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손가정이 너무 많아졌네!”- 지난 주 한국에 가서 몇집을 방문하며 농담삼아 던진 말이다. 부부가 이혼을 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그림에서 ‘자녀’ 부분이 떨어져 나가 생긴 ‘결손’이다. 아직 초등학생이어서 집 떠날 나이가 아닌데 집집마다 아이가 안보여 물어보면 번번히 “외국으로 유학 보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까운 친척·친지들만 해도 그런 케이스가 여럿이니 한국의 조기유학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다.
“요즘 한국에서는 자녀의 영어 교육이 부모들의 최대 관심사예요. 한국서 과외 시키느니 아예 영어권으로 유학보내는 게 효과적이라는 생각이지요. 집집마다 아이가 많아야 둘이니까 집중적으로 (아이 교육에) 투자를 해요”
몇달전 뉴질랜드로 12살짜리 딸을 유학보낸 한 친지의 설명이다. 미국은 관광·유학비자 취득이 까다로워져 조기 유학이 어려운 반면 뉴질랜드는 교육비용이 저렴하고, 환경이 좋은 데다 국가 차원에서 유학생 유치를 후원하기 때문에 최근 유학 희망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한국서 좀 비싼 과외 시킬 돈이면 그곳 학비와 하숙비가 충당 되거든요. 아이가 낯선 데 혼자 간게 아니라 사촌들, 친구들과 같이 갔으니 서로 의지가 될 거예요”
그렇게 삼삼오오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등 영어권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으로까지 빠져나가는 학생들이 서울에서만 수천명이 된다고 한다. 교육열이 유별나다는 서울 강남지역의 경우, 유학을 위해 자퇴하는 학생들이 늘어서 전학 경쟁 치열하던 학교 정원에 여유가 생기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혀가 굳어지기 전에 외국어를 익히고 국제 감각도 키워 주겠다”며 부모들이 서둘러 유학을 보내 유학 연령층은 계속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힘 닿는 한 자녀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은 것은 부모들의 공통적인 마음이고, 소아 정신과 측면에서 볼때 정서적으로 건강한 아이라면 조기유학이 특별히 해로울 것은 없다고 한다. 부모와 떨어져 낯선 환경에 홀로 던져지는 것이 긍정적 스트레스로 작용해 정신적 성숙과 학업 성취도를 높일 수도 있다.
그렇기는 해도 조기유학을 내가 선뜻 지지할 수 없는 것은 그 부모와 자녀가‘잃어버리는 시간’ 때문이다. 아침마다 아이의 잠을 깨워주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숙제 제대로 안했다고 잔소리하고 … 먼지처럼 눈에도 띄지 않는 일상의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부모 자식간의 푸근한 일체감을 너무 쉽게 외국어 실력과 맞바꾸는 것이 아닌가 마음에 걸렸다.
미국으로 돌아오니 조지 W. 부시대통령의 최측근인 캐런 휴즈 공보수석의 사임 뉴스가 최대 화제였다. 부시 자신보다 부시의 생각을 더 잘 알고, 부시의 기분을 더 잘 읽는다는 그가 막강한 힘의 자리를 내어 놓는 것은 ‘가족들과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다. 아들이 3년 있으면 대학에 가는 데 그 전에 고향 텍사스로 돌아가 같이 지내야겠다고 사임 이유를 설명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는 로버트 라이시 당시 노동부 장관이 역시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겠다”며 사임을 했었다. 밤낮으로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가족과의 유대감도 시들해진 어느날 “퇴근하면 내가 잠들었어도 꼭 깨워달라. 아빠가 집에 있다는 걸 알고 싶다”는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사임을 생각했다고 그는 저서 ‘부유한 노예’에서 썼다. 직업인으로서의 기능에만 충실하다 보니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은 것이었다.
서울 방문중 어느날 휴양지에 갔다가 밤 늦게 돌아오는데 갑자기 “내가 어느 외계의 도시에 와 있는 게 아닌가”싶은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산도 나무도 보이지 않고 고층 아파트의 거대한 콘크리트 건축물들만 암회색의 하늘을 배경으로 시커멓게 떼지어 있는 모습은 기괴했다. 좁은 땅에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능’에만 치중하다 보니 생긴 결과였다.
조기유학을 비롯, 자녀를 위한 우리의 투자는 종종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녀가 이 사회에서 우뚝 솟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당하다. 하지만 그들이 풀한포기 없이 삭막한 ‘고층 아파트’가 되지 않게 하려면 그들의 ‘가슴’을 보살피는 배려가 함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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