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자연사 박물관서 열리고 있는 야구 전람회
▶ 명예의 전당서 500점 엄선, 10개 도시 순회 예정
미국 자연사 박물관 하면 무엇보다도 공룡 전시관과 미국 인디언들의 생활상을 재현한 모형관이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5개월 동안 자연사 박물관은 또 다른 문명의 세계를 관람객들에게 선사한다. 바로 무명 유니폼과 원시적인 장비, 그리고 자랑스런 개척자들이 즐비한 ‘고대’ 야구의 세계이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큰 미소를 짓고 있는 베이브 루스-인류학자들이 부르는 이름에 따르면 밤비너스 아메리카누스 유니쿠스-가 있는가 하면 한때 필라델피아 바비스란 팀의 유격수로 맹활약한 10세 소녀 에디스 휴튼도 있다. 또 세계무역센터의 끔직한 먼지더미 속에서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골드만 삭스’사의 기념품용 야구공도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익룡과 아메리카 들소, 북미 인디언들과 같은 지붕 아래 야구의 역사적인 유물들을 모아놓은 ‘미국으로서의 야구’(Baseball as America)전이 지난 16일 뉴욕 센트럴팍 웨스트의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개막됐다. 전시장에는 선수 차림의 ‘루시’가 심판 차림인 ‘데지’에게 오만상을 찌푸리고 항의하는 모습도 있고, 해병대 조종사인 테드 윌리엄스가 제트 전투기 조종석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사진도 있다. 야구장에서 레나 혼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니그로 리그 소속 선수들의 모습은 몇 안 되는 흑백분리 시대의 유산이다.
이 전시품들은 모두 뉴욕주 쿠퍼스타운에 자리한 전국 야구 명예의 전당 및 박물관의 자료실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곳의 큐레이터들이 무수한 소장품들 가운데 고르고 골라 500점을 추려내는데 성공했고, 뉴욕 전시회를 시작으로 4년간 10개 도시를 순회할 예정이다.
명예의 전당 부관장 겸 수석 큐레이터인 테드 스펜서는 "이번 전시는 우리의 목적 진술서와 같은 것"이라면서 "지난 10년간 줄곧 열고 싶었던 전시회지만 2년 전에서야 구체적인 개념을 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명예의 전당 측은 전시기획 및 준비에 6명의 큐레이터를 배정했는데 그중 한 명인 크리스틴 뮬러는 쿠퍼스타운 명예의 전당을 찾는 관람객들을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뮬러가 특히 주의 깊게 관찰한 사람들은 "따라온 사람들"이라고 분류한 그룹. 야구 방망이나 유니폼과 같은 유물에 매료되지는 않았지만 19세기의 야구사라든가 여성 야구인 등 유물 외적인 측면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큐레이터들은 인간의 생존 조건을 연구하는 자연사 박물관의 특성에 맞는 주제를 잡아 전시품을 고른다는 방침을 세웠다. 즉 딱히 예술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이거나 추억거리도 아니며, 단지 야구 속에 구현되어 나타나는 삶의 조건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입구에 노먼 록웰의 고전적인 회화작품이 걸려 있는데 심판과 코치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방금 내리기 시작한 비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논란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요즘 야구장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야구 수집광에게 할애된 전시장에서는 1912년 앨런과 데이비드 잭맨 형제가 만든 스크랩북이 눈길을 모은다. 전설에 따르면 타이 캅이 자신이 소속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선수 전원이 이 두 소년에게 사인을 해주게 하느라고 경기시작을 지연시킨 적도 있다. 케빈 코스트너의 야구영화 ‘불 더햄’과 ‘꿈의 구장’ 포스터, 그리고 로버트 레드포드가 ‘내추럴’에서 휘둘렀던 방망이는 할리웃의 야구사랑을 보여준다.
공무와 관련된 물품들을 모은 코너에는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이 1910년 시즌 개막 시구를 하는 사진과 워싱턴의 옛 그리피스 구장 대통령 전용석의 낡은 초록빛 좌석이 있고, 지난 9.11 테러 이후 양키 구장에서 월드 시리즈 시구를 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령 모로코에서 미군들이 세운 모조 양키 구장과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에 억류됐던 미국인들이 나뭇가지로 만들어 썼던 야구방망이들은 전쟁에도 흔들리지 않은 야구의 영향력을 과시한다.
야구가 세계화되면서 미국의 게임을 수입한 일본이나 유럽으로 수출한 미국 선수들의 기념품도 있고 1924년 11월, 전 세계를 순회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만난 당시 영국왕 조지 5세의 사진도 있다.
그런가하면 20세기 초에 ‘세계 유색인종 챔피언’이라 불리던 캔사스시티 모나크스의 사진, 1900년대 초의 흑인 스타 솔 화이트가 쓴 ‘유색인 야구 역사’라는 책도 있다. 재키 로빈슨이 브루클린에서 입던 유니폼, 베이브 루스의 생애 통산 홈런 기록을 깨, 인종적으로 착잡한 감흥을 미국인들에게 불러일으켰던 흑인 스타 행크 아론에게 배달된 지지의 편지와 증오의 편지도 있다. 하지만 조 디마지오와 조 루이스가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을 실은 1939년도 ‘라이프’지는 "헤비급 챔피언처럼 디마지오는 게으르고, 부끄럼을 타며 말이 분명하지 않다"라며 인종차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뉴욕 전시회는 8월18일까지. 매일 상오 10시부터 하오 5시45분(금요일은 8시45분)까지 관람할 수 있다. 상세한 정보는 www.amnh.org에서 얻을 수 있으며 전화문의는 (212)769-5100, 티켓예매는 (212)769-5200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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