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월 말이면 포토맥 강변을 따라 피는 워싱턴 DC의 벚꽃은 장관이다. 해마다 7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꽃나무를 보러 북새통을 이룬다. 해마다 열리는 벚꽃 축제지만 올해는 각별히 눈길을 끈 사건이 있었다.
노예선 ‘아미스태드’ 호를 재현한 배가 축제 개막 일에 맞춰 포토맥 강을 따라 입항한 것이다. 2년 전 제작된 이 배는 그 동안 이미 21개 도시를 방문했다. ‘아미스태드’ 호는 이 배를 타고 쿠바까지 온 53명의 흑인 노예가 1839년 선상 반란을 일으킨 배다. 이들은 아프리카로 돌아가기를 원했지만 선장이 속임수를 써 미국으로 데려오는 바람에 반란 주동자들은 기소돼 재판을 받게됐다.
이들을 아프리카로 돌려보낼 것인가 노예로 잡아둬야 할 것인가는 당시 미국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결국 이들은 대통령을 지내고도 다시 연방 하원으로 일한 존 퀸시 애덤스의 변론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다. 흑인 노예 해방의 이정표로 기록되는 이 사건은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애미스태드’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노예제는 서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백인 노예 상인들에게 노예를 공급한 것은 대부분 흑인 추장들이었다. 아랍 노예 상인들은 백인에 앞서 악명을 날렸다. 이들이 거래한 아프리카 노예 수도 1,000만 단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예의 기원은 문명과 함께 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18세기 이전까지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를 통틀어 노예가 없는 곳은 없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흑인 노예가 첫발을 디딘 것은 1619년이다. 일손 이 부족하던 영국계 이주자들은 네덜란드 노예 상인들로부터 흑인 노예를 사들였다. 노예제가 비인간적 제도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계몽 사상이 싹트면서부터다. 미국에서는 1776년 독립 선언 이후 노예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독립 선언서의 주장이 노예제라는 현실과 너무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은 초안에 노예제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문구를 넣었으나 삭제 당했다. 버지니아에서 노예제를 폐지하려던 그의 노력도 주위의 반대로 수포로 돌아갔다. 정작 미국에서 노예제가 사라진 것은 1863년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포하면서다. 그 후로도 100년 이상 흑인들은 온갖 사회적 법적 제약을 받으며 2등 시민으로서의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노예 수탈은 인디언 학살과 함께 미국 역사가 안고 있는 원죄이다. 최근 들어 이같은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 흑인 노예사를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각광을 받고 있다.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는 3,300만 달러를 들여 350년에 걸친 흑인 노예사를 보여주는 대규모 박물관 건립을 확정하고 8월부터 공사에 들어가며 인근 버지니아 프레데릭스버그에서도 내년 국립 노예 박물관 기공식이 있을 예정이다. 연방 의회에서도 DC에 의사당 인근에 흑인 박물관 세우는 작업이 추진중이다.
지난 달 말 노예의 후손을 대표하는 변호사들이 뉴욕 연방 지법에서 CSX, 플릿 보스턴, 에트나 등 3개 회사를 상대로 노예 노동으로 번 부당 이익을 반환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집단 소송에서 3,500만 명에 달하는 흑인 노예 후손이 원고가 되고 1,000여 개의 미 기업이 피고로 법정에 서게 될 수 있으며 배상액이 1조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차 대전 때 강제 수용됐던 일본계 미국인도 배상을 받았고 땅을 뺏긴 인디언들도 배상을 받았는데 수백 년 동안 노예 노동에 시달려온 흑인들이라고 배상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 아디 있느냐는 것이 소송 제기자들의 논리다. 배상론에 찬성하는 것은 흑인과 리버럴 뿐만이 아니다. 백인 보수주의자 가운데도 이번 기회에 얼마가 됐건 돈을 주고 흑인들이 백인들의 죄의식을 이용해 돈을 뜯는 것은 이제 사라지게 하자는 쪽도 있다. 노예 노동으로 직접 이득을 본 사람들은 주로 남부의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혜택을 입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법의 궁극적 목표에 정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다. 문명국가는 예외 없이 시효제를 두고 있다. 살인을 포함 아무리 큰 범죄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나중에 죄상이 낱낱이 밝혀진다 해도 처벌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정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형평에 어긋나는 이런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긴 세월 동안 쌓인 사회 현실을 뒤엎는 것은 그에 따르는 부작용이 크다는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흘린 흑인 노예들의 피땀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법적 수단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죽은 지금 피해액수를 정확히 산정해 그 후손들에게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노예제를 인정한 죄를 지은 연방 정부가 흑인 노예 후손을 위한 장학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노예 배상 논란을 마무리짓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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