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동화 중에 ‘알을 부화시키는 코끼리’(Horton hatches the Egg)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읽어주다가 오히려 내가 더 감동을 받은 닥터 수스의 작품이다.
호튼이란 착한 코끼리가 한 어미 새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그의 삶이 바뀌는 이야기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산보 나온 호튼을 새가 부른다.
“나 잠깐 볼일이 있는데 내 대신 알 좀 품어줄래?”
호튼은 기꺼이 나무 위로 올라가 알을 품는다. 그러나 금방 오겠다던 어미 새는 돌아오지 않고, 나무 위 새 둥지에 올라앉은 코끼리는 동산의 동물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된다. 온갖 수모와 놀림, 때로는 위험까지도 감수하며 호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꼼짝않고 알을 품는다.
그동안 새는 자유롭게 세상을 날아다니다가 알이 부화할 때쯤 나타나서는 엄마로서의 권리를 주장한다. 호튼이 정든 알을 두고 눈물을 흘리며 쫓겨나는 순간 알의 껍질이 깨어지는 데 - 이 부분이 클라이맥스이다 - 새가 아니라 날개 달린 아기 코끼리가 알에서 태어난다. 호튼의 지극한 사랑과 정성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동화의 의도와는 조금 다르지만, 새가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과 둥지에 대한 본능적 의무감 사이에서 겪을 갈등을 생각해보면 현대 여성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둥지’를 숙명으로 알고 살아온 여성들이 지난 한 세대 전부터 둥지 밖 ‘하늘’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 발전이다. 그런데 둥지 바깥 세상의 거친 환경에서 자리 잡느라 너무 많은 정력과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영영 ‘둥지’를 잃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사 주간지 타임을 비롯한 미국의 언론은 이번주 여성의 커리어와 자녀 문제를 일제히 다뤘다. ‘생명 창조 : 전문직 여성과 자녀 갖기’라는 새 책의 발간이 계기가 되었다.
잡지·신문들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저자는 여성들이 너무 커리어에 집착하다가 가임시기를 놓쳐 엄마가 될 기회를 영원히 상실 당하는 불행한 사태를 경고하고 있다.
저자 실비아 앤 휼렛박사의 처음 의도는 성공한 여성들의 활약상과 성공을 가능하게 한 힘의 원천을 분석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 학장부터 발레리나까지 각 분야의 성공한 여성들을 만나보니 혼자 사는 여성, 결혼은 했어도 자녀가 없는 여성이 너무 많아 주제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미전국의 성공한 여성 거의 1,700명을 대상으로 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들중 40%가 독신이고, 연봉 10만달러가 넘는 여성들만 뽑아보면 두명 중 한명꼴로 나이 40이 넘도록 자식이 없다. 여성이 42세 생일을 넘기고 나면 자기 난자로 임신에 성공할 가능성은 10%이고, 그 난자조차도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90%에 달한다고 하니 마흔 넘어 자식이 없다는 것은 평생 무자식이라는 말과 통한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어머니의 역할과 커리어를 통한 자기 실현은 여성에게 모두 중요하다. 전자가 삶의 의미와 행복감을 준다면 후자는 성취감과 경제적·정신적 자유를 준다.
여성이 대통령도 되고 대기업의 사장도 되는 시대에 자녀들의 좋은 엄마, 남편의 좋은 아내로만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아울러 남성이라는 기득권 세력을 비집고 힘들게 직업인으로 성공했다 하더라도 자식 하나 없이 썰렁한 집에서 중년을 맞는다면 그 공허감도 만만치 않다.
커리어에 너무 비중을 두다보면 모성의 경험을 원천봉쇄 당하고 만다는 휼렛 박사의 지적은 한인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커뮤니티에서 잘 알려진 전문직 여성들중 40대 노처녀가 꽤 있고,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2세들중 30대 중반을 넘기고도 미혼인 여성이 많아서 부모들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여성들에게 “일이냐 가정이냐”의 갈등은 수시로 찾아 든다. “시간이 기다려 주는 것이 무엇인가”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내 몸의 생리적 시계가 노화를 향해 재깍재깍 달려간다는 사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자라서 어느 순간 내 곁을 떠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린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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