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가수 유승준의 병역기피 의혹과 관련된 논란을 보며 문득 야구선수 박찬호가 생각났다. 이 두 사람은 예체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부와 인기를 누리면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
둘 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유승준은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왔다가 한국으로 되돌아가서 가수로 성공했고 박찬호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야구선수로 성공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더 넓은 세계로 진출한 그들이 당면한 공통적 고민은 병역문제였다. 28개월의 정상적 군복무는 그들의 커리어에 있어 사망선고에 해당할 만큼 큰 공백을 가져다 줄 것이 명백하다.
박찬호는 1996년 다저스팀에 오기 위해 취업비자가 아닌 유학비자로 미국에 입국하였는데 그 주된 이유는 병역의무를 연기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유학생 신분으로는 병역법상 27세까지만 병역 연기가 가능하므로 4시즌을 뛴 후 2000년에는 귀국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당시 박찬호가 한국 야구선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막 진가를 나타내던 때라 모든 한국 사람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겼다. 국위를 선양하는 것을 고려하여 ‘박찬호 병역면제 특별법’ 제정까지도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다행히 그는 1998년에 열린 방콕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하는 덕분에 1999년에 병역의무를 4주간의 병역 특례보충역 군사훈련으로 마쳤고 유학비자가 아닌 취업비자로 미국으로 되돌아왔다. 그가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 후 "후련하다"는 소감을 말한 것은 금메달을 딴 기쁨보다 병역문제에서 해방된 기쁨을 표시한다. 이제 그는 청년 재벌로 불릴 만큼 부와 영예를 누리며 미국에서 맘껏 활동하고 있다.
유승준은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영주권을 지닌 채 한국에 돌아가서 댄스 가수로 성공하였다. 병역문제가 대두되자 군에 입대하겠다고 했단다. 그러다 막상 그 시기가 되자 미국으로 와서 미국시민권을 취득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함으로써 병역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입국금지 조치를 취하여 한국에 갈 수가 없게 되었다.
군에 입대하겠다고 해놓고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미국 시민인 유승준을 한국에 입국 금지시키겠다는 병무청의 논리가 너무나 감정적이다. 그런 병무청의 요청을 받아 들여 "대한민국의 국익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입국 금지를 지시한 법무부의 논리에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최근에 발표된 IMF의 ‘정치불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의 108개국 중 14번째로 13번째인 에티오피아보다는 낮고 17번째인 필리핀보다도 떨어진다고 한다. 한국 정부가 정경 유착과 관련된 각종 게이트들과 전직 국세청장, 검찰총장 등과 같은 정부 고위층 친인척들의 비리 문제들에서 국민의 관심을 돌릴 생각으로 유승준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면 정부야말로 국익을 현저히 해치고 있다. 또한 합법적으로 이민하였고 합법적으로 병역의무가 면제된 유승준을 마치 국내인 대하듯 하는 것은 전체 해외동포들을 무시하는 처사임을 알아야 한다.
거짓말한 것이 문제라면 한국의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가 있겠는가. 그 정도의 거짓말은 한국의 거짓말 대회에서 애교상을 받기에도 부족할 듯 하다. 국방부 장관이 유승준을 두고 "일신의 안위를 위하고자 갖은 방법과 이유를 들어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려는 비겁한 젊은이"라고 분노했다는데 미국으로 이민간 한 청년에게 국방의 의무를 묻기 전에 수많은 병역비리 의혹들에 분노하는 것이 훨씬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유승준이 한국에 가는 것은 가수로서 그의 자질을 사랑하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지 병역의무 혹은 조국관이 투철하기 때문이 아님을 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팬들이 이번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그들이 판단할 일이다.
미국에서 자라는 우리의 2세들에게 이번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답답하다. 그들에게 조국이란 무엇이며 조국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박찬호는 온 국민의 호응 속에 미국에 건너와서 그처럼 신성하다는 병역의무도 거의 면제받다시피 했는데 미국에서 자란 우리의 2세는 합법적으로 병역면제를 받았건만 한국에서 정부가 몰매를 가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정말 꼴사납다. 한국의 양식 있는 사람들과 다수 언론들이 사설을 통해 정부의 지나친 대응 자세를 나무라며 자제를 촉구하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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