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세철 논설실장
민경훈 편집위원
권정희 편집위원
박봉현 편집위원
정리-박봉현 편집위원
부시의 ‘북한카드’ 정국주도·재선용 지적도
김정일의 변화 기대난망에 DJ 레임덕 ‘악재’
아시아 3국 순방을 마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국 방문 때 ‘악의 축’
발언에 대한 후유증을 수습하려 ‘성의’를 보이긴 했지만 이 발언 이후 냉
각된 남북관계를 녹이지는 못했다. 그저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한 공포
를 조금 누그러뜨렸을 뿐이다. 한국민의 반미감정 표출도 한풀 꺾였지만
내연하고 있어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형국이다. 부시의 ‘악의 축’ 파장
과 한반도 기류를 진단해 본다.
▲옥세철 논설실장-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 나온 지 한 달이 지났
습니다. 그런데 그 파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을 ‘악의 축’의 일
원으로 규정함에 따라 한반도에서도 긴장감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만 남북관계 경색과 함께 위기감은 여전한 느낌입니다.
▲박봉현 편집위원-이 위기감은 한반도가 협소하고 특히 서울이 북한 공
격의 가시권 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취약점에도 근거하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북한은 이판사판으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것입니다. 미국의 전략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지는 모르지만 남북
한의 대량파괴는 불문가지이지요.
▲민경훈 편집위원-미국의 온건론자 간에 비관론이 많은 반면 강경론자는
양국 관계를 낙관한다는 점입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
리스토프는 이대로 가면 미 북한 관계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하며 올해 말
에는 한반도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전망한 반면 보수적인 헤리티지 재단
의 동북아 전문가 발비나 황은 북한이 결국 미국 요구를 수용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권정희 편집위원-미국이 재채기하면 독감 걸리는 게 한국의 처지이기는
하지만 1년여전 미국 플로리다 주민들의 투표 결과가 한반도 기류를 이렇
게 바꿔 놓을 줄은 아무도 몰랐지요.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고 할 때는
미국과 북한이 금방 수교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지 않습니까. 앨 고어
가 승리해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지속되었다면 DJ의 햇볕
정책도 지금처럼 빛을 잃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박- 인적 성향에 따라 햇볕정책을 지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정책이 현정부의 골간을 이뤄왔고 국제사회의 인
정을 받아 노벨평화상까지 받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부시 행정부 출
범 후 워싱턴 발 한랭전선으로 한반도가 얼어붙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옥-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이런 것 같습니다. 부시가 햇볕
정책을 고수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체면을 고려해 상당히 부드러워진 수사
를 구사했다. 그러나 부시의 북한에 대한 불신은 오히려 혐오수준으로 굳
어져 그 결과 미국의 북한정책은 강성기조를 보이게 된다는 겁니다.
▲민-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작년보다는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
인 것 같습니다. 부시 대통령도 방한 기간에 ‘악의 축’ 발언을 자제하는
등 한국 입장을 배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난 번
김대중 대통령의 면전에서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가 구설수에 올
랐던 것을 의식해서이지 근본적으로 부시의 북한관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
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옥-부시의 ‘악의 축’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을 놓고 아직도 추측이 구구
합니다. 미국의 국내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그 한 갈레 추측입니다.
아버지 부시가 걸프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실패한 전철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측면이 이 경우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관측에는 또 ‘일종의 음
모론’도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군수산업체와의 유착설이 그 중 하나지요.
어찌됐든 전시 비상시국으로 정국을 주도해 이끌고 가야 공화당 우파 중
심의 정책 아젠다를 펼치기에 편하고 또 부시의 재선에도 유리하다는 판
단에서 테러전쟁의 전선을 확대할 필요를 느꼈고 ‘악의 축’ 발언도 나왔다
는 지적입니다.
