게 수정하여 얼굴에 알맞게 만들어 놓고 일종의 성취감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원형을 비판하고 현대감각에서 원형을 새롭게 창작하고 수정하는 행위가, 복원 원칙에 빗나가는 얼마나 무서운 작태인가를 뼈저리게 터득한 오늘의 나다. 그런데도 나는 오만가지 잡념 속에서 작업을 망설이고 있다.
이 적사암 불상은 16세기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16세기라면 청나라(1644~1911) 때이다. 식민지 쟁탈에 혈안이 된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철저하게 수탈을 당할 시기이다. 당연히 기독교의 포교활동도 왕성히 전개될 때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적사암 불상이 태어났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뱃속에 안고 말이다.
도대체 제작자 석공은 창작의 천재였단 말인가, 아니면 미치광이였단 말인가, 아니면 밀려오는 예수교를 송두리째 안아버린 불교신자의 해학인가, 아니면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불상으로 위장한 예수교도의 지혜인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험회사에 가서 30일 기한의 10만달러 보험증서를 들고 스튜디오에 돌아왔을 때, 일본인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스튜디오에 들어와 커피를 사이에 두고 소파에 앉았다. 보험증서를 건네주면서 한 마디 건넸다.
“적사암 불상 소장자로서 이 작품에 얽힌 어떤 스토리라도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요. 복원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일본인 소장자는 보험증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안 호주머니에 넣는다.
“저의 부친은요 니치랜쇼슈(日連正宗)의 스님이셨습니다. 이 불상은 집안 대대로 물려온 아버지의 유물입니다. 그런데 아버님으로부터도 이 불상의 몸통 내부에 예수 십자가상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도 몰랐지요. 저는 일본 K상사 미주지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바로 3일 전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 불당을 넘어뜨리면서 불상의 코가 깨지고 처음으로 저도 이 적사암 불상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 마저도 느꼈습니다.”
일본인은 돌아가고 나는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작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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