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실화이다. LA 한인타운 인근의 부촌에 사는 한 유대인 변호사는 고약한 취미가 있었다. 실무 경험이 20년이 넘고, 수입도 상당한 이 변호사는 다른 사람의 일을 맡아 대행해 주는 변호사 고유 업무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는 주변 사람을 법원으로 끌고 가는 일을 능사로 해 악명이 높았다.
그의 악취미의 희생자 목록은 길었다. 그 속에는 자신의 집을 청소하는 가난한 인부부터 지붕을 손보아 주었던 건축업자, 그리고 자신의 투자 파트너도 들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내내 수직 상승한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대신 다른 주식을 사라고 권하는 바람에 돈 벌 기회를 놓쳤다며 자신의 증권브로커까지 소송했다.
소송 대상자로 없는 사람, 있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았던 이 변호사는 자기 스타일의 법 앞의 평등을 실천한 셈이었다. 물론 이 사람은 따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했다. 이렇게 허구한날 소송을 해대는 사람을 세상은 소송 중독자(Vexatious Litigator)라고 한다.
비단 이 변호사뿐 아니라 걸핏하면 다른 사람을 송사로 끌고 가 상대방의 진을 빼놓는 소송 중독자를 우리는 자주 볼 수 있다. 소송 중독자에게 걸린 사람의 심정은 죽을 맛이다. 그냥 놓아두면 궐석재판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적극적으로 방어하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아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또 대승적으로 보아도 이런 사람들 때문에 소중한 혈세가 낭비되고, 법원은 법원대로 일손이 딸린다.
이런 소송 중독자들은 웬만한 풋내기 변호사 뺨 칠만큼 소송 절차에도 밝아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소송업무를 처리한다. 이들은 본인의 케이스가 승소할 수 있다고 믿는 확신범들이지만 법의 눈으로 보면 소송의 가치가 전혀 없는 일을 송사로 끌고 오는 돈키호테들이다. 이들은 또한 극빈자에게 법원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제도를 악용, 소송비용을 내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는 따로 소송 중독자법을 만들어 이런 소송 중독자의 폐해를 막는데 적극적이다. 소송 중독자법은 피고가 소송가치가 없는 케이스를 방어하는데 들어간 손해를 보전해 주고, 소송 중독자들이 사법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막는데 그 입법 취지가 있다.
법원이 일단 소송 중독자로 정해 놓으면 이 사람들은 법원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으면 다시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다음 카테고리가 바로 소송 중독자에 해당된다.
첫째, 최근 7년 동안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채 스몰 크레임 코트가 아닌 정식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해 5번 이상 패소했거나, 정식재판까지 가지 않고 2년 이상 소송이 계류된 경우이다.
두번째는 패소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같은 피고인에게 소송을 거듭 제기한 경우이다.
세번째는 한 피고인에게 말도 안 되는 재판을 하고, 온갖 소송기법을 동원해 괴롭힐 때이다.
네번째는 전에 비슷한 케이스로 소송 중독자로 판명된 사람이 유사한 수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딴 죽을 걸 때이다. 그렇지만 반드시 변호사 없이 본인이 소송을 한 케이스만 소송 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 변호사가 있는 케이스라고 해도, 소송 중독자가 될 수 있다.
소송 중독자로 원고를 묶어 두려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피고가 법원에 원고를 소송 중독자로 정해 달라고 청원(Motion)을 해야 한다. 원고는 패소할 것이 뻔한 사건을 갖고 재판을 하려고 하니, 피고가 그로 인한 피해를 보전할 수 있도록 원고가 공탁금을 내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청원하는 것이다.
법원은 원고의 청원에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원고에게 해당 케이스를 계속하기 위해서 먼저 공탁금을 예치할 것을 명한다. 만약 공탁금을 내지 못하면 해당 케이스는 그것으로 종결된다. 뿐만 아니라 법원은 소송중독자가 향후에 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때 반드시 판사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명령할 수 있다.
이 명령은 판사가 임의로 내릴 수도 있고, 소중 중독자청원을 냈던 피고의 요청에 따른 결과 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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