▲박-재선을 위한 전략이란 지적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향후
수년간 지금 같은 테러정국을 이끌고 가는 것이 꼭 재선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테러와의 전쟁 명목으로 쏟아부어야 할 비용을 산술적
으로 따져봐도 그렇고 장기화된 테러정국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심리 확산
도 부메랑이 돼 되레 부시의 재선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옥-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제 시간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북
한도 ‘악의 축’의 일원으로 규정했는가 하는 데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이
견이 따르는 것 같아요. 과거 월남전 때 한국 참전을 유도한 것과 같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백인과 아시아인의 싸움’으로 비쳐지는 걸 피해
한국 참전을 미국이 요청했다는 얘기죠. 테러전쟁이 처음 발생했을 때 바
로 나온 이야기가 문명충돌론이 아니었습니까. 한국의 강원룡 목사 같은
분의 주장인데 이런 모양새를 피하기 위해 비아랍권이고, 비이슬람권인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의 일원으로 포함시켰다는 겁니다.
▲민-앞으로 미 북한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
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미국이 계속 세게 나오면 북한은 더욱 빗장
을 걸어 잠그고 무기 개발에 전념하리라는 비관론이고 또 하나는 북한이
어리석지 않은 만큼 결국은 대화에 응할 것이란 입장입니다. 대량 생산
무기를 만들어 미국의 군사 보복을 무릅쓰느니 처음에는 길길이 뛰는 척
하다가도 나중에는 미국으로부터 수교와 자금 지원 등 실익을 챙기는 것
이 상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권-국가 원수간에도 서로 끌리는 대상이 있고 그렇지 않은 대상이 있을
텐데 부시와 DJ는 후자 같아요. 일본방문 때 고이즈미 총리와 선술집까지
같이 가며 화기애애하던 부시가 한국에 와서는 아주 사무적이 되더군요.
정치철학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두 사람을 가깝게 묶어줄 요소가 별로 없
는 것 같습니다. DJ가 1년 후면 바뀔 대통령이라는 인식도 작용하겠지요.
▲옥-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도 눈길을 끕니다. 전쟁에 대한
우려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점입니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이 나온 직후
김 대통령은 그런 발언을 했습니다. 부시와 만나 후에도 민간 지도자들과
만난 공개석상에서 비슷한 발언을 한 것으로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습니
다. 부시와 DJ의 북한에 대한 시각 차이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는 느낌
을 줍니다.
▲권-지난 한 달은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죽 끓듯 했습니다. 부시 대통령
이 1월말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칭한 것이 한국민들의 감
정을 자극하더니, 남가주 출신 가수 유승준씨가’군대 가겠다’던 말을 바꿔
미국 시민권을 따버리면서 그 불똥이 미국으로 튀었지요. 그 두 가지 사
안만으로도 충분히 시끄러운데 이번에는 동계 올림픽에서 김동성 선수가
다 따놓은 금메달을 미국 선수에게 ‘빼앗긴’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클라이맥스를 맞았습니다.
▲박-그렇습니다. 부시의 발언, 유승준 발언, 김동성 판정시비 등 3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반미감정을 촉발, 증폭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미 양
국의 갈등이 제대로 봉합되지 않고 지속돼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중간이
끼이어 ‘새우등 터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권- 부시 방한을 앞두고 한국에서는 온갖 감정적인 말들이 터져 나왔지
요. 부시가 ‘악의 화신’으로 몰리고, ‘또라이 부시’라는 동요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부시가 다녀간 후 부시 공격 분위기는 좀 가라앉았지만 사실상
바뀐 건 아무 것도 없지요. 부시의 대북 강경 기본입장이 전혀 바뀌지 않
았으니까요. 이번 아시아 순방을 수행했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귀국 길
에 기자들에게 그렇게 확인을 했다고 합니다.
▲옥-한미정상회담이 끝난 지 두 주 이상이 됐는데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해 강경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점입니
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악의 축’ 발언은 공연한 외교 수사가 아니라는 사
실을 재삼 발견하게 됩니다.
