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Review
▶ "세계화 낙오자 어떻게 어루만지느냐가 화두"
저자 토마스 프리드먼은 최고의 외신 칼럼니스트의 한 명이다. 한 번 받기도 힘든 퓰리처상을 올해 포함 세 번 받았다. 베이루트와 예루살렘 뉴욕타임스 지국장을 하며 쌓은 그의 소식통은 어떤 언론인보다 폭이 넓고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있다. 그의 칼럼은 중동 문제에 관해서는 정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의 명성이 일반에게까지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은 1999년 ‘렉서스와 올리브 트리’라는 책을 펴내면서부터다. 2000년 수정 증보판이 나온 이 책은 세계 각 국어로 번역되면서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만들었다. 며칠 전 대통령 아들과 관련된 정치 스캔들로 한국 검찰에 소환된 최규선씨까지 이 책을 끼고 조사를 받아 ‘책 내용과는 정반대 짓을 하는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빈정거림을 받기도 했다.
이 책 저자는 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3권을 들고 있다. 하나는 폴 케네디의 ‘열강 흥망사’(the Rise and Fall of Great Powers), 또 하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 마지막 하나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이다.
’열강 흥망사’는 과거 스페인과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 또한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망할 것이라는 것이, ‘역사의 종언’은 인류 역사상 등장했던 수많은 정치 경제 체제간의 경쟁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역사적인 이념 분쟁은 없으리라는 것이 그 요지다. ‘문명의 충돌’은 후쿠야마와는 정반대로 세계는 가치체계가 다른 불구대천의 문명권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문명간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중 후쿠야마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준다. 미국이 망한다는 케네디의 결론은 미국이 유일한 수퍼파워로 남아 있는 현실과 맞지 않고 문명 충돌론도 ‘세계화’라는 조류를 읽지 못했기 때문에 낙제라는 것이다.
490면에 달하는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현 세계를 특징짓는 큰 조류는 세계화이며 이를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세계사의 큰 틀을 냉전 체제라 볼 수 있다면 베를린 이후 21세기 초까지 세계의 대세는 세계화라는 것이 이 책의 일관된 흐름이다.
저자는 세계화를 가능케 한 것은 인터넷의 등장과 기술과 자본, 정보의 민주화라고 본다. 한 때 군사용으로 개발된 인터넷이 일반에 널리 보급되면서 정보를 돈들이지 않고 전 세계에 퍼뜨리는 것이 쉬워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기술 개발 등 변화의 속도가 가속적으로 빨라졌다. 그 결과 사방에 울타리를 쳐 놓고 외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던 폐쇄 사회는 설자리를 잃게 됐다.
하이어라키와 구식 사고방식에 묶여 변화에 둔감하던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한 때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IBM은 인터넷과 PC의 등장이라는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해 파산 위기까지 직면했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과 IBM이 거의 동시에 무너진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세계화와 함께 어떤 국가도 넘볼 수 없는 강한 세력으로 떠오르는 것이 ‘전자 떼거리’(Electronic Herd)라고 저자가 부르는 국제 자본이다. 이들 자본은 어떤 나라 국민이 어떤 종교와 문화, 언어를 갖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최대의 투자 이익을 보장해 주느냐 만이 관심거리일 뿐이다.
앞으로 별 비전이 없다 싶으면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투자 대상을 바꿔버린다. 경제 개발을 위해 외국 자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각 국은 사사건건 국제 자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이 자본의 눈밖에 난 국가는 국제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때 가장 정보 구하기가 어려운 나라였던 한국이 1997년 IMF 위기를 겪은 후에는 매일 매일 월가의 투자가들에게 팩스를 보내 자진해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정보화를 바탕으로 한 세계화 시대에는 그 나라가 어디 위치해 있으며 어떤 천연자원을 갖고 있느냐 보다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얼마나 보급돼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 점에서 셀 폰과 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를 다투는 한국은 상당히 좋은 점수를 얻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앞으로 세계화 시대를 주도해 갈 1순위 국가로 꼽는 것은 미국이다. 모든 하이텍 분야에서 선두주자 일뿐 아니라 자유로운 이민 정책을 통해 세계 각 국의 브레인을 끌어들이고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며 벤처 캐피털과 법치주의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미국을 능가할 경쟁상대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독주가 반미와 반 세계화라는 반작용을 가져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경제적으로 미국과의 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느끼고 있는 프랑스와 세계화에 뒤쳐진 울분을 극렬 회교주의와 연결시킨 아랍권이 그 대표적 예다.
저자가 정작 우려하는 것은 특정 국가보다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다. 인터넷은 정보를 구하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세계적인 테러 조직을 만드는 것 또한 손쉽게 만들고 있다. 9·11 테러가 나기 전 이미 빈 라덴의 테러 위협을 간파했다는 것은 저자의 혜안을 보여준다.
또 하나 세계화라는 대세를 위협하는 것은 일본과 중국, 러시아 같은 대국들이 세계화가 요구하는 개혁이 수반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군사적인 적대행동으로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제1차 대전 직전 영국과의 경쟁에서 뒤지고 있음을 느낀 오스트리아 제국이 좌절감에 빠져 세계 대전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음을 알면서도 전쟁을 일으킨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를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그것은 세계화 뒤에는 잘 살아 보겠다는 수십 억 인구의 열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자국 산업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단단히 벽을 쌓은 나라 치고 잘 사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반면 외국 시장을 겨냥해 수출을 장려하고 외국 투자 단을 끌어 들여 첨단 산업을 육성한 나라 치고 경제 발전이 이뤄지지 않은 곳은 드물다. 남북한과 동서독, 중국과 대만이 그 좋은 예다.
세계화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지만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 끊임없는 경쟁에 시달리다가도 돌아오면 발을 뻗고 쉴 수 있는 가정이라는 안식처가 필요하다. 이 책제목 ‘렉서스와 올리브 트리’는 로봇을 이용해 최고급 자동차를 만드는 일본 공장과 올리브 나무가 심어진 한 뼘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중동 지역의 모습을 본 저자가 각각 세계화와 이에 대한 반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부친 이름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렉서스도 올리브 나무도 필요하다.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최대 과제라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코리아타운의 개구리가 아니라 세계인이 되고자 원하는 사람은 케네디, 헌팅턴, 후쿠야마에 이어 프리드먼의 책도 한번쯤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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