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테러로 숨진 이스라엘팀의 유일한 미국인
▶ 데이빗 버거 가족, 대회때마다 아픔 되세겨
9.11 테러 이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의 안전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대두됐으나, 다행히 현재까지는 매우 조용한 올림픽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테러단에게 아들을 잃은 오하이오주 데이빗 버거 가족은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그 때의 아픔을 되새긴다.
뮌헨 올림픽 테러 희생자 중 한 명인 데이빗 버거는 이중국적 소유자로서, 희생자 가운데 유일한 미국 시민이었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교외에서 출생한 데이빗은 훗날 이스라엘 이중국적을 취득했다. 그가 뮌헨 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순전히 올림픽에서 세계최고 선수들과 맞설 기회를 갖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미국대표 선수로 선발될 기량은 못됐지만, 이스라엘 대표 선수로는 출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버거 가족들은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남모르는 또 다른 회한에 빠져든다. 뮌헨 올림픽 이후 단 한번도 IOC가 올림픽 무대에서 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공식 추도행사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죽은 데이빗의 아버지 벤자민 버거 박사는 말한다.
“올림픽 위원회는 지금까지 이 문제를 덮어버리기에 급급했다. 1976년 올림픽 때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하지만 유대인 단체들은 애틀랜타 올림픽과 시드니 올림픽 때, 자체적으로 뮌헨 올림픽 테러희생자 추도행사를 가졌다. 버거 가족들 역시 힘닿는 대로 데이빗 버거 추모활동을 펼쳐왔다. 데이빗의 부모는 클리블랜드의 유대인 커뮤니티센터에 데이빗 기념 체육관을 건립했고 셰이커 하이츠 고등학교에 데이빗 버거 장학회를 설립했다. 또한 데이빗이 비즈니스와 법률을 공부한 툴레인 대학 및 컬럼비아 대학에도 장학기금을 조성했다. 또 데이빗의 누이 바바라는 자신의 아들 이름을 데이빗으로 지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는 이번 솔트레이크 올림픽과는 달리 안전문제가 거의 제기되지 않았었다.
주최국 독일은 뮌헨 올림픽을 2차대전의 잿더미에서 재건한 국가를 전 세계에 과시할 절호의 기회로 삼는데 주력했다. 올림픽 경기장이나 선수들의 숙소 분위기도 대체로 느슨했고, 올림픽 관광객들도 특별한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다.
당시 데이빗의 부모는 미국에 남았고, 누이 바바라와 형 프레드가 올림픽 관광을 떠났다. 이들은 선수단 숙소에서 데이빗의 이스라엘 팀 동료 프리드만을 만났는데, 그는 데이빗의 출생과 같은 날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우연히도 생일이 같았던 두 사람은 불행하게도 같은 날 테러의 희생물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바바라와 프레드는 데이빗이 초반 탈락하자, 곧 바로 오스트리아로 캠프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스라엘 선수단이 팔레스타인 테러단의 습격을 받았고, 사망자 명단에 데이빗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았다. 두 사람은 즉시 뉴욕으로 날아왔고, 닉슨 대통령의 특별 배려로 그날 밤 중으로 군용기를 타고 클리블랜드의 가족들과 합류했다.
미국에 남은 데이빗의 부모들 역시 TV와 라디오를 통해 아들이 죽었다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당시 데이빗의 사망 소식을 미국에서 방송한 베테런 스포츠 앵커 짐 매케이는 “데이빗의 부모에게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정작 데이빗 가족을 직접 접촉해서 애도의 말을 전하는 올림픽 관계자는 아무도 없었다.
데이빗이 죽은 지 29년 후, 버거 가족은 다시 한번 테러의 공포에 몸서리쳤다.
지난 9월11일 일단의 테러분자들이 미국의 심장부에 연쇄테러를 감행하던 날, 바바라는 코스타리카 여행을 떠나는 딸을 보스턴 로건 공항으로 운전해 주던 중이었다. 로건 공항은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한 비행기들이 이륙했던 곳이다. 두 모녀는 공항으로 가던 중, 톨게이트 직원으로부터 비보를 접하고 핸들을 돌렸다.
바바라의 아들 21세의 데이빗은 워싱턴의 의회 의사당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펜실베니아 교외에 추락한 항공기 한 대가 추정대로 의사당과 충돌했을 경우, 데이빗도 테러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대해 바바라는 “그 날 아침에 아들과 딸을 동시에 테러로 잃을 뻔한 가능성이 있었다”고 말한다.
뮌헨 올림픽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 도로시는 이번에도 셰어커 하이츠 자택에서 9.11 테러소식을 접했다. 29년 전에도 같은 자리에서 아들 데이빗의 사망소식을 들었었다. 그녀는 펜실베니아에 추락한 항공기 승객 중 제레미 글릭이 용감하게 테러범들에게 저항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미망인 리즈베스에게 연대감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버거 가족은 뮌헨 올림픽 테러사건 이후, 올림픽 선수촌에서 테러단의 난입을 눈치 챈 데이빗이 “그들을 제압하러 가자. 방치하면 전체 선수단을 덮칠 것이다”며 앞장섰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9.11 테러의 희생자인 글릭의 미망인 리즈베스는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행사에서 뉴욕시 진입 구간 주자로 뛰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데이빗을 추모하는 행사는 전무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뮌헨 올림픽 테러사건 역시 공교롭게도 같은 9월 달에 발생했다. 따라서 9.11 테러사건과 함께 해마다 9월은 버거 가족에게 더욱 더 테러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는 잔인한 달이 됐다.
“지난 30년간 테러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동안의 경험으로부터 테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
프레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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