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집 ‘소리 없는 소리’를 찾아서 (3)
우리의 생활 주변에는 많은 골동품이 널려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골동품을 ‘구닥다리’로 보고, 하찮게 여겨 버린다.
고물상 엿장수가 내미는 빨간 플라스틱 사발과 바꾸었던 촌스런 바둑이 밥그릇이 이조백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팍을 내리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다. 그러나 웃을 일만은 아니다.
그 물건과 유형이 다를 뿐, 뉴욕 동포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흔히 일어나고 있다. 이민 보따리가 바로 보물단지인지 모르고, 이것 저것 집어 던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저분하고 고리타분하고, 냄새 나고, 근질근질하기 때문이다. 아마 두고 두고 후회하리라.
(1) 차분한 정서
골동품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수집가로서, 나아가 골동품을 투자가치로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분한 정서가 요구된다. ‘빨리’라는 속성은 절대 금물이다. 골동품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이 아니다. 최소한 백년 단위로 넘어가는 것이 골동품이다.
빨리빨리 다리 놓고 빨리빨리 폭삭 주저앉아 버리는, 그런 정서 속에 골동품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크게는 몇 백년, 몇 천년이 된 인류의 문화유산이요, 적게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숨결이 담겨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차분해야 한다. 그리고 더 정숙하게 차분해야 한다. 나는 항상 이렇게 강조한다. “골동품을 제외한 모든 물건에게 ‘시간은 쓰레기다’ 그러나 오직 골동품만이 ‘시간은 금’이다"라고.
(2) 고전적 정서
차분한 정서가 골동품을 대하는 몸가짐이라면 고전적 정서는 차분한 전문성을 말한다. 유행 따라 죽자하고 새 것만을 찾아나서는 사람, 이것 또한 유행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일종의 정서불안이다. 언젠가 큰 집에서 잘 사는 후배의 집을 방문하였다. 집 구조에서부터 방안의 세간살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참 아름답고 멋드러졌다.
모두 새 것들, 서로 잘났다고 훨훨 날아다니고 싶어 안달이다. 그런데 어떤, 전혀 다른 분위기가 이 산만하기 그지없는 방안을 제압하고 있다. 무엇일까. 나는 실내를 둘러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만족한 미소를 보라는 듯이 지었다. 비록 방안의 외진 곳이지만 골동 도자기 한 점이 풍만한 엉덩이를 여유있게 깔고 거기에 앉아있지 않는가! 새 것들로 산만하기 그지없는 방 분위기를 천금같은 무게를 가지고 제압하고 있다. 나는 집주인을 다시 보았다.
(3) 탐구적 정서
골동품은 고전적 고미술품에 속한다. 현대미술품이 예능적 테크닉과 예술성, 특히 작가의 유명세가 그 작품의 시장가치를 좌우한다 할 수 있다. 반면 고미술품인 골동품은 눈이라는 시각만으로는 볼 수 없고 감상할 수 없고, 그 진가를 판단할 수도 없다. 골동품의 생명은 연륜과 희소성에 있다. 현대감각 또는 안목만으로는 감상이 불가능한 것이 바로 골동품이다.
골동품은 각각 제 나름대로, 100년 500년 또는 1,000년의 연륜이라는 역사와 그 시대에 따른 고유의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 배경을 모르고는 그 진가를, 그 예술적 가치를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골동품이다. 그래서 골동품을 눈으로 보되 마음의 눈(心眼)으로 보라고 한다. 골동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선(禪)적인 탐구 자세가 필요하다.
계룡산의 분청사기를 접할 때는 당시 이조의 불교 탄압을 피해 계룡산 자락에 숨어 들어간 스님들이 불타는 불심으로 구워낸 것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스님들의 처절한 생존적 불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 분청사기를 가졌을 때 그 분청사기는 참주인의 품에 안겼다 할 것이다.
한국 골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인사동의 신토불이들이 즐겨쓰는 말이 있다. “골동에 10년을 파묻혀야 감정의 눈이 뜨이고 또 10년은 지긋이 눌러대야 골동이 흘러가는 길이 보이고(法) 그리고 10년은 골동을 다루어 봐야 도사의 경지(道)에 도달한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할 때는 앞서 말한 세 가지 정서만 충실히 몸에 익힌다면 인사동의 터줏대감들이 말하는 30년을 3년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경험에서 우러난 결론이다.
뉴욕을 세계의 수도라 한다. 여기에 걸맞게 세계 골동시장의 총본산도 바로 뉴욕이다. 뉴욕에서도 맨하탄이 바로 세계 골동시장의 중심가요 다운타운이다. 한 예를 알아본다. 1999년 현재 맨하탄에 있는 골동상이 915개(NYNEX Yellow Pages 참조)이다. 이들의 98%가 유대인 소유이다.
마야문명의 문화유산을 보려고 멕시코를 찾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다. 거기에는 마야시대의 유적지가 있을 뿐 노란자위는 미국, 그것도 뉴욕 맨하탄에 모셔온지 한참 오래다. 1960년대 이집트 아스완댐 공사로 수몰되어 가던 인류문화 유산도 이집트가 아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와 있다. 물론 도굴도, 약탈도 아닌 돈을 주고 사 왔다.
중국이 양자강 댐공사를 구상할 때 벌써 ‘내셔날 지오그래픽’에서는 대규모 고적탐사대를 파견하고 있었다. 10만년 전의 원인(原人)의 해골을 발굴했던 유적지를 수몰 전에 원형 그대로 파내기 위해서이다. 고고학이 미래 인기 학문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문명, 그리고 그 속에서 두 엄지손가락만이 기형적으로 발달해 가는 현대인을 구제하는 길은 고전이고 고고학이라는 석학들의 진단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필자는 골동품 복원이라는 직업을 통해 미국사람들의 골동품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착, 그리고 광적인 소유욕에 놀란다.
특히 유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상류사회의 백인들! 자신들의 조상을 부유한 귀족의 대열에 올려 놓으려는 열망,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골동생활양식! 골동품은 바로 이들의 족보인 것이다. 마치 이조시대의 양반을 상징하는 ‘족보’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골동품을 서양문화권에서는 앤틱(Antiques)이라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말하는 골동품이라는 개념과, 유럽에서 말하는 앤틱의 개념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골동품은 얼핏 보물을 연상하나 ‘앤틱’은 백년 단위로 넘어가는 모든 생활용품을 통칭 ‘앤틱’이라 한다. 골동품도 서서히 앤틱의 개념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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