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과 박근혜 의원이 만났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밋밋하다. 다시 써보자. "김일성의 아들과 박정희의 딸이 만났다." 상당히 달라진다. 거센 파도가 솟구치는 그림을 배경으로 이 둘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치 2세끼리 정상회담이라도 끝냈다는 듯이.
다분히 상징적이다. 여러 상념을 떠올리게 한다. 분단. 냉전. 박정희와 김일성. 민족 등등. 또 사진의 배경이 ‘평양 백화원 초대소’라는 점에서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70년대의 고통을 잊을 수 없다… 남북조절위원회가 구성돼 남북대표가 왕래하는 등 급속도로 통일무드가 조성됐다… 그런 분위기 조성 속에서 10월 유신이 단행되었을 때 나는 박정희의 속임수와 영구집권 야욕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 때 나의 가슴을 울리던 말이었다. 기독교회관에서 금요일 저녁마다 열린 기도회에서 유신 독재정권의 폭압의 실상이며,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에 관한 감춰진 진실들이 속속들이 발표되곤 했다. 박정희의 영구집권 욕심이 빚어낸 유신정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정권인가를 뼈저리게 절감했고…."
한 문인의 70년대에 대한 회상이다. 그는 지금도 그 때의 풍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 향수’에 특히 착잡한 심정이다. 한국인 특유의 망각증과 몰이성적인 단순성이 새삼 뼈아프게 느껴져서다. 그 결론은 이렇다. ‘빵만 가지고 음울했던 박정희 시대의 모든 것을 미화할 수는 없다’-.
박정희와 김일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상당히 어렵다. 역사의 몫인지 모른다. 그러나 민족주의, 민족사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평가가 시도되고 있다.
20세기 후반의 한반도 역사는 남·북한 사이의 체제경쟁이었다. 그 경쟁의 주역은 박정희와 김일성이었다. 이 둘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 그 결과 양 체제는 모두 지식인들에 대해 극도로 억압적인 체제가 됐다. 억압적 체제는 남북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남북한 내부의 정상적 사회발전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폐쇄적 근대화가 박정희와 김일성 시대 남북 양 체제가 보인 공통점이란 이야기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두 사회는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된다. 체제가 지니고 있는 폐쇄성 때문이다. 일단의 소장파 학자들은 이 ‘폐쇄적 근대화’에 주목한다. 한국형 민족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근대 민족주의가 태동한 서유럽의 경우 민족은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시민공동체’라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오스만 터키로부터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성립된 동유럽의 민족주의는 낭만적 감성에 호소하는 폐쇄적 민족주의다. 일제 탄압에 저항한 한국의 민족주의 태동과정도 이와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의 주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동안 한국 역사계에서 민족주의는 당위론적 규범으로 인식돼 왔다. 단일한 혈통과 조상, 언어의 통일성에 대한 신화는 사실상 신성불가침의 터부였다. 때문에 한국의 역사학계는 리얼리티보다는 ‘민족신화 만들기’식 역사 서술에 치중해 왔다. 이는 남과 북이 다를 바 없다."
일제시대에는 저항적 민족주의가 정당성을 갖고 있었지만 해방 후 남과 북 양쪽에서 민족주의는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동원이데올로기로 사용됐다는 말이다. 유신으로 나타난 박정희주의나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체제유지를 위해 사용된 같은 정치동학(動學)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72년 10월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했다. 김일성은 같은 해 12월 ‘1인 절대권력’을 보장한 새 헌법을 통해 유일 지배체제를 수립했다. 두 체제 모두가 전례가 드문 독재체제다. 남과 북의 적대적 경쟁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두 지역에 거의 같은 시기에 ‘닮은 꼴 체제’가 들어선 것이다. 그 배경에는 폐쇄적 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논리다.
’김일성의 아들과 박정희의 딸이 만나 남북 현안에 대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증거다. 동시에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실감케 하는 작의적 정치 이벤트로도 보여진다.
환한 미소로 박근혜를 맞이하는 김정일. 그 김정일과의 만남, 그로부터 얻어낸 약속을 마치 정치적 전리품인 양 과시하는 듯한 모습. ‘워싱턴 블레싱’ 못지 않게 ‘김정일 블레싱’이 언제부터인지 한국 정치의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는 현상의 노정 같다.
이 현상은 ‘햇볕’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또 뭔가 술수와 모략의 냄새도 나는 것 같다. 대권 경쟁 시즌이어서 더 그렇다. 그리고 이 이벤트의 밑그림은 여전히 한가지 색조를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폐쇄적 민족주의의 색채가 아닐까. 김정일과 박근혜.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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