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는 나보다 못한 사람도 없고, 나 보다 잘난 사람도 없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인간은 누구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하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흑인이나 히스패닉계와 같은 소수민족에게 어떻게 해 왔는가.
백인들 앞에서는 비굴할 정도로 쩔쩔매면서도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같은 민족에게는 마구잡이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흑인들을 보고 더럽고, 지저분하고 무지한 민족이라 업신여기면서 깜둥이, 혹은 이 ××저×× 하며 막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 신분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해서 일을 실컷 부려먹고도 봉급을 안주거나 기본급보다도 훨씬 적게 주는 일은 없는지. LA 4.29 폭동 제10주년을 맞아 우리의 자화상을 한번 점검해 봐야겠다.
4.29폭동은 알다시피 흑인 로드니 킹이 백인경찰에 의해 폭행을 당한 것이 화근이 돼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피해는 어처구니없게도 한인들이 보았다.
흑인들의 폭동으로 순식간에 한인사회가 불바다가 되고 잿더미로 변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강자인 백인들에게 대항하지 못한 분노를 한인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표출한 역사적 사건이다.
동대문에서 뺨맞고 남대문에서 화풀이한다고, 이 사건은 절대적으로 평소 한인들에 대해 갖고 있던 흑인들의 반감이 표출된 것이었다. 한인들이 왜 이처럼 흑인들의 표적이 되어야 했는가. 우리들의 처세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우리 민족은 대체로 강한 자에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근성을 갖고 있다고 혹자는 말한다. 마치 페달을 밟고 고개를 숙이는 자전거 타기와 같이 아랫사람한테는 마구 짓밟고 윗사람한테는 쩔쩔매는 그런 것과 같다. 약자를 보살피고 강자한테 맞서는 그런 기백이 부족하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흑인을 보는 시각이나 그들 종업원에 대해서는 무조건 ‘훔친다’ ‘더럽다’ ‘믿음성이 없다’ 등의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게다가 백인 거주지역 호화주택에, 고급 차를 타고 보란 듯이 다니면서 돈은 흑인촌에서 벌어 그들의 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4.29 폭동은 엄연히 일부 한인들 때문에 불러들인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흑인들이 한인들에 대해 갖는 반감이나 조소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갈수록 인구수가 늘어가는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결집력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다시 없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뉴욕에서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문제가 배경이 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다. 브루클린의 처치애비뉴 사태나 할렘 그로서리 스토어, 자마이카 한인 청과상에서 벌어진 불매운동, 흑인시위 사건 등은 모두 다 따지고 보면 LA폭동사태와 같은 맥락이다.
한인들을 ‘돈만 착취해 가는 흡혈귀’라며 무조건 자기네 ‘지역에서 나가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사항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인격이 있다. 그 인격은 피차 중요한 것이므로 서로가 존중해야 한다. 인간의 ‘평등함’은 미국헌법에도 기본권리 중 하나로 명시돼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내가 상대를 건드리면 바보가 아닌 이상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다. 우리의 잘못된 사고와 편견으로 우리 자신이 흑인이나 히스패닉 같은 인종으로부터 어떠한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그리고 과연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지난 10년 동안 어떻게 변화돼 왔는가 돌아보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 상대에게 ‘네가 잘못했다’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너‘를 가르킬 때 엄지는 중립을, 두 번째 검지는 상대를, 나머지 셋은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진리를 이해하면서 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주는 의미처럼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도 이제는 사고와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적어도 방송인 제이 레노가 ‘집에 가서 홧김에 강아지 걷어차고 삶아 먹었다’는 그런 식의 말을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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