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노무현씨가 확정된뒤 한국사회에는 분명히 그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그 흐름은 변화의 흐름이다.
노무현후보가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올 당시만 해도 민주당은 이인제, 한나라당은 이회창씨가 대통령 후보로 선거를 치를 것을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약 한달여 남짓의 국민경선기간동안 모든 것은 졸지에 돌변해버렸다.
소위 ‘노풍’으로 통칭되는 변화의 바람, 변화의 세력이 엄연히 이번 대통령선거의 무시못할, 아니 어쩌면 가장 유력한 한 축으로 떠올랐다.
이 변화의 세력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많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연령별로는 30~40대 중반, 취향상으로는 컴퓨터를 알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직격탄을 날리는 전후세대, 또는 ‘노사모’의 영향력에 대해서까지 방대한 분석들이 월간 시사잡지 또는 시사주간지마다 넘쳐 흐른다.
그리고 그 세력들 사이에서는 이번 국민경선을 통해 노무현후보가 대선후보로 확정된 것을 두고 한국 정치사, 또는 정당사에 있어서 하나의 ‘혁명’이라고까지 말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몹시 들떠있는 것으로 이 하와이에서는 보인다.
그러나... 들떠있는 것만으로 사회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정권이 바뀌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깨끗한 사회로 변화되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한 사회의 개혁이란 그만큼 어렵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지난 정치사를 보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많은 국민들은 정권이 바뀌면 사회도 정치도 변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유당 정권과 박정희정부를 거쳐 5공, 6공의 군인대통령시대가 지난뒤 3당합당이든 어떻든 문민정부라고 해서 YS 정부가 태동했다. 그러나 YS정부 기간동안 ‘민주화’는 좀더 되었을지 모르지만 아들 현철씨의 국정농단을 비롯한 갖가지 공직사회의 기강해이와 정권말기 레임덕으로 IMF가 초래됐고, 드디어 사실상 첫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고 흥분했던 ‘DJ정부’기간동안에는 남북문제에 있어서의 긴장완화와 IMF 극복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이 ‘국민의 정부’에 걸었던 기대와는 한참 동떨어진 모양새로 임기가 끝나가고 있고 그나마 요즘 정신없이 터져나오고 있는 각종 게이트의 내용들은 정말로 할말을 잃게 만들고 있다.
민주화를 부르짖던 분들이 통치를 하게 되면 사회 각분야에서 적어도 부정부패는 없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은 10년 세월이 지나면서도 변하는 것이 없자 ‘그것만도 아니구나’하는 것을 알게되었고 전 사회적으로 냉소감이 만연할 때 소위 ‘노풍’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 ‘노풍’도 아직 양김을 번갈아 찾아 인사하면서 정계개편등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당위성에 대해서는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바라는 ‘신선한 변화’가 이루어질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선뜻 확신이 서지 않는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로 이어지는 한국의 권부는 통치자만 바뀌었을뿐 그 구성원들은 수십년간 이합집산을 하면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정치권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데 지도자만 바뀐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든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든 결국 현재의 정치권 인사들로 자리 옮기기만 이루어질 것이 분명한데 그들은 또 ‘개혁’ ‘부정부패 일소’를 말하겠지만 국민들이 그 말들을 얼마나 신뢰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 이후락씨등이 월권을 할 당시나 5공 시절 대통령 형제들의 권력이 무소불위로 높아져갈 때, 6공시절의 각종 비리와 스캔들, YS때 김현철씨 문제, 그리고 DJ 정부 들어서의 ‘세 아들’의 문제등 주변에서 그 문제점들을 간언한 사람들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권력의 주변에 붙어서 아부, 교언영색이나 하고 배를 불리는 간신배들은 자리를 지키거나 득세를 하고 충언을 마다않던 많은 사람들은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아니면 ‘조직사회’의 벽에 한계를 절감하고 나름대로의 처절한 ‘귀거래사’(歸去來辭)만 남기고 권부를 떠나버렸을 터이다.
예로부터 홀로라도 직언을 마다않던 충신들은 결국 말없이 낙향하고 반대로 간신들은 무리를 지어 질기게 남지 않아왔던가.결국 개혁이란 리더 한명이나 개혁적 인물 몇 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을 비롯한 국민들 다수(majority)가 ‘의식의 변화의 세례’를 받지 않고서는 이루어지기가 그만큼 힘든 것이다.
요즘 하루가 멀다하게 터져나오고 있는 ‘게이트’의 이면들을 보면 ‘정말 이렇게까지....’라는 한탄이 나오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 권부 주변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인사치레로 오가는 돈의 단위가 ‘적게는 몇억 많게는 수십억’이라면 본격적 거래에서의 액수는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치권에서는 자성의 분위기는 없이 한쪽에서는 ‘위험한 과격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공격하고 다른 쪽에서는 ‘수구의 썩은 물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공세를 가한다.
하지만 정말 많은 국민들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보수든 진보든 세상이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변했으면 하는...’마음을 가진 소박한 사람들이 아닐까.
차기 대통령은 바로 이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뜻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후보가 당선되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권이 앞장서 오염시키고 있는 오늘의 이 사태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겸손해야 한다.그러한 겸손한 마음을 가진 대통령이 나올수 있다면 사회가 그래도 조금은 나아질 것이며 그 영향이 지속될 때 개혁과 변화도 조금씩이나마 뒤따를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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