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하는 삶
▶ 김종한 <메릴랜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오늘 아주 기분 좋은데, 내가 한턱 쓰지. 뭐든지 먹고 싶은 것 먹어.”
“나 오 기분 나뻐. 누구 도와 줄 기분 아냐. 내가 하는 일이나 잘 할래.”
우리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기분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준다. 기분이 날씨에 따라 바뀐다는 것에 착안해서, 심리학자들은 비오는 날과 화창한 날에 사람들의 행복감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연구하기로 마음먹고 사람들에게 전화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행복감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예측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우중충하고 비오는 날보다 화창한 날에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비오는 날보다 화창한 날에 더 행복하다-부지불식간에 자신의 행복감을 진단하기 위해 사람들이 날씨를 단서로 사용한 것이다. 이번에는 행복감을 묻기 전에 그 날의 날씨에 대해 사람들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행복감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거기 날씨가 어떤가요?... 날씨가 그렇군요.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흥미롭게도 날씨를 사람들에게 먼저 상기시키고 나서 행복감에 대해 물어보니 비오는 날과 화창한 날의 행복감 수치에 별 차이가 없었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다르고, 기분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도 다르다. 기분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어떤 요술을 부리고 있는 걸까. 기분이 좋을 때와 기분이 나쁠 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어떻게 바뀌는가.
기분이 좋을 때 사람들은 주위의 상황이 안전하고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분이 좋으니 걱정할 것도 조심할 것도 없다. 반면 기분이 나쁠 때 사람들은 뭔가 주위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기분이 나쁜데 행여나 뭐를 잘못해서 기분이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그러다 보니 기분이 좋을 때 문제를 가볍게 대충 처리할 수 있고, 기분이 나쁠 때 오히려 문제를 더 꼼꼼하게 처리한다.
축구 경기에 비유해서 생각해 보자. 지난 경기에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기분이 우쭐해져서 상대편을 너무 얕잡아 보고 방심했더니 이번 경기에 졌다. 반대로 지난번 경기에 져서 기분이 너무 나빴다. 그래서 패배를 거울삼아 이번 경기를 위해 열심히 준비했더니 이겼다. 그러니 기분이 좋으면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더 무례하게 행동할 수 있다. 상황이 안전하니 거침이 없다. 술을 한잔하고 기분 좋아서 동료에게 술김에 했던 무례한 말이 술 깨고 보니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실수인 경우들이 있다.
위의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기분이 좋으면 사람들은 일을 대충 처리해서 일을 망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하다. 그러니 기분 좋을 때를 경계하고 기분 나쁠 때를 반갑게 맞아야 할 지 모른다. 기분이 좋은 것이 좋다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결론이다.
기분 좋으면 뭐가 좋을까? 기분이 좋을 때 사람들은 더 창의적이다. 기분이 나쁘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뭐가 더 잘못되지 않도록 조심하기 때문에 창의성은 억제된다. 반면에 기분이 좋으면 주위 환경이 안전하니 이것저것 모험할 마음이 생기고 그래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된다. 또한 기분이 좋을 때는 처한 문제가 풀 수 있는 문제인지 풀 수 없는 문제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더 좋아진다. 그러나 보니 풀 수 없는 문제를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그만두어야 할 지를 안다.
게다가 상황이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기분 좋은 사람은 기분이 나쁜 사람보다 모험을 하는데 소극적이다.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험으로 인한 손실에 기분 좋은 사람이 더욱 민감하다.
기분이 좋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풍부하다고 느낀다. 기분이 나쁘면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낭비하지 않고 보존하는데 더 관심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누구를 도와주는 것도 자선금을 내는 것도 기분이 좋을 때 더 많이 한다.
기분 좋으면 무조건 좋은 것, 기분 나쁘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기분이 나쁠 때와 기분이 좋을 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다를 수 있다. 기분이 좋으면 문제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과소 평가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기분이 좋기 때문에 더 창의적이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고 예전에 못할 것 같은 것도 힘을 내서 재도전할 용기가 생긴다.
기분이 나쁘면 문제를 보다 더 정확히 판단하고 철저히 준비하게 되지만,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할 때 주저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지금 느끼고 있는 기분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바비 맥페린의 ‘걱정하지 말고 그냥 즐거워 해(Don’t worry, be happy)’라는 노래는 상황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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