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특징은 예측 가능성이다. 일어난 일을 토대로 법칙을 세우고 그 법칙에 의거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점치며 그것이 얼마나 들어맞느냐가 그 법칙이 진리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대표적 과학인 물리학은 언제 개기일식이 일어나고 언제 핼리 혜성이 다시 돌아올 것인지 수십 년, 수천 년, 수만 년 후에 일어날 현상까지 정확히 맞춘다.
이에 반해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사회 과학은 부정확하다. 그 중에서도 경제학은 가장 자주 조롱거리가 된다. 다른 사회 과학에 비해 숫자를 많이 쓰고 수시로 예측을 해 대지만 맞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맞고 안 맞고는 둘째고 경제학자간에 의견 통일조차 잘 되지 않는다. 100명의 경제학자가 있으면 150개의 경제 이론이 있다는 농담까지 있다.
경제학에 가장 자연과학에 가까운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 무역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 다. 우파, 좌파, 중도파를 가리지 않고 압도적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을 신봉한다. 자유 무역이 보호무역보다 국가 간의 부를 창출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은 실증적으로 입증됐다.
자유무역을 가장 먼저 조리 있게 주창한 사람은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다. 1776년 그가 쓴 ‘국부론’은 단순한 경제학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사회조직의 원리 등이 담긴 방대한 철학서지만 그 이상의 경제학적 진리를 담은 책은 아직까지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국부론’이 쓰여진 지 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랜 생명을 갖고 있는 것은 스미스의 이론이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안심하고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업자, 빵집 주인의 인자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그들의 인류애에 호소하는 것보다 자기애에 호소하는 것이, 우리의 필요보다 그들에게 돌아갈 이익을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동종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어떻게 담합해 가격을 올릴 가를 궁리한다." 등등.
이 책에서 스미스가 가장 강조한 것의 하나가 자유무역이다. 자유 무역은 국제적 분업을 통해 가장 능률적으로 상품을 생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쟁의 폭을 넓혀 독점을 예방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주요 무역항이자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본산 에딘버러 대학의 도덕학 교수로 재임했던 그는 "유리와 난로, 방온 벽을 이용하면 스코틀랜드에서도 훌륭한 포도를 재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외국에서 포도를 수입하는 것보다 30배는 돈이 더 든다. 스코틀랜드의 포도재배 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외국산 포도의 수입을 금지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이겠는가"라며 "집에서 만드는 것보다 밖에서 사는 것이 쌀 때는 사는 것이 분별 있는 가장의 할 일이다. 가정의 경우 적용되는 진리가 국가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적었다.
자유 무역주의는 스미스 이후 한 나라가 이웃 나라에 비해 한 상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때는 물론이고 모든 상품을 효과적으로 만들 때도 자유 무역은 양국에 이롭다는 리카르도의 비교 우위론을 거치면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드문 경제적 진리로 자리를 굳혔다.
그럼에도 현실 사회에서 자유 무역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경쟁력 없는 산업 종사자들이 자국민 보호를 내세워 정치인들에게 무역 장벽을 높이라고 아우성 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 무역 옹호론자를 자처하던 부시 대통령은 지난 주 수입 철강에 30%라는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가 한시적인 것이고 외국의 덤핑 공세를 막기 위한 것이란 점을 명목상의 이유로 내걸고는 있지만 이는 핑계일 뿐이다. 2000년 선거에서 근소한 표 차로 이긴 오하이오와 웨스트버지니아, 아슬아슬하게 진 펜실베니아에 사양길에 접어든 미 철강 노동자의 대다수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결정을 좌우했음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부시 행정부 취임 후 최대의 악수로 불리는 이번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유럽은 즉시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섰으며 한 중 일을 비롯한 아시아 각 국은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고 나왔다. 보호무역이라면 미국보다 한 수 위인 이들이 자유 무역을 옹호하고 나온 것은 웃기는 일이지만 가뜩이나 미국의 독주에 심통이 나 있는 이들로 볼 때 이번 미국의 결정은 ‘울고 싶은 데 뺨 때려 준 격’이 됐다.
대다수 분석가들은 이번 소동이 시간이 흐르면 잠잠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1930년 스무트-홀리 법안이 통과됐을 때도 그랬다. 1929년 주가 폭락으로 미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가자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이 악법은 세계적인 무역 전쟁을 유발시켜 장기적인 대공황을 불러오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과연 부시의 이번 결정이 탈 없이 넘어갈지 스무트-홀리의 재판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