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차 카이로에 갔다가 현지에 살고 있는 한인들을 만났다.
사우디아라비아 건설공사 현장을 거쳐 더 나은 황금시장 이집트로 거점을 옮겨 단단한 기반을 닦은 기업가도 있었다.
간호사로 취업했다가 이집트인과 결혼해 이제 관광 가이드로 뛰는 사람들, 한인이라고는 이제 세 가정뿐인 이집트 제2 수도 알렉산드리아에서 20년째 한국식당을 운영하거나 맨발의 유목민 베두인족 집단 거주지에 아예 들어가 유일한 한인 한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었다.
또 9.11테러 이후 모슬렘을 알아야 세계를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유학중인 학생들, 주로 건설회사 직원으로 체류중인 한인 상사지사 직원들이 술 한 방울 마실 수 없는 데다 ‘시간 및 약속개념 없고 거짓말은 생활’이라는 이집트 문화 속에서 버성겨 살고 있었다.
그 외에 의문의 사고를 당한 남편을 카이로 공동묘지에 묻고 올망졸망한 세 딸을 25년간 혼자 키우며 금지된 기독교를 이슬비로 전파해 온 여선교사. 눈에 보이는 선교열매가 없기 때문에 선교비 지원이 중단될 위기를 맞고 자녀교육은 더욱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는 선교사부부. 이들은 소포나 비디오내용조차 검색되고 회교도를 개종시키려 한다는 혐의가 포착되면 24시간 내 추방될 위험을 무릅쓰고 각개격파로 현지사회에 스며들고 있었다.
카이로 주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기염을 토했던 한국건설회사들이 모두 철수하여 이제는 1,000명이 채 넘지 않은 상주 한인들이, 그것도 주로 카이로에만 몰려있지만 이집트인들의 ‘코리’(한국인을 그렇게 부른다) 호감도는 기대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뿌연 흙먼지로 대변되는 카이로 시내를 돌아보는 과정에서나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끌고 출애굽하며 바다를 가른 홍해변 사막, 또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고 십계명을 받은 황량한 시내산 꼭대기까지의 성지순례 길에서도 한국인의 인기를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현지 한인들이나 연간 수만명이 넘는 한인 성지 순례객들을 안내하는 가이드들도 "이집트인들은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인들을 아주 좋아한다"고 확신에 차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눈 크고 날씬한 이집트인들은 특히 ‘눈이 작고 토실토실한 달덩이 한국 여인’에는 정신을 못 차린다. 쌍꺼풀이 없고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한번 가 볼 일이다.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의 경찰을 비롯하여 고급호텔의 직원들, 카이로 시내의 남녀노소들은 그 크고 깊은 눈을 마주치며 순박한 웃음을 보냈고 한 두 마디라도 한국말을 붙이려 노력했다.
전세계 관광객들을 수도 없이 맞아들이는 관광명소 상인들이나 시내산 낙타몰이를 독점하는 베두인의 특정 족속까지 깜짝 놀랄만한 한국어까지 구사하며 한인들을 반겼다.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해 봤어도 한국인이 민간차원에서 진정으로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 곳은 이집트가 처음이었다. 왜 일까 생각해 봤다. 아무리 성지 순례차 찾는 한인들이 많은들 그래서 이들이 돈을 많이 뿌려댄다 한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과 비교나 할 수 있을까?
그럼 60~70년대에 고독한 사막 땅에서 가족들도 다 떼어놓은 채 공사에만 매진했던 한국의 산업일꾼들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영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된 62년부터 이곳에서 움을 틀었던 한인들의 근면과 성실, 인내심, 가족 중심관, 체면문화관 등이 이들과 맞아 떨어졌을까. 술과 여자 등 향락요인이 철저히 배제된 상태에서 한인파워가 발휘되고 있는 것인가.
그같은 기류가 어찌 형성되어 왔는가를 짧은 시간에 알 수는 없었지만 현지 한인들의 삶의 모습이 영향을 크게 줬던 것만은 확실했다.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모여 든 100여명 한인들의 행사를 뒤에서 철저히 돌봐준 현지 한인이 있었다. 침착하고 친절하게, 책임감 있게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해 준 그는 아무리 일이 복잡하고 꼬여도 혈기를 보이지 않았다.
놀라운 인내심을 그는 "고독한 사막 땅에서 이방인이 20년 넘게 버틸 수 있었던 근원"이라고 했다. 노동허가증만 갖고 사막을 일군 그는 두 자녀를 미국에 유학 보내고 보통 이집트인들이 몇 대를 벌어도 못 가질 부를 갖췄다. 그리고 이제는 사막을 정말 사랑한다고 했다. 사막의 마피아로 별명 지어줬더니 정말 그런 기분이라며 좋아했다.
어디 그뿐이랴. 이집트를 지나간 모든 한인들이 그처럼 치열하게 살았으리라. 지금 거주하는 한인들도 대체로 건전하게 만족해하며 열심히 살고 있고. 이들이 민간외교관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계속 올려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집트를 떠나는 마음 한구석에서는 철부지 어린아이들을 물가에 내려놓고 오는 듯한 애잔함과 슬픔이 피어올랐다.
<이정인 기자> jungi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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