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시골길 걷고 있던 중년 여성
전형적인 기억상실증, "가족이 뭐예요?"
메이시의 인생은 15일전, 길가에서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혼자 덜덜 떨면서 낯선 집들과 도로표지판을 지나며 헤매다가 생각이 나서 파란 니트 스카프를 두른,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린 머리를 만져보니 뒤로 혹이 잡혔다. 입고 있던 청바지와 긴 낙타털 코트 주머니를 뒤져봤더니 현금 24달러31센트와 분홍색 라이터가 나왔다. 그것 뿐이었다. 지갑도, 신분증도 없었다.
그것이 3월 2일 자정 직후였다. 워싱턴에서 45마일 서쪽으로 떨어진 버지니아주 루둔 카운티의 작은 마을 아룬드 힐의 공중전화에 들어선 그녀는 911을 누르고 교환원에게 자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날 밤 얼마나 오랫동안 걸었는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날까지는 태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메이시는 익명의 여자를 뜻하는 ‘제인 도’로 불리는게 너무 싫어서 지난 주에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내가 깨어나서 시골길을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합니다. 그밖에는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추웠고, 무서웠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노던 버지니아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한 메이시는 전형적인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3월 2일 이전의 삶이 완전히 비워진 것이다. 친구나 가족에 대해서는 스냅샷 같은 기억도 없고 어릴적 술래잡기를 하고 놀던 동네에 대한 추억도 전혀 없다. 자기가 누군가의 아내였는지, 엄마였는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색깔 같은 것도 전혀 모른다. 영화도, 책도, 이름도, 얼굴도, 장소도 기억하는 것이 없다.
지난 주 CNN을 보면서 부시 대통령이 누구인지도 못 알아봤고 세계무역센터 건물로 테러리스트 비행기가 날아드는 장면을 보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 그녀가 느끼는 것은 대체로 공허감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워할 수도 없답니다. 사람들이 자기 가족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 ‘가족이 뭐지?’"라고 생각해요"
의학전문가들은 사람이 자신의 모든 기억을 완전히 상실하는 메이시 같은 경우는 드물지만 존재해 왔다고 말한다. 기억상실증은 뇌일혈이나 뇌종양, 아니면 외상 같은 이유로 머리에 타격이 가해졌을 때 발생한다. 보통은 단기간에 걸쳐 발생하고 기억상실 기간에도 한계가 있으며 결국은 기억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메이시를 진찰한 의사들은 그녀가 너무 끔찍해서 정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을 닫아버릴만한 일을 겪었을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메이시는 그 과거가 무엇이건간에 알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누구고 어디에 있어야할 사람인지 알아야 해요. 그게 무엇이건 거쳐야만 해요"
밝은 파란색 눈동자에 따뜻한 웃음을 웃는 메이시는 40대로 보이고 몸에 상처나 문신 같은 것이 없다. 장신구라고는 갈색 가죽끈이 달린 고상한 손목시계 하나 뿐이었다. 패어팩스 카운티 경찰관 킬라 로우리가 그녀의 지문을 가지고 전국의 경찰 및 군대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고 실종신고를 체크하고 있고 메이시 자신도 추적중이다.
며칠전에는 혹시 무엇이든 생각이 날까 싶어서 자기가 발견되던 날 밤에 입었던 옷을 입어 봤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옷을 입고 나가 혹시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상점의 손님,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사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봤다.
뭔가 친숙한 것 같아 보이는 일이 몇가지는 나타났다. 손톱을 밝은 핑크색으로 칠하고 싶은 욕망으로 보아 자기가 멋을 부리던 사람 같고 호숫가를 걸어보고 자기가 야외생활을 즐기던 사람이라고 느끼게 됐다. 왜 ‘메이시’란 이름을 선택했는지 모르지만 잠재의식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사들은 그저 기다리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템플대 심리학교 교수 마크 휠러는 메이시의 기억들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녀가 불러내는 법을 잊어버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기억이 되돌아 올 때까지 메이시는 이 사회에 공통된 과거를 배우느라 바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부터 록음악까지 새로 배우는 그녀는 매일 신문을 통독하고 히스토리 채널을 즐겨 시청한다. 그러는 그녀가 과거에 알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그녀는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그렇지만 새로 배울 수는 있다. 어찌됐건 간에 메이시는 현재로서는 행복하게 새 기억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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