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아프리카의 킬링필드, 르완다를 가다’
▶ 김평육(CLWMF, 크리스챤 라이프 월드미션 프론티어 대표)
김평육(CLWMF, 크리스챤 라이프 월드미션 프론티어 대표) 목사는 기독교 주간신문 크리스챤 라이프의 발행인으로 94년 르완다 전쟁현장을 취재한 후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CLWMF의 사역은 우간다, 탄자니아, 르완다, 콩고, 부룬디 등 중앙 아프리카의 내전지역을 중심으로 전쟁 난민, 어린이, 미망인 등을 대상으로 벌이는 구호사역과 교육 및 장학사역으로 나눠진다.
김평육 목사는 지난해 여름 한인 72명이 봉사단으로 참여한 가운데, 르완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2001 르완다 전국 복음화 대성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올해는 르완다 전국에서 15만명의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2002 르완다 전국 어린이 선교대회’와 부룬디, 콩고,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에서 연인원 30만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앙 아프리카 복음화 대성회’를 준비하고 있다. 생사를 걸고 해온 아프리카 사역의 비사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1)킬링필드
94년 4월 르완다에서 일어난 종족간의 전쟁으로 100만명 이상의 무고한 생명이 죽어 가는 처참한 모습이 연일 세계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시체더미를 불도저로 밀어 매장하는 장면, 굶주림에 지친 난민들의 피난 행렬, 전염병으로 죽어 가는 처참한 모습들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실리콘밸리지역에서 컴퓨터 통신 분야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크리스챤 라이프라는 기독교 주간신문을 발행하고 있었던 필자는 르완다 전쟁 현장취재 계획을 발표했다.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류하기도 했지만 현장 취재 후원을 나선 독자들도 많았다.
숙박시설도 파괴됐고 전기, 수도 등의 서비스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아 배낭을 메고 단독으로 르완다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죽음을 각오한 취재에 앞서 여섯 살 날 딸과 네 살 난 아들을 하나님께 의탁한다는 기도를 드렸다. 만일 내가 잘못 될 경우 아이들을 성직자로 키워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런던을 거쳐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도착했다. 이디 아민의 독재와 이스라엘 특공대의 작전으로 유명한 엔테베에 막상 도착은 했지만 갈 길이 막연했다. 르완다로 가는 차편이 있는지, 르완다 사람들의 사용하는 언어가 무언지도 모른 채 서둘러 떠나온 길이었다.
우간다에 잠시 머물며 르완다 입국비자를 받고 통역을 찾을 계획이었는데 다행하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새벽에 엔테베 공항에 도착해 그날 오후 르완다 입국비자를 받았고, 아와라는 청년을 만나 안내인 문제도 해결했다. 평생을 통해 간절하게 느껴보고 싶었던 하나님의 손길을 아프리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와는 우간다로 피난한 르완다 투치족 아버지와 우간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청년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우간다에서 자라나 영어, 르완다 말을 둘 다 잘했는데 안내역을 수락했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르완다행 봉고버스는 정원을 초과해 몸을 가누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서 버텨야했다. 더구나 수많은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군인들이 짐 보따리를 풀어, 수색하는 바람에 사람의 진을 빠지게 만들었다. 10시간을 달려 겨우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도착하니 해질녘이었다.
버스가 도착해 창 밖으로 거리를 바라보는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괜한 일을 시작했다’는 후회도 들기 시작했다. 건물들은 총탄 등으로 파인 자국이 부지기수였고 길을 지켜 선 군인들의 눈초리는 살기가 등등했다.
죽음을 각오한 여행이었지만 실제로 본 르완다의 참상은 훨씬 더 참혹했다.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두개의 큰 구호물품 가방을 끌고 버스 터미널의 인파를 헤치고 나갈 자신이 없었다. 비록 초행길이기는 하지만 안내인인 아와조차 공포에 질려 쩔쩔매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숨을 멈추고 눈을 감은 뒤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이번에 저를 살려 주시면 앞으로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승객들이 모두 차에서 내린 후 운전자에게 여관으로 데려다 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 운전사의 안내로 그날 밤 쉽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으니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손길이라 생각했다. 훗날 우간다에 돌아왔을 때 현지 신문에 한 신부가 투고한 글을 읽었다. 필자가 르완다에 도착하던 그날 이 신부도 르완다를 방문했다가 숙소를 찾지 못해 겪었던 고생담이었다.
부룬디 출신인 청년의 택시를 대절해 본격적으로 르완다 전국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르완다는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인명을 살상한 킬링필드였다.
3개월 동안 100만명 이상의 무고한 생명이 학살된 때문인지 나라 전체에 죽음의 그림자가 하늘을 뒤덮고 있는 듯 했다. 후투족 정부군과 경찰, 투치족의 학살을 위해 비밀리에 훈련했다는 인테라하무이(민명대)가 투치족을 살해하고 그들의 집터까지 파헤쳤으니 르완다 전국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수인 후투족에 의해 시작된 대량학살이 결국 소수인 투치 반군의 승리로 끝나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과응보의 결과인가 보다.
르완다 전쟁을 역전승으로 이끈 투치 병사들의 표정은 싸늘했다. 병사들 중에는 기껏해야 12~13세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AK소총을 거꾸로 메고 살기 등등하게 키갈리 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 가족을 잃은 투치족 전쟁고아 어린이들까지 참가해 역전승한 전쟁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전쟁의 충격으로 르완다 어린이들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고, 희망도 꿈도 없는 절망의 모습들이어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름도 나이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이들, 이들에겐 차라리 전쟁의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 다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을 수용할 시설조차 없어 어린이들은 먹을 것을 찾아 길거리의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다녔다.
한 크리닉을 방문했다가 잔학상에 놀라 고개를 돌려야 했다. 다리가 잘려진 어린이, 큰칼을 머리에 맞아 죽을 뻔한 어린이 등이 치료를 받고 있었고 밖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누워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이는 손가락 다섯 개가 불에 그을려 절단돼 있었다. 후투족 군인들이 어린이의 가족을 살해하고 어린이는 손가락이 떨어질 때까지 모닥불에 태운 뒤 아이가 실신하자 버리고 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낸뒤 창으로 찔러 벽에 걸어놨다. 후투족인 아버지의 손에 칼을 줘 투치족 아내와 자녀들을 죽이게 했다. 돈을 주면 총으로 죽이고 돈이 없으면 농기구로 죽였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이 농기구에 찍혀 죽는 모습을 못 보겠다며 강에 버렸다"는 등등 잔학상과 관련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어느 날 밤 운전사의 집에 초대받았는데 마당에는 해골이 뒹굴고, 쓰레기 더미에는 목이 잘린 사람의 시체가 썩고 있었다. 뒷마당에도 30m 정도 깊이의 웅덩이 두개가 파여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시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르완다에는 이런 웅덩이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웅덩이마다 200~300구의 시체가 매장되어 있었다고 하니 사전에 치밀히 준비된 학살이었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후투족 군경과 인테라하무이의 학살이 시작되자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피신했지만 성전 안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벽을 헐고 들어가 수백, 수천의 사람들을 모두 학살했다.
특히 후투족 군인들이 가톨릭 성전 안에 있는 마리아상을 향해 총격을 가하며 투치족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다고 하니 르완다 선교 역사를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나일강의 근원이라고 알려진 빅토리아 호수,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빅토리아 호수로 흘러가는 카게라 강은 르완다의 킬링필드로부터 매일 수천 구의 시체를 쓸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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