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에 인공생명 주려 노력하는 과학자 스티브 그랜드
스티브 그랜드(43). 아무데도 소속되지 않은 인공생명 전문가이자 혁신적인 컴퓨터 게임 ‘크리처스’의 설계자인 그가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다. 하버드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된 이 책의 제목은 ‘창조: 생명, 그리고 생명을 만드는 법’.
이 책에서 그는 스스로를 현대의 프랑켄슈타인 남작에 비유한다. 자신의 게임 ‘크리처스’에 대해서도 대담한 주장을 펴고 있다.
‘크리처스’에서 그가 창조한, 스스로 학습하고 적응하고 진화하는 새로운 종류의 사이버 동물에는 그 자신도 놀랄 정도라는 것이다. “크리처스는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창조물은 아마도 합성 생명체에 있어 예술의 경지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는 썼다.
그는 이제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넘어서 인공지능의 ‘성배’라고 불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학습하는 로봇에 도전중이다. 이를 두고 전 세계에 걸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를 응원하는 인물 중에는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있다.
“스티브 그랜드는 인공생명에 가장 근접해 있는 창조자”라고 도킨스는 말한 바 있다. 그랜드의 최신 프로젝트인 ‘루시’에 대해서 그는 “그런 장엄한 일이 만약 성공한다면, 여태까지의 기록으로 보아 그것은 그랜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계에서 그랜드는 이단적인 존재이다. 어느 기관의 지원도, 구속도 받지 않고 혼자 일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번 프로젝트가 그처럼 야심찰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 최초의 ‘의식이 있는 기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 기계는 ‘루시’라는 이름의 장난감 오랑우탄의 몸체에 컴퓨터를 넣은 형태이다. 그는 ‘루시’가 인간의 아기가 그렇게 하듯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주위 환경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아내고 배워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랜드는 25년 전에 사범학교에서 만난 아내인 앤과 단둘이 작업하는 편이 낫다고 이야기한다. 차고가 작업실 겸 사무실이다.
“나는 팀웍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억력이 매우 나쁘고 누구 아이디어였는지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문제를 내 머릿속에 넣었을 때 가장 적절하게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작업 태도가 감탄을 자아내는 면도 있지만, 제한도 있다. 리딩대학교의 사이버네틱스 교수인 케빈 워윅은 이렇게 설명한다. “혼자 차고에서 일해서 전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오랜 영국의 전통입니다. 하지만 최신 기술에서 이런 방법은 좀 어렵습니다. 만일 그랜드가 현대적인 연구소에서 30명을 휘하에 두고 일한다면 혼자 일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성취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랜드는 철저하게 자율학습적인 사람이다. 무엇을 생각할까를 지시받는 것을 싫어하는 형편없는 학생이었던 그는 자유시간을 학교 과학실에서 생물이나 물리, 화학등을 자습하면서 보냈다. 그는 컴퓨터 수업을 받은 적도 없다.
그랜드의 ‘크리처’나 ‘루시’가 다른 유사품들과 다른 점은 삶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살아간다는데 있다. “생명체처럼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을 하는 대신에 컴퓨터가 신경세포나 화학물질, 유전자들처럼 행동하도록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그것들을 거대한 네트웍으로 연결하면 생명체와 같은 행동이 나오게 되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논스’라는 이름의 학습하고, 사회화하고, 번식하고, 성장하고, 노쇠하고, 마침내 사망하는 컴퓨터 애완동물이다. ‘논스’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랜드는 ‘논스’가 여태까지 알려진 어느 것과도 다른 새로운 형태의 당당한 생명이라고 말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논스’가 던진 질문에 대해 그랜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기술적인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정의는 아주 사소한 것을 기준으로 합니다. 진화 또는 학습에 의해 적응함으로써 존속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논스’는 살아 있다고 할 만하다고 그는 말했다. “‘논스’를 안아줄 수는 없지요. 우리는 서로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셈이니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 사이버 스페이스 사이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이버 스페이스에 살고 있는 존재가 우리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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