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망대
▶ 조광동<본보 시카고지사 편집국장>
유승준씨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유승준 홈페이지에 들어갔었다. 게시판을 들여다 보면서 나는 현기증 같은 것을 느꼈다. 게시판 글 거의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욕설이었다. 차마 말로 옮길수 없는 쌍욕들이 흘러 넘쳤고, 유승준씨를 저주하고 증오하는 온갖 말들이 난무했다. 그런데 거기에 나온 글 모두가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는 무기명이었다.
"다시는 한국땅에 오지 말라, 희대의 사기꾼 미국으로 가라, 너같은 쓰레기는 미국 국적 가져야 해. 군대 가기 싫어 조국을 팔아먹고 미국으로 도망간 놈, 미국을 위해 조국에 총을 겨눌 놈, 미국서 잘먹고 잘살아라. 누구는 군대가고 싶어 가나, 나도 가고 싶지 않다. 한국에 오면 죽이겠다"
이런 내용이 최상급 욕으로 장식되어 악취가 코를 찌르는 언어의 쓰레기장이 되었다.
나는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렸다. 나는 시카고에 사는 조광동이라 밝히면서 게시판 글에 대한 느낌과 유승준씨 문제에 대해 소견을 적으면서 욕을 하지 말고 이름을 밝히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거기에 대한 코멘트 가운데 일부를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저속한 말과 욕설로 심경을 표현 했지만 그건 어쩌면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될수도 있어요. 당신처럼 교양있는척 탈을 덮어쓰고 이성이라 떠들면서 얘기하는 사람보다 더 솔직하다 할수 있죠. 근데 조광동씨 그렇게 이성적이고 잘난 사람이 덜 세계화된 한국어는 왜 그렇게 아직 쓰죠. 이름도 마찬가지고… 당신도 정신좀 차려야 겠네요. 상황을 모르고 이런 저런 소리하면 안맞아 죽는것만도 다행이라 생각 합니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도 상황과 때를 가려서 해야 한다는 사실 명심 좀 해야겠고 인생공부 좀더 해야겠네요."
"조광동 봐라… 나이는 50이 넘어간다는 사람이 노망걸렸나 왜그런 헷소리를 짓거리고 계신지요? 혹시 승준이 아니 스트브 유 아버지 아니시우? 내앞에 있었으면 죽통을 한대 날려버렸을꺼요. 시방새야. 내 이메일 공개하니까 답장하시오. 내 곧 시카고에 갈일이 있는데. 대갈통에 총알 한방 박아주겠소."
그래도 다른 글에 비해 나에게 보낸 글은 점잖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글 마디 마디에 섬뜩한 극단성의 비수가 번뜩이고 있었다. "대갈통에 총알을 박아 주겠다"고 호통을 친 이 젊은이를 정말 미국이나 한국서 만나 보고 싶었다. 이 젊은이가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도 이렇게 격한 언어로 나를 매도할수 있을까?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곳에서 저주와 증오의 욕설을 퍼붓던 젊은이가 혹시라도 나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내 아랫 사람이 된다면 그는 분명히 비굴할 정도로 내 앞에서 허리를 굽힐 것이다. 나는 그런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슬펐다. 유승준씨의 판단이 옳았느냐 틀렸느냐 이전에 그것을 논하는 사람들의 기막힌 저질성과 비인간성에 가슴은 말할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군대에 가는 것을 감옥에라도 가는 것처럼 기피하는 조국 젊은이들의 의식은 나로 하여금 절망을 느끼게 했다.
유승준 게시판에 오른 글이 오늘 한국 젊은이들의 의식과 품성을 반영하는것이라면 조국의 장래는 너무나 암울하고 어둡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숨어서 자기 생각을 말할 때 그 언어가 격해지고 저속해 지지만 유승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한국 젊은이들의 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 게시판 글은 나에게 슬픈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일주일동안 한국 젊은이들이 나에게 준 문화적 충격을 생각하고 있는데 한국정부가 유승준씨의 입국을 거부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순간, 내 생각은 "어!" 하고 주춤해 졌다. 한국정부가 한국 젊은이들 욕설 문화에 맞장구를 친 것이다. 이번 한국정부의 조치는 참으로 심약하고 수준낮은 판단이다. 유승준씨가 한국에 입국했을 때 공공의 안전을 해칠수 있다는 판단은 한국의식의 후진성과 편협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한후 나는 유승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지 않았다. 그러나 질시의 가슴으로 저주를 퍼붓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통쾌한 배설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정부는 감정적인 여론의 분노에 맞설 힘이 없어서 미국 시민권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했다. 한국정부는 이성을 잃은 젊은이들의 욕설 광란에 두손을 번쩍 들어 주고 있다. 나라의 체통과 원칙이 욕설의 강물에 함께 떠내려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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