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 64년 소니 리스턴을 KO로 누르고 "나는 가장 위대하다(I am the Greatest)"고 소리질렀던 ‘영원한 젊음’ 알리가 환갑을 맞은 지금 다시 우리 곁에 찾아와 위대한 복싱의 전설을 들려준다.
현재 개봉관에서 상영중인 영화 ‘알리’는 특정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성 드라마로서는 드물게 이번이 3번째. 알리로 나오는 윌 스미스는 아카데미 주연상, 알리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던 유명한 스포츠캐스터이자 친구인 하워드 카셀로 분한 존 보이트는 조연상 후보에 올라 있어 수퍼보울 다음으로 시청률이 높은 내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국의 남녀노소들은 싫거나 좋거나 알리의 생을 다시 한번 반추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알리는 왜 이렇게 오래 가나. 3-40년이 지난 인물이 어째서 아침마다 먹는 시리얼 박스 표지광고로 나오고 영화로도 재삼 만들어져 관객들을 끌어 모으나. 묘한, 엄청난 생명력이다.
그 생명력은 우선 그의 복싱에서 나온다. 71년 알리-조 프레이저 1차전은 맨주먹 아닌 글러브 끼고 하는 현대복싱이 시작된 이래 최고의 걸작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알리의 아웃복싱과 머리위로 김을 푹푹 뿜으며 기관차처럼 돌진하는 ‘스모킹’ 조의 인파이팅이 교차하는 이 대전은 복싱기술과 정신의 진수가 도도히 흐르는 클래식이다. 복싱사가들이 ‘세기의 결전(the Fight of the Century)’이란 영예로운 타이틀을 붙일만하다.
백인의 자존심 잭 뎀프시나 갈색의 폭격기 조 루이스의 복싱은 알리복싱에 비하면 구식이고, 로베르토 두란-앙헬 에스파다스, 카를로스 자라테-알폰소 자모라, 월프레도 고메스-살바토르 산체스, 슈가레이 레너드-타미 헌스, 알렉시스 아르게요-아론 프라이어등 명승부도 적지 않았지만 중량감에 있어 미치지 못한다.
특히 요즘처럼 헤비급 복싱 나아가 복싱자체가 한물간 때에 글러브 낀 주먹보다 귀나 사타구니를 물어뜯는 이빨이 먼저 나가는 ‘인간 아닌 투견’ 타이슨이나 센 건 주먹뿐 인간적 강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레녹스 루이스, 벌써 은퇴했어야 할 홀리필드같은 퇴물이 타이틀전을 벌이겠다고 소음을 일으켜대면 나는 보고 또 봤던 ‘파이트 오브 더 센추리’ 테이프를 또다시 틀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알리 복싱은 언제 봐도 신선하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알리의 진정한 생명력은 ‘탁월한 복서’를 뛰어넘는 인간 알리에 있다. 그가 특히 민권운동이 몰아친 ‘요동치는 시대’ 60년대에 복싱을 통해 세상에 보낸 메시지는 폭이 넓고 깊었다. 18살때인 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헤비급서 금메달을 따내 영웅이 됐으나 막상 고향땅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하고 오하이오 강물에 금메달을 던져 버린 일은 유명한 일화다. 훗날 올림피언으로서의 회고에서 알리는 이때 일을 "백인의 희망으로서의 내 휴가는 끝났다."고 썼다. 이후 알리는 사회적 차별과 기성 가치관에 도전하는 시대의 풍운아로서의 생을 거침없이 살아간다.
22살때인 64년 죄수복서로 공포의 화신이었던 리스턴을 7회 TKO시키고 최연소 헤비급세계챔피언에 오른 다음날 알리는 이슬람으로 개종함과 동시에 이름도 캐시어스 클레이에서 무하마드 알리로 바꾸고 반전·민권운동의 전면에 나선다. 대학생들의 반전운동이 들끓던 66년 베트남전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질문에 대해 알리가 뱉은 "여보시오, 난 베트콩과 다툴 일 없시다"란 말은 시대의 표제어가 됐고, 알리는 ‘기성가치에 도전하는 영웅이냐 자신을 명성과 부로 올려준 국가를 배신한 자인가’로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섰다. 징집거부로 복싱라이센스 박탈과 5년형을 언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그리고 시대는 변한다. 71년 프레이저와의 세기의 대전 직후 연방대법원은 정부는 알리의 종교적 신념을 고려해야 했다며 알리의 징집기피확정 판결을 만장일치로 뒤집어 알리의 손을 들어준다. 그가 그 큰 입으로 쏟아낸 목소리는 가히 세상을 바꿀만큼 강하고 역동적이었으며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강함보다도 오래가는 것은 따뜻함. 알리가 지금껏 많은 미국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은 그가 일생을 통해 보여준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관대함 때문이었다. 가난한 흑인의 아들에서 ‘세상의 꼭대기(Top of the World)’에 오른 그는 못가진 자들의 친구였고 그들은 알리를 보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냉혹한 사회의 불평등과 빈곤, 슬픔같은 것들은 알리를 보면 어느새 눈녹듯 잊어버릴 수 있었다.
험한 세상에 영원한 자유인으로 거침없이 자신을 표현한 사나이. 그는 진정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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