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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다 수 박 지음/Houghton Mifflin Co. 펴냄
굶주림, 가난, 다리 밑의 고아소년, 혹독한 도제 제도, 냉엄한 스승...
재미동포 2세인 린다 수 박 씨의 뉴베리상 수상작 ‘A Single Shard(도자기 한조각)’에 그려지는 내용들이다. 처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서구인들의 눈에 신기한 소재가 수상에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문화적 다양성, 소위 말하는 플루랄리즘(Pluralism)이 상당한 힘을 얻는 곳이 미국 교육계와 문화계가 아니던가.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정도에게 적합할 것이다)이 과연 이런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한 가닥 염려마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지금, 이러한 생각은 완전한 기우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의 용기와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으며, 소재가 주는 참신함에 더하여 주제의 형상화에도 성공하고 있다.
이 책은 12세기 고려시대, 서해안의 도공마을인 주을포를 무대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나무귀(Tree-ear)는 다리 밑에 사는 고아 소년이다. 동네 사람들은 썩은 나무 등걸에 저절로 기생한다는 버섯 이름을 따서 소년을 그렇게 불렀다. 그는 한 쪽 다리를 못쓰는 학다리 아저씨(Crane-man)와 함께 살고 있는데, 한 쪽 다리로 서 있는 아저씨의 모습이 학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학다리 아저씨는 다리 밑에 사는 장애인이지만, 학의 이미지가 그렇듯이 맑은 영혼과 고결한 심성을 가진 현자(wise man)이다. 그는 나무귀에게 언제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일을 해야 한다. 구걸이나 도둑질은 사람의 존엄성을 앗아간다 고 가르친다. 이들은 뒷산의 풀뿌리나 열매, 혹은 쓰레기를 뒤져 나온 음식 찌꺼기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언제부터였을까.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나무귀가 도공들의 작업 모습을 먼 발치서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그는 마을의 으뜸가는 도공인 민노인(Master Min)의 작업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무도 없는 민노인 집 마당에 들어가 도자기를 구경하다가 실수로 작품 하나를 깨뜨리게 된다. 마침 돌아오던 민노인과 마주친 그는 사죄 끝에 열흘동안 민노인을 위해 일을 해주기로 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민노인의 조수가 되지만, 민노인이 나무귀에게 시키는 일이란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는 일과 바닷가에서 점토를 퍼오는 일이 전부였다. 달이 가고 해가 가도, 민노인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자신의 작품에만 열중할 뿐이었다.
결국 나무귀는 자식이 아닌 사람에게는 비법을 전수할 수 없다 는 스승의 선언에 가슴이 무너지지만, 스승을 위해 머나먼 송도까지 그의 도자기를 지고 갈 것을 자청한다. 새로운 방법으로 제작된 민노인의 상감청자를 조정의 관리가 보고자 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낙화암에서 도적들을 만나 봇짐을 털리고, 도적들은 상감청자를 깨뜨려 버린다. 절망에 빠진 나무귀. 그는 삼천 궁녀가 꽃잎처럼 떨어졌다는 낙화암에서 자신도 몸을 날리고픈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그 순간 나무귀는 죽음 만이 진정한 용기를 나타내는 길은 아니라는 학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는 깨어진 도자기 한 조각을 집어들고 죽을 용기보다 더 큰 용기를 내어 송도로 향한다...
작가인 박 씨는 수상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현대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할 것 이라면서 어린이들이 지루한 역사책 보다는 재미있는 동화를 통해서 과거를 배우기를 희망한다 고 말했다. 그는 미국 어린이들이 한국을 소재로 한 동화에 흥미를 가질 것이냐는 질문에 좋은 내용의 동화라면 어느 나라에 관한 이야기든 즐겁고 재미있게 읽을 것 이라고 답했다.
그는 올 봄에 일제시대 수난사를 소재로 한 작품 ‘내 이름은 게이코였다 (When My Name Was Keiko)’를 출간할 예정으로 있다.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이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린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을 없을 것이다. 박 씨의 선전을 기대하며, 앞으로제2, 제3의 박 씨들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이 책은 아마존닷컴 독자들의 평균 평가가 별 네 개반일 정도로 좋은 평을 얻고 있다. 10세에서 14세 정도가 읽기에 적당하다.
한수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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