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 한인부모들의 자녀 대학 선택의 성향이 달라지고 있다.
먼 지역에 있는 명문대학보다는 가까운 곳에 있는 재정 부담 없는 곳을 선호하는 추세. 명문대라면 빚을 내서라도 보내놓고 보자는 과거의 분위기가 수그러드는 추세다. 학비와 학업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자녀들이 중도탈락이나 우울증 또는 자살을 하는 등 극단적인 결과까지 빚어졌던 일련의 사건들과 9.11 테러 이후의 여파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달라진 자녀대학 선택의 추세의 원인은 ▲4년 전액 장학금 없이는 재정적 부담이 너무 크고 융자 등으로 해결할 경우 자녀의 졸업후 생활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며 ▲동부에서 명문대를 졸업하면 분위기에 따라 자연히 직장도 동부에서 잡게되고 결국 캘리포니아에 뿌리내린 부모들과 생이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또 이외에도 ▲기후나 환경이 바뀐 타지에서 자녀 혼자 겪게 될 만만찮을 어려움에 대한 걱정 ▲최근 동부 유명대학들에 돈 씀씀이 헤픈 한국 유학생들이 많다는 소문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메릴랜드주 명문 존스합킨스 대학과 UC버클리 등으로부터 딸의 입학허가서를 받은 유대향(CPA·46·풀러튼 거주)씨는 고민끝에 버클리로 최종 결정했다. 의학전공을 계획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존스합킨스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정작 멀리 떠나 보내려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설 뿐만 아니라 전액장학금을 받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유씨는 공인회계사, 부인은 다운타운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므로 재정적으로도 탄탄한 편이지만 엄청난 학비를 들여서까지 가족과 멀리 떨어뜨려 고생시킬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설명이다. 유씨는 "버클리도 명문인데 가족과 가깝고 학비 싸니 일석이조 아니냐"며 "대학까지는 부모 곁에 두고 싶다. 정 가려면 대학원 때 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키 한(45·은행직원)씨는 12학년 딸에게 아예 남가주 밖으로는 지원조차 허락하지 않아 UC계열대와 남가주 소재 사립대학에 최대한으로 확대 지원했다. 한씨는 "딸이 대학을 마치고 더 공부하고자 한다면 대학원은 멀리라도 허락할 것"이라며 또 성적이 우수해 벌써부터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들로부터 지원하라는 설득서신들이 날아들고 있는 11학년 아들에 대해서도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단다. "만일 하버드와 스탠포드에서 4년 전액장학금이 온다면 당연히 가까운 스탠포드를, 또 장학금 없이 스탠포드와 버클리라면 버클리를 권할 겁니다. 관건은 4년 전액장학금을 받느냐와 자주 만나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느냐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씨의 이같은 결심은 얼마전 부부동반 친구들 모임에서 동부의 명문 사립으로 진학한 자녀들이 학교에 잘 적응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예 그쪽에 직장을 잡아 부모와 생이별을 하게 됐다는 설명을 듣고 난 후 더욱 굳어졌다.
●얼마전 12학년 딸이 매사추세츠주 스미스칼리지와 웰슬리칼리지, 그리고 UCLA와 버클리로 부터 모두 입학허가서를 받았다는 정종훈(치과의사·47·노스리지거주)씨도 비슷한 케이스. 힐러리 클린턴 의원이 졸업한 웰슬리나 유명한 사진작가 샌디 스코글런드 등이 졸업한 스미스는 전국적으로 탑 1, 2위를 다투는 명문 여자대학들이지만 "아무리 명문이라도 여리게만 느껴지는 딸을 멀리 보내고 싶지 않고 세금을 많이 내 그런지 재정적으로도 4년 사립대 학비대기에는 빠듯하다"라며 "버클리나 UCLA도 매우 우수한 대학인데 대학원이라면 모를까 굳이 멀리 보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외교안보연구원 배긍찬(45·서울거주) 교수는 남가주 유학시절 태어나 시민권자인 아들이 올 가을 뉴햄프셔주 다트머스대학으로부터 4년 전액장학금을 받아 진학할 예정이고 또 아모스 장(신학자·45·샌타모니카 거주)씨도 아들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듀크대학에서 4년 전액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친후 현재 로즈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서 수학하고 있는 케이스로 "4년 풀스칼라십 없이는 보낼 생각을 안 했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은다. 이유는 단연 비싼 학비와 가족과 멀리 떨어진 위치라는 것.
한편 지난해 팔로스버디스 교육구에서 주최한 학부모세미나에 참석했던 익명을 요구한 미국인 학부형은 명문사립대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접해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전국 사립고교는 전체 고교의 약 5%내외 뿐인데 하버드, 컬럼비아, 예일 등 아이비리그 재학생의 50% 이상이 사립고교 출신이라는 것. "사실상 무상으로 공립고교를 졸업한 우리아이에게 아이비리그 대학의 학위란 엄청난 돈과 대신 바꾸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데다 이를 목표로 삼고 있는 학부모는 그 학비와 학위 외에 졸업후에도 중추그룹(inner circle)에 지속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플러스 섬띵’을 지원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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