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종교는 4,200여개에 이른다. 한 관계기관의 발표다. 이처럼 많은 종교중 10대 종교를 분류하라면 톱 5는 그런대로 댈 수가 있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 나머지는 웬만한 종교적 지식이 없으면 어렵다.
주체사상이 놀랍게도 세계종교 톱 10에 랭크됐다. 무슨 근거로 북한을 사실상의 종교집단으로 보았을까. 모택동주의는 마르크시스트 공산주의의 ‘중국형 버전’으로 인정되지만 주체사상은 마르크시즘의 ‘북한형 버전’으로 도저히 볼 수 없어서라는 게 그 이유다.
말하자면 주체사상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분명한 종교이고 1,900여만의 신도수로 볼 때 톱 10에 끼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북한은 사교적 색체가 유난히 두드러진 체제인 것만은 틀림 없는 것 같다.
우선 독특한 달력을 사용하고 있는 점에서부터 그렇다. 올해는 2002년이 아니다. ‘주체 91년’이다. 북한식 달력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김일성이 태어난 해 1912년은 북한식 표현을 빌리면 ‘인류의 태양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해’이므로 인류사의 원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은 또 독특한 숫자풀이를 즐기는데 ‘666’이라는 숫자는 아주 좋은 숫자인 모양이다. 한 국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의 생일이 ‘2월16일’인 것과 무관치 않은 풀이라는 것이다. 김정일의 생일을 가리키는 216은 6을 세 번 곱한 숫자다. 또 216의 21은 21세기를, 6은 ‘조선민족이 세운 여섯 번 째 나라, 즉 사회주의 조선’을 뜻해 ‘김정일은 21세기 통일된 조선을 이끌 영도자’라고 추켜 세우고 있다는 것. 수령절대주의의 극치다.
알파벳에 수치를 부여해 이름을 숫자로 풀어보는 것을 게마트리아(gematria)라고 한다. 유대인들이 글자와 동등가를 가진 숫자가 있다고 상정해 그를 기초로 성서해석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일부에서는 신비주의적 궤변으로 본다. 또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달한 점수술(占數術)에서 유래한 믿음이라는 설도 있다.
기독교인들은 어찌됐든 666이라는 숫자를 싫어한다. 이 숫자는 요한 계시록에도 언급돼 있고 일반적으로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다. 이 점에서 북한식 숫자 풀이는 묘하게도 기독교와 정반대 입장에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을 보면 종교를 가지지 않은 대통령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돼 있다.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험 링컨, 앤드루 존슨 등 3명의 대통령이 기독교인으로서 그 종파가 뚜렷히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기독교 국가다운 전통이다. 역대 미 대통령중 스스로 본-어게인임을 밝히고 또 복음주의자로 자처한 첫 번째 대통령은 지미 카터로 기록된다. 조지 W 부시 역시 기독교적 신념이 투철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다.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표출하는 사람’이라는 게 조지 W에 대한 보수 기독교 교단의 일반적 평가다. ‘사명을 지닌 대통령’이라는 보수 세력의 그에 대한 찬사도 같은 말로, 일부 진보파 신문은 이런 그를 사실상 보수적 기독교 교단의 지도자라는 식으로까지 보도하고 있다.
조지 W는 중국방문에서도 기독교 원리주의자로서 자신의 신앙관을 공중 앞에서 과감히 드러냈다. 북경 청화대 연설에서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부시는 역설한 것이다.
성경에는 ‘원수’ ‘마귀 사탄’ ‘큰 용’ ‘뱀’ ‘공중권세 잡은자’ 등의 표현이 수없이 나온다. 모든 악의 배후에 영적인 존재가 있다는 의미다. "마귀의 궤계에 대적하는 우리의 씨름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어찌보면 이원론적인 세계관이다. 이 가르침을 가감없이 믿는 게 기독교 원리주의다.
조지 W의 눈에 김정일은 어떻게 비쳐질까. 국제정치라는 냉정한 현실인식을 넘어 일종의 ‘영적 원리’에 입각해 ‘악의 배후를 이루는 존재’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게 기독교 원리주의적 시각이다. 또 주체사상이 종교라면 김정일은 사교의 2세 교주인 셈이기 때문이다.
"DJ-부시 회담의 성과를 지켜보는 우리 사회의 다른 한쪽에선 이념적 갈등과 대립이 커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악의 화신, 이회창 총재는 악의 뿌리’ ‘김대중 정권은 김정일 정권의 홍위병’이라는 여야간 극언 공방… 이런 이분법적 편가르기 양상이 심화되면서 한편에선 반미-친북-친DJ 노선이, 다른 한편에선 친미-반북-반DJ 노선이 형성된다면…"
조지 W의 서울방문과 관련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던 ‘남남(南南)갈등’에 대해 한 국내 언론이 보인 우려다. 한국서 확산되고 있는 반미정서. 그 뿌리를 그리 간단히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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