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이나 한국 할 것없이 ‘말’로 인한 홍역사태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말의 소중함이란 말 그대로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말은 한 인간이 그동안 살아왔던 인격과 정신의 반영이자 현재의 모습 그 자체다.
그러한 말의 중요성은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 책임감과 파장이 커지게 되어 있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말이란 그 ‘중요도의 비중’만큼 영향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지 마라’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말에는 정말 꼬리가 있어서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는 것이 말싸움이다. 말에는 꼬리가 있기 때문에 ‘낱말 이어가기’라는 게임의 형태까지 오래전부터 있어올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국정 연설당시의 ‘악의 축’ 발언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악의 축’ 발언으로 인해 얻은 실리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얻은 점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크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생각이다.
한국이나 유럽등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로부터, 심지어 미국내 언론 일반으로부터도 ‘악의 축’발언은 환영보다는 비판쪽이 우세한 편이다. 또 미국에 별로 반감을 갖지 않고 있는 국가의 국민들에게 까지 공연히 ‘반미 감정’을 유발시킬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만일 부시가 ‘악의 축’이라는 표현대신 ‘가장 위험스런(the most dangerous) 국가’ 또는 ‘깡패국가’라는 표현정도까지만 했더라도 세계의 이목에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이라크나 이란, 북한등에 실제적 요구사항과 국제사회의 연대적 압력을 전하는데 있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 어법, 특히 국가간에 고도의 정치적 외교적 수사(修辭)가 필요한 국제사회의 표현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는 ‘악의 축’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해서 오히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연대’에 균열이 생기도록 만들었으며 부시는 아마 임기 내내 두고두고 이 표현에 대한 공세로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지금 본국에서는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부시야말로 ‘악마의 화신’이라고 말해 국회가 벌집을 헤집어놓은듯 떠들썩하면서 사상 초유의 야당 단독국회가 벌어지는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부시의 ‘악의 축’이라는 표현도 잘못된 것이지만 여당 국회의원의 ‘악의 화신’ 발언도 매우 잘못된 것이다.
부시가 ‘말 실수를 잘 하는 대통령’이기는 할 망정 ‘악의 화신’이라는 것에는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더구나 현재 한국을 방문중인 동맹국의 대통령에 대해, 그것도 집권당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아무리 면책특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악의 화신’이라고 막말을 하는 것은 상궤를 벗어난 일이다.
또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는 아무말도 않고 잠잠하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자국 의원의 ‘악의 화신’발언에는 단상까지 차고 올라가 발언을 제지하는가 하면 ‘김대중 정권은 김정일의 홍위병 정권’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것도 표현상의 수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다 ‘한총련’에서는 한국에 소재한 미 상공회의소를 점거하고 농성까지 벌이다가 강제 해산되었다니 지나친 일이다.
‘악의 축’ 표현이 지나쳤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혈맹으로 맺어진 동맹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과격시위까지 벌일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모두가 ‘말의 꼬리’를 붙잡고 일어나는 데서 생기는 일들이다.
말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하며 희망을 주기도 하고 절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말에 의해 본질이 달라지는 법은 없다. 그렇지만 말은 그 이후 본질을 변화시킬수는 있다.
어떤 경우에는 상대를 욕하는 것보다 진지하게 들어주고 조용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으로 상대를 변화시킬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말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지금 우리 사회의 ‘말’들은 너무 살벌하다. 핏발이 선 극한적 표현들은 증오와 경멸을 잉태하게 마련이며 그것은 사회나 인간의 화합과는 전혀 다른 대립의 길로 들어설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악의 화신’이나 ‘악의 축’이나 이젠 ‘악’(惡)자가 들어가는 아찔한 표현이나 단어들은 그만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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