▲민-한국과 유럽 등지에서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비난이 예상외
로 높은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악의 축’ 국가
이상으로 부시를 욕하는가 하면 프랑스와 독일 외무장관들도 이들이 과연
미국의 우방인가 할 정도로 부시를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어떤 의도로 그
러는 지는 모르지만 북한이 자국민을 굶겨 죽이면서 군비증강과 무기 수
출에 열을 올린다는 사실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권-부시 행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좀 더 성의를 보였으면 합니다. 부시
도 인정하는 ‘깡패국가’인 북한과의 관계에서 포용정책을 외면할 수 없다
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근과 채찍의 비율을 어떻게 하느냐
는 또 별개의 문제이지요. 부시 행정부가 포용정책을 수용할 생각이라면
북한에 정돈된 메시지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북한과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언제든, 어디서든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가 돌연 태도를 바꿔
’악의 축’이라고 몰아 붙이기 식을 계속한다면 한반도 문제는 진전을 보기
가 어렵습니다.
▲박-조건 없는 대화를 공언하면서 동시에 휴전선에 배치된 북한군을 뒤
로 물려는 안건을 의제로 삼겠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후방배치가
전제조건은 아니지만 어차피 협상 테이블에 주요 현안으로 오를 안건이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지 않을 것을 아는 처지이니 미국의 대화제의는 정
치적 제스처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권-선과 악을 분명하게 가르는 부시의 단순 명료한 사고방식, 미국의
패권에 대한 도전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부시 각료들의 일방주의 외교정
책을 볼 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
다. 무작정 으름장을 놓는 것보다는 달래는 제스처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 작용하느냐를 지켜볼 뿐입니다.
▲민-최근 미군 고문관이 러시아의 텃밭인 그루지야에 들어간 사실을 미
언론들이 주요 기사로 다뤘습니다. 러시아는 자기 세력권에 미군이 들어
온 데 내심 불쾌한 눈치입니다. 테러 제거 명분도 있고 러시아 세를 견제
하려는 그루지야쪽 이해와도 맞아 떨어져 이뤄진 일이기는 하지만 진짜
목적은 사우디와 맞먹는 매장량을 지닌 카스피해의 석유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루지야만 확보되면 엄청난 이 지역 석유를 송
유관을 통해 안전하게 운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테러와의 전쟁 못지 않
게 원유 공급원 확보도 미국이 이 지역 개입에 열을 내는 큰 이유의 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옥-미국은 북한의 인권상황을 지적하는 정책을 취할 것이 확실시됩니
다. 전반적인 북한의 국내 인권상황은 물론이고 탈북자 문제 등도 미국의
대북한 압박정책 차원에서 다루어질 것 같습니다. 과거 카터 대통령이 인
권을 들고 나오면서 ‘시끄러운 외교정책’을 펼쳤는데 북한에 대한 부시 행
정부정책이 이와 유사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박-외교정책에 인권카드를 포함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미
국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예전처럼 맘껏 들고 나오지 못하는 것도 전략적
경제적 측면을 고려한 때문이지요. 북한은 아직 미미하다고 여겨서 인지
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의 나라의 ‘내정’에 대한 간섭은 아무리 좋은 조
언이라도 역효과를 낼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권-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은 물론 북한
이지요. 굶어죽는 국민들을 제쳐놓고 대량 살상무기 개발하느라 돈을 퍼
붓는 국가를 악의 세력이라고 지칭한 부시의 지적은 누가 봐도 맞는 말이
니까요. 북한이 무기를 포기하고 자국민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 생긴다면,
그런 일이 생길 정도로 북한사회에 대 변화가 일어난다면 좋겠지만 김정
일 정권 하에서는 기대하기 어렵겠지요. 게다가 1년 후 출범할 한국의 새
정권이 햇볕정책을 지금처럼 밀고 나갈 것 같지도 않고 보면 남북한 관계
에서 단시간 내에 큰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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