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GA 첫 우승, 최경주 미국생활 3년
▶ 최경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찾아 도전하는 ‘파이어니어(Pioneer)’. 동양인으로는 피와 땀과 눈물만으로는 정상을 넘보기 어렵다는 PGA투어에서 우승의 신화를 일궈낸 최경주(33)야말로 바로 이 단어에 꼭 맞아떨어지는 인물이다. 최경주의 승리에 더 감동하는 것은 PGA 정상등극 사실보다도 여기까지 오기까지 수없이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끝내 자신의 목표했던 바를 이뤄낸 인간승리 드라마 때문이다.
정상에 올라서기까지 고난으로 가득했던 최경주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이번 우승이 갖는 의미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1. 루키의 설움
낯선 곳에서 새로운 목표에 도전한 최경주에게 ‘시행착오’란 필수적으로 거쳐야할 관문이었다.
1999년 11월 마이애미 도랄 리조트 코스에서 ‘지옥의 관문’으로 불리는 피 말리는 6일간의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살아남아 2000년 시즌 PGA투어 플레잉 카드를 손에 쥔 기쁨도 잠깐. 투어카드만 있으면 PGA투어 대회에 모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은 얼마 못 가 차갑고 냉혹한 현실과 부딪친다. 풀 시즌 투어카드라고 해도 투어선수서열에서 맨 밑바닥에 자리잡은 최경주는 초반 출전할 수 있는 대회조차 없었다. 지난해 챔피언들만이 나가는 시즌 개막전 머세디스 챔피언십을 제쳐두고라도 소니오픈, 밥 호프 클래식, 피닉스오픈에서 모두 엔트리 여유가 없었던 것. 한때 PGA투어 멤버의 자존심을 접어두고 먼데이 퀄리파잉을 나가는 문제까지 고려했다. 투어멤버라고 모든 대회에 자동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체득했다.
결국 투어 데뷔전을 2월 첫 대회인 AT&T 페블비치 프로앰으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던 최경주는 시즌 2차전인 소니오픈 개막 이틀전 갑자기 대회 엔트리에 여유가 생겼다는 통보를 받고 허둥지둥 플로리다에서 하와이까지 날아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간 대회였음에도 선전했으나 결과는 1타 차 컷오프 탈락. 3주 뒤 페블비치에서 또 다시 컷 탈락의 고배를 마신 최경주는 다음주 뷰익 인비테이셔널까지 3연속 스타트에서 중도 탈락하자 가슴 한구석에 찾아오는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싸워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외로움과 경제적 불안감이었다. 손짓 발짓에 단어를 섞어 의사소통이야 할 수 있었지만 답답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상대는 하나도 없었다. 매 대회 나갈 때마다 비용으로 수천달러씩 나갔지만 매번 중도탈락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한푼도 없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에이전트인 IMG가 찾아준 캐디(케이시 커)와도 전혀 호흡이 맞았던 것도 가뜩이나 힘든 그에게 이중고를 안겨줬다. 연습도중에는 거의 끊임없이 자신과 안면있는 다른 선수나 캐디들과 잡담하고 필드에서는 최경주의 의견보다는 자기생각을 강요하는 스타일의 커는 원천적으로 최경주와 맞지가 않았다. 애리조나 투산에서 벌어진 최경주의 4번째 대회 터치스톤 에너지 투산오픈에서는 오전연습을 끝내고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진 캐디 때문에 취재온 기자의 도움을 받아 오후 퍼팅연습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최경주는 첫 컷오프 통과라는 작은, 그러나 큰 의미가 있는 첫 결실을 얻어냈다. 공동 69위에 그친 이 대회에서 받은 상금은 달랑 6,000달러. 하지만 액수가 문제가 하니라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큰 수확이었다. 대회가 끝나고 최경주는 캐디를 불러 해고를 통보했다. 하지만 커는 자신의 문제점을 시인하고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을 요청했고 최경주는 그간 쌓인 정 때문에 그를 다시 받아들였다.
최경주는 바로 다음주에 벌어진 도랄-라이더오픈에서 합계 11언더파로 PGA투어 진출후 최고성적인 공동 21위에 입상, 희망을 봤다. 2주 연속 컷 통과에 20위권 진입. 마침내 길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고난의 여정은 겨우 시작이었다.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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