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이후 첫 보름달을 지낸 다음의 일요일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축일의 하나인 부활주일이다. 금년에는 춘분이 3월20일이었고 그 후 첫 보름달이 3월28일이니 그 다음 일요일, 즉 3월31일이 부활주일이 된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데 이 날이 수난일(Good Friday)이고, 죽은 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난 일요일이 바로 부활주일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을 포함해서 기독교계통의 학교들이나 단체들이 수난일부터 휴무에 들어간다. 수난일은 전국적인 공휴일은 아니지만 세계최대의 증권시장인 뉴욕증권거래소 같은 기관들도 이 날 문을 열지 않는다. 부활주일은 어린이들에게는 계란과 토끼로 상징되는 날이기도 하다.
계란은 부활과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데 계란에 물감을 들이는 습속은 얄궂게도 중동지방에서 비롯했다는 얘기도 있다. 부활절 날 백악관 뒤뜰에서부터 시골마을의 교회주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곳곳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계란찾기 놀이가 펼쳐진다. 부활절과 토끼가 관련을 맺게 된 것은 부활절이라는 이름, 즉 Easter가 원래 산토끼로 상징되는 앵글로쌕슨 여신의 이름이었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미국은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가 크게 지배하고 있어 이게 과연 기독교의 나라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세속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미국은 어디까지나 기독교의 나라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기독교 정신 아래 미국을 세웠던 건국의 아버지들이 지금의 ‘풍요로운’ 미국을 본다면 이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개탄할지도 모르지만, 미국의 역사 속에 문화 속에 삶 속에 짙게 배어 있는 기독교의 혼은 쉽사리 가시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이 땅에 나라를 세웠던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 온 이유가 신앙 때문이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은 처음부터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나라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은 헌법 제1수정조항에서 신앙의 자유와 아울러 정교분리의 원칙을 천명하면서 각 국으로부터 이민자들이 가지고 들어오는 종교들을 수용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기독교는 상대적으로 무게를 잃게 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인종이 미국에 들어와 살고 있다면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를 미국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얘긴데 그 틈바구니에서 기독교는 많이 퇴색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도 기독교의 나라라고 주장해 본다. 그것은 미국인의 몇 퍼센트가 교회나 성당에 다니고 있는 ‘기독교신자’라는 등의 통계수치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회와 시스템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 기독교의 맛과 냄새와 빛깔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미국정부 인구조사에는 종교에 관한 설문이 없기 때문에 미국에는 정부가 발표하는 종교에 관한 공식적인 통계가 없다. 하지만 여러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구의 약 85%인 2억4천만이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는 통계가 있다.
1892년에 채택된 이래 미국인들이 초등학교시절부터 암송하고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자유와 정의에 입각한 통일미국에 대한 충성을 국기 앞에 맹세하는 서약이다. 이 역시 기독교정신에 따라 제정된 서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당초에는 이 서약에 기독교를 상징하는 분명한 말귀가 포함되지 않았었는데 1954년 아이젠하워대통령이 ‘under God’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그래서 이에 따르면 미국은 ‘One Nation under God(하나님 아래 한 나라)’이다.
대통령등 공직에 취임하는 사람이 한 손을 들고 다른 손은 성경책에 얹고 서약을 할때도 그 서약의 맨 마지막 구절은 "So, help me God(...그러니 하나님 저를 도와 주소서)"이다.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이 미국에서 공휴일로 지켜지고 있는 것도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못마땅한 일이겠지만 미국에서 아직은 회교나 불교 등 기타 종교의 축일이 전국적인 공휴일로 채택되고 있지 않다.
미국인들의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고 있는 기독교는 사회복지와 정의구현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수많은 기독교재단들이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각급 학교, 병원, 복지시설 등을 운영함으로서 교육과 후생, 질병퇴치, 빈민구제, 가정보호 등을 위한 사랑의 손길을 그늘진 곳으로 뻗치고 있다.
9.11 테러참사로 커다란 상처를 입고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이번 부활절은 더욱 크고 새로운 의미를 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One Nation under God(하나님 아래 한 나라)’됨을 다시 새기면서 미국은 기독(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함과 아울러 ‘기독교정신’의 부활을 다짐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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