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맨하탄 누비는 한인 자영업
▶ (2) 청과업
에드 카치 전 뉴욕시장은 한인들을 가리켜 ‘맨하탄의 새벽을 연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표현은 청과업계 한인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과인들은 동이 트기도 전에 싱싱한 과일과 야채 등을 구입, 뉴요커들의 아침 식단을 풍성하게 해주었으며 한인들이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왔던 한인 청과업계는 80년대 중반 이후 샐러드바의 도입으로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양적인 성장외에도 질적으로 다양해진 것이다.
그러나 90년 후반 이후 청과업계는 높아져가는 렌트와 인건비 등의 여파로 현상 유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지난해 9.11 테러 사건 이후 매상이 떨어지면서 하향 추세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성장기
지난 73년부터 청과업소를 운영해왔던 장영식 뉴욕한인청과협회장은 "당시엔 한인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시작했던 직종이 가발과 야채가게"라며 "이에따라 75년부터 한인 청과업소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70년대 초반 한인들의 뉴욕 이민이 본격화할 당시 한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전에 이탈리아계나 아이리쉬계가 이민 초창기에 그랬듯이 한인들은 맨하탄에서 청과업소를 시작했으며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성공을 가꾸어갔다.
현재 맨하탄의 한인 청과업소는 700여개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맨하탄 150가 남단의 청과업소 가운데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청과업계의 속설 중 ‘대형 수퍼마켓 근처에 개업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한인 청과업소들은 대형 수퍼마켓의 야채와 과일보다 저렴하고 싱싱한 제품들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수퍼마켓에서 시장을 본 미국인 고객들이 과일이나 야채만은 근처의 한인 청과업소를 찾아 구입했다.
지난 85년 당시 한인이 처음 시도한 샐러드바는 한인 청과업계에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점심 메뉴로 고민하는 뉴요커들에게 저렴하고 다양한 식단을 제공하는 샐러드바는 맨하탄 소재 한인 청과업소의 2차 중흥기를 제공했다.
과일과 야채를 가공함으로써 이윤의 폭이 넓어졌으며 스시와 중국음식 등 다양한 메뉴들은 고객들을 흡인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때부터 청과업소와 델리업소의 구분이 애매모호해진다.
맨하탄의 한인 청과업소는 순수 청과업소의 개념은 거의 사라졌으며 지역에 따라 샐러드바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소도 있지만 대부분 샐러드바와 청과를 동시에 취급하게 됐다.
▲ 현상유지
맨하탄의 한인 청과업소들은 살인적인 렌트와 인건비 상승에 점차 대형화 및 고급화를 지향하고 있다. 샐러드바 외에도 건강식품 등을 취급하는 업소들이 증가했으며 대형 수퍼마켓과 경쟁하기 위해 매장 규모와 취급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맨하탄의 한인 청과업소들은 6,000~8,000스퀘어피트 규모에 종업원을 15명 이상 고용하는 대형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윤정님 전청과협회장은 "10년전만해도 월 2,000달러 수준이던 맨하탄의 상점 렌트가 지금은 2만달러 이상"이라며 "대형화, 고급화하지 않으면 수퍼마켓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노조 문제도 한인 청과업소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소호빌리지 지역에서 발생했던 ‘로컬169’의 노조 가입 요구 외에도 최근에는 수퍼마켓 노조인 ‘로컬1500’와 부두 노조인 ‘로컬1964’까지 가세해 한인 청과업소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청과협회 전홍규 봉사실장은 "다른 업종과 달리 2세들에게 가업을 잇게 하기도 어렵고 노조 외에 정부의 각종 규제 등으로 요즘은 현상 유지 상태"라고 말했다.
■92가 ‘K&S 마켓’ 김종수씨
"경기 좋지 않은데 경쟁 갈수록 치열, 요즘 잠 못잡니다"
"마진(Margin)은 변하지 않았는데 인건비와 렌트는 올랐으니 어려울 수 밖에 없지요." 맨하탄 92가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K&S마켓’의 김종수씨는 전형적인 한인 청과인이다.
지난 85년부터 청과업소를 시작한 김씨는 초창기 하루에 14~15시간씩 일을 했으며 지금도 매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야채와 과일을 공급받는다.
업소내에는 자그마한 샐러드바가 있고 가게 주변으로 꽃과 야채, 과일 등을 진열해놓고 있다. 맨하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인 청과업소의 모습이다.
17년째 같은 자리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김씨는 같은 블록안에 헬스푸드 체인점이 들어와 고민중이다.
김씨는 "대부분의 맨하탄 소재 한인 청과업소들이 겪는 문제"라고 담담하게 말하면서 "경쟁은 치열해지고 경기도 예전같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9.11 테러의 여파가 김씨가 운영하는 업소에까지 미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김씨는 그동안 맨하탄 청과업소의 흐름을 충실하게 따라간 편이다. 샐러드바를 통해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기도 했고 건강식품을 취급하기도 했다.
인근 수퍼마켓이나 동종업소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교적 경쟁이 없는 커네티컷이나 뉴저지쪽을 찾아보기도 했다. 심각하게 업종 변경을 고민해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맨하탄의 대부분 청과업소들이 갖고 있는 고민일 것"이라며 "맨하탄 경기가 예전처럼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관망